강릉여행 몸으로 표현하기

말로 하기엔 충분치 않아서

by 나를 아는 사람

12월 24일 오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남부 지방보다 많이 추울 거라는 생각으로 두툼하게 입어서인지 생각보다 춥진 않았다. 이번 여행은 서울에 있는 큰딸이 강릉 여행을 추천해서 가게 되었다. 내가 강릉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했던 얘기를 기억한 것 같다. 나를 위한 특별히 선정된 여행지다. 서울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강릉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 부부와 큰딸이 함께하는 여행이다.


딸은 우리가 탑승할 강릉행 KTX 표와 강릉에 도착해서 이용할 렌터카를 미리 예약했다. 참 편한 세상이다. 전화로 척척. 돈만 지불하면 되는 세상. 알면 어떤 기능이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몰라서 버벅거리는 게 더 많다. 딸에게 우리 부부는 손이 많이 가는 존재가 되어간다.


강릉에 도착할 즈음 창 밖으로 흰 눈이 보였다. 아침을 밝혀주는 하얀 눈이 우리를 반기듯 멋진 장관을 연출했다. 강릉역에 도착해서 지붕이 뚫린 철길 위에 쌓인 멋진 흰 눈 사진 한 장 찰칵. 이제 걸어서 자동차 대여점까지 가야 하는데 길이 없다. 차량은 아예 다니지도 않는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겨우 찾아간 강릉역 주변 자동차 대여점. 상호가 적힌 간판은 있는데 입구에서 들어갈 수가 없다. 눈이 너무 많이 쌓였다. 어쩔 수 없이 푹푹 눈을 밟아서 길을 만들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량 번호판이 보이지 않는다. 예약한 차를 찾아야 하는데 눈 때문에 번호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일일이 번호판 앞의 눈을 치워가며 번호를 확인해야 했다. 겨우 찾았는데 승용차 형체가 두툼한 눈 덮개를 씌워 놓은 것 같았다. 눈을 대충 치우고 시동을 걸자 안개등의 불빛이 겹겹이 쌓인 눈 사이를 뚫고 분위기 좋은 조명처럼 뿌옇게 비췄다. 승용차 지붕의 쌓인 눈을 아래로 쓸어내리고 이젠 삽을 들고 눈을 삽에 떠서 승용차가 지나갈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을 치우면서 '이게 뭐 하는 거야? 우리가 강릉에 눈 치우러 왔어!' 하면서도 신이 났다. 이런 경험 처음이다.


우리가 들고 있는 삽과, 직원의 삽, 포클레인의 합심으로 드디어 승용차가 주차장을 벗어났다. 도로에는 포클레인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아직 차선이 보이지 않는 곳이 많았다. 포클레인이 눈을 치워낸 길이 승용차가 갈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좁은 도로는 아예 들어갈 수 없었고, 승용차가 정차하면 바퀴가 헛돌기를 반복했다. 아침을 먹기로 들어 선 초당마을은 그야말로 눈 범벅이었다. 설국, 겨울왕국도 맞지만 나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쑥 범벅 같지 않아? 아님 톳나물. 그 있잖아 두부하고 톳나물 무친 거.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미쳤어, 미쳤어. 눈이 많아서 렌터카를 운전하는 남편은 조심스러운데 창밖의 멋진 풍경은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식당을 찾기 위해 경포호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또 돌았다.


일정이 빠듯해서 아침밥을 포기하고 대관령으로 향했다. 들뜬 마음으로 삼양목장 입구까지 갔는데 눈을 치울 시간. 2시간을 기다릴 수 있냐고 해서 아쉽지만 포기하고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왔다. 오전 11시가 넘었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강문해수욕장을 가기 전 아침밥을 포기한 초당마을로 다시 들어갔다. 아침보다는 길이 조금 뚫렸다. 계획했던 초당 순두부 맛집은 포기하고 주차할 수 있는 곳만 보이면 들어가자고 했다. 결국 맛있는 초당 순두부를 먹었다. 몇 시간을 굶은 탓인지 더 맛있게 먹었다.


강문해변에 도착. 뭐야 뭐야? 솔밭이 온통 눈 세상이다. 띄엄띄엄 한 자리씩 차지한 조각품들은 흰 눈과 함께라서 한층 더 멋져 보인다. 솔잎 사이로 내린 햇살로 인해 가만가만 무게 잡고 서 있는 말의 등에 쌓인 소복한 눈은 빛나고 있다. 시야를 넓혀 솔밭 저 끝으로 갈수록 보이는 해안은 하얀 눈으로 채워져 있다. 바닷물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쌓이지 못한 경사진 모래사장, 다시 평평한 모래사장, 그 위쪽은 모래사장인지 눈밭인지 모를 흰 세상이다. 솔잎은 눈이 무거워 어깨가 축축 처지고 나무 아래로 숨어 들어가야 할 것처럼 평화롭다.


평화롭고 잔잔한 육지의 평온함을 깨듯 성난 파도는 요란한 소리와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육지를 향해 내달린다. 파도가 진정함이 없이 거세게 하얀 거품을 물고 보란 듯이 크게 더 크게 전진해 온다. 하얀 거품, 눈 덮인 모래사장, 초록의 솔잎의 등에 올라앉은 흰 눈의 장난기가 이어진다. 며칠은 이대로 이어질 것 같다. 이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말로 표현 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말은 뒤로 숨고 몸이 말을 한다. 거품 이는 파도의 소리에 맞춰 소복이 쌓인 푹신한 눈 밭에 몸을 던진다. 남편이 먼저 눕고, 그 옆에 나도 누워 본다.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다음은 하슬라아트센터를 방문해서 전시된 다양한 조각품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정동진 해변을 걸으며 일정을 채웠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보여준 강릉. 벌써 익숙해졌다. 한 번 왔지만 여러 번 온 것처럼 숲, 호수, 바다, 길, 음식 모든 것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우린 다시 서울행 KTX에 탑승한다. 아름다운 강릉 여행 최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 강릉 여행은 삼양목장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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