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걷고, 보고, 맛보고

by 나를 아는 사람

시골길 주택가 어느 대문 옆 포도 넝쿨에 매달린 포도송이가 나를 멈춰 세운다. 그림이나 사진에서 보던 예쁜 송이가 아닌 못난 송이지만 열심히 자라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기 좋다. 초록초록 송이를 키워가고 있는 포도송이가 탐스러워 만지고 싶지만 참는다.


걷는다. 어~저건 앵두는 아니고 음. 보리수나무다. 산수유와 비슷한 보리수의 열매는 길쭉한 모양으로 신맛, 단맛, 떫은맛을 낸다. 대롱대롱 매달려서 모습을 뽐낸다. 보리수나무의 열매는 시골집 담장 안쪽에서 자라서 담장 너머로 살짝 그 모습이 보일 때 하나 따고 싶어지는 열매다.


좀 더 걸어 본다. 사람이 돌보지 않은 살구나무에서 맥없이 떨어져 뭉개진 노란 살구를 본다. 살구나무 옆에는 단단하며 붉게 자라고 있는 복숭아가 많이도 매달렸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복숭아. 솜털이 피부에 닿으면 가려울 것 같아 냉큼 잡지 못하는 복숭아. 눈으로 맛을 본다. 아직은 덜 익은 듯. 보살핌이 부족함 속에서도 우거진 잡초와 함께 복숭아는 잘도 자라고 있다.


시원한 대숲에 들어선다. 대숲을 등지고 좁은 산길 따라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몇 개 딴다. 남편 입에 먼저 몇 개 넣어주고 또 따서 나도 먹어 본다. 조그마한 게 맛있다. 산딸기는 많이 먹는 것보다 이렇게 걸으면서 하나씩 둘씩 따서 먹는 게 맛있다.


산에서 내려와 들길을 걷는다. 감나무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푸른 감을 본다. 덜 익은 푸른 감은 시간이 흐른 뒤 노랗게 잘 익은 감이 되어 시선을 사로잡겠지. 오래된 감나무는 언제나 기죽지 않고 올해도 보란 듯이 가지마다 열매를 매달았다. 푸른 잎과 푸른 열매가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지금은 없지만 오래전 어머님 댁 텃밭에는 감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고 크기도 손안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크고 때깔 좋은 감. 먹기에 아깝다고 얘기하던 감. 그 감나무들 사이에 한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같은 밭에서 자란 감나무지만 종류가 다른 나무였다. 감의 크기가 얼마나 작던지. 난 그 감나무를 꼬마 감나무라 불렀다.


아침에 일어나서 상추를 따거나 부추를 자르러 갈 때면, 난 꼬마 감나무의 감을 하나 따서 대충 옷에 쓰윽 닦고 한 입 베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속살이 시커멓고 껍질은 얊으면서 씨는 얼마나 굵고 많던지. 싱싱한 꼬마 감의 아삭 거림이 나를 사로잡았다. 자꾸만 꼬마 감에 눈이 가고 손이 갔다. 결국 입 속으로까지.


상상해 본다. 나만의 텃밭이 하나 생긴다면, 포도나무, 보리수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오디를 따서 먹을 수 있는 뽕나무도 한 그루 심고 싶다. 단감나무도. 먹고 싶을 때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하나씩 따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매는 역시 나무에 매달린 채로 바로 따서 한 입 먹는 그 맛이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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