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 재미

by 나를 아는 사람

가깝지만 가보지 않은 길로 가 본다. 새로운 곳은 늘 신선함과 기대를 안긴다. 가을철 주렁주렁 먹음직스러운 감들이 매달렸을 감나무. 익은 감, 약간 덜 익은 감, 농 해진 감으로 색을 채웠을 텐데 이젠 감나무 전체가 살색에 가까운 한 가지 색상이다. 옷을 벗었다. 감나무 주인이 껍질을 벗긴 것인지, 스스로 껍질을 벗은 것인지 바로 옆 밭의 감나무와 달리 추워 보인다.


넓은 길에서 좁은 길로 가다 보니 잘 닦여진 길이 끊겼다. 시멘트 길이 반듯하게 잘린 듯 과감하게 뚝 끊겼다. 없는 길을 만든 것은 사람들의 발자국. 논두렁을 얼마나 오고 갔는지 발길이 지나간 자리만 번지르하게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5m 정도 걸으니 다시 시멘트길이 시작된다. 잘린 건지, 끊긴 건지 모를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


작아서 더 귀여운 참새들은 보기만 해도 요란스럽다. 시끌시끌 참새 무리의 주변은 활기차지만 자세히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만큼 빠르고 가만있질 못한다. 꼭 어린아이들 같다.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들락거려도 걸리지 않고 잘도 빠져나온다. 민첩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동물과 식물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의 유유히 흐르던 강물은 공사로 인해 물길이 막혔다. 하필 겨울이라 비가 내리지 않은 탓에 갈 곳을 잃은 새들은 물놀이 대신 빈 논으로 모여든다. 같은 종의 새들끼리 똘똘 뭉쳐서 하늘 위로 날아오르면 한 마리의 큰 새가 되어 위엄을 떨쳐 보인다. 질서 있는 새들의 정렬이다.

마을이 인접한 곳으로 들어서자 봄을 알리듯 벌써부터 새싹이 나오기 시작한다. 두꺼운 장갑과 점퍼 입은 내가 민망하게 말이다.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삐죽삐죽 나오는 새싹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바쁜 일상생활에 묻혀 사는 내가 자연의 변화에 잊었던 여유를 찾게 된다. 반가운 봄의 소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사진 몇 장 남긴다.


나올까 말까 망설이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다가 추위에 놀라 다시 들어간 새싹이 있을까?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하며 다시 숨어들었을 수도 있다. 안돼, 벌써 나오면 얼어 죽어. 다시 들어가. 빨리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싶어도 참아. 너희들이 살기 딱 좋은 그 기온과 환경이 되면 그때 나오면 돼. 남편과 난 빼꼼히 나온 동글동글한 꽃봉오리를 두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2월 중순인데 매화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남쪽은 따듯해서. 그중에도 햇볕을 많이 받는 나무는 더 빨리 변화가 찾아온다. 겨우내 죽은 나무처럼 숨죽여 있던 가지에서 꽃봉오리가 피었으니, 다음달이면 매화꽃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봄은 이렇게 몰래 살짝 한 발짝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아침 마음 설레게 한다.

들판의 풍경은 계절마다 새로움을 준다. 오늘은 이상하게 왼쪽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쪽에 매화의 꽃봉오리에 반해 걷다가, 어. 저게 뭐지? 원래 저 자리에 있었나? 새로운 것은 언제나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다리? 길을 건너는 다리라 보기엔 아슬아슬하고 위험해 보인다. 가까이 가 본다. 설마 했다. 사다리다. 힘없는 사다리. 사다리 위에 살짝만 올라가서 힘을 줘도 안될 것 같다. 옆에 있던 남편이 건너 보겠다고 큰소리친다.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사다리가 아래로 쳐진다. 중간쯤 건넜을 땐 사다리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휘어진다. 몸에 힘을 주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다. 남편은 막바지에 이르자 뛰다시피 쏜살같이 사다리에서 벗어났다. 무섭지 않았냐고 하자 냇물이 깊지 않아서 괜찮았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다리는 전봇대를 오를 때, 건물의 외벽을 오를 때, 깊은 굴 속으로 내려갈 때, 사용하는 도구로 여겼다. 사다리가 냇가를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생김새 때문이다. 발을 딛는 부분이 폭이 좁고 둥근 모양에다 간격이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폭이 넓은 네모 모양이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도구라는 것이 그 쓰임의 용도로 따라 크게 달라짐을 느낀다.


산책길 막바지. 집 가까이에 있는 자주 들리는 공원에 도착했다. 재미를 좋아하는 나를 위한 것인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에 또 사진 찍기 시작한다. 벤치 왼쪽 귀퉁이에 주인 없는 안경이 걸쳐 있다. 분명 안경을 벗고 휴대폰을 보다가, 아님 눈을 감고 쉬다가 그냥 갔을 거야. 안경을 쓰지 않는다고 눈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집에 가서 뒤늦게 생각날 수도 있어. 안경을 그대로 둬야 해. 그래야 기억을 더듬어 그 자리까지 와서 찾을 수 있어. 남편과 난 벤치에 걸쳐있는 안경 때문에 또 웃는다. 대화와 이야기는 재미있는 소재로 또 그렇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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