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으로 간다

자연을 엿보며

by 나를 아는 사람

계획했던 산책길을 급변경했다. 갑자기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그곳에 가면 상징물처럼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전망대를 볼 수 있다. 무작정 출발. 우리 집에서 출발하여 인도를 걷다가 차도를 건너고 자전거도로를 거쳐 간다. 농로와 농로를 이어주는 터널이라 하기엔 너무 작은 터널을 지나 논두렁길을 걷는다. 한참을 걸어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원 연못에 다다랐다.


아침이라 인적은 없고 연못에는 줄지어 물 위를 노니는 물오리들의 한가로움만 가득하다. 바람에 꺾인 뒤 추위에 얼어버린 연꽃 줄기. 하얗고 큰 새들이 공중 부양하듯이 줄기 하나에 한 마리씩 앉아 있다. 몸을 웅크린 채 최대한 힘을 빼고 있는 듯 보인다. 나만 위태롭게 볼 뿐, 새들은 아주 평온하다. 줄기가 얼어 있는 짧은 시간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햇살이 퍼지면 줄기는 맥을 못 쓴다. 진귀하며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 그 자체다.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깨지면 안 될 것 같은 잔잔한 시간이다. 새의 이름을 알면 좋으련만... 이름을 묻고 싶다. 새야 너의 이름은 뭐니?


내가 가려고 한 목적지는 아직 한참을 더 가야만 한다. 아쉽지만 새들의 구경을 잠시 멈춘 뒤 다시 솔밭에 들어선다. 이곳은 작은 딸이 좋아했던 곳이다. 초등학교 시절, 인체에 맞게 만들어진 S자형 벤치에 팔다리 쭉쭉 펴고 누워서 한가롭게 하늘을 보던 곳이다. 그때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참 좋더라며 자랑하곤 했었다. 몇 장의 사진도 찍어서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남편은 연못 주변과 솔밭을 뛰면서 몸에 찰싹 달라붙은 불필요한 살을 많이도 뺐다. 아무런 의미 없던 평범한 이곳이 우리 가족에게 의미 있는 곳으로 바짝 다가왔다.


솔밭을 지나 다시 작은 공원으로 이어지는 약간의 오르막 길을 걷는다. 나뭇잎 없는 나뭇가지는 두 팔을 위로 위로 쭉쭉 뻗었다. 나뭇가지 끝엔 작은 새들이 덜 떨어진 나뭇잎 조각처럼 움직임 없이 앉아 있다. 정지된 듯 움직임 없던 새들이 순식간에 움직여 다른 나무로의 이동을 할 땐 괜히 속은 것 같다. 나뭇잎 같았는데 새였다니. 새들의 숨바꼭질에 끼어든 듯 살짝살짝 발소리를 줄이며 지나간다.


길의 끝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원이 있다. 오래전 이 길을 올 때마다 두 공원을 이어주는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내용으로 글을 쓴 적도 있다. 계단으로 내려가서 도로를 건너고 다시 내려온 만큼의 높이까지 올라가야 한다. 도로를 건넌다. 다시 시작되는 공원으로 들어서자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현수막에 적힌 문구에 한참을 고개 끄덕인다. '살짝? 몰래? 버리고 가면 끝?, 동물 유기 안돼요?. '반려동물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맞아 맞아 맞장구치며 비탈진 공원길을 쌕쌕거리며 올라간다. 숲이 우거지고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아서인지 길에는 푸르스름한 이끼가 많다. 이끼를 피하면서 걸어간다.


드디어 목적지 도착. 오래전, 어느 여름날. 이곳에서 나의 직장 동료들과 그녀들의 아이들이 한데 어울러 놀았던 곳이다. 보물 찾기와 달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흙을 밟고 나뭇잎을 만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 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큰 딸과 남편이 사람만 한 눈사람을 만든 추억도 있다. 두 사람은 눈사람을 만들고 난 남편과 딸의 정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서인지 이곳의 변화는 아주 느리다. 그래서 더 좋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누가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전망대가 사라졌다. 높은 전망대가 사라지고 휑 해진 곳에 잠시 서 있어 본다. 전망대가 있었다. 그랬다. 계단을 올라가는 길이 위험하긴 했다. 나무 계단의 나무가 썩었는데도 관리가 되지 않아서 불안 불안했다. 전망대에 끝까지 올라가면 멋진 풍경을 볼 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져 보이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간 것치곤 실망이 컸다. 사라졌다. 아니 치워졌다. 전망대를 우뚝 서게 했던 바닥의 흔적만 진하게 남았다. 전망대가 없어지고 나니 아쉬움보다 시원함이 크다. 전망대가 있던 자리의 주위가 환해졌다. 진작에 치워져야 할 것이었다. 가끔은 사라지고 지워지는 것이 좋을 때도 있음을 깨닫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