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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l 14. 2023

고무나무의 제2인생


무심하게 일상을 보내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베란다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고무나무 한 그루다.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방 안에 있는 나무를 본다. 거슬리는 나무다. 화분이 길고 큰 데다 고무나무는 어찌나 잘 자라는지 그만그만 컸으면 싶지만 보란 듯 잘도 자란다. 짙은 초록의 색을 띤 고무나무는 방안을 다 채울 기세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웃한 키 작은 다육이들과 비교하면 커도 너무 크다. 타고난 고무나무만의 특성이라지만 속도 조절 없이 너무 잘 자라다 보니 눈에 거슬린다. 무관심하려 해도 어찌나 싱싱하고 초록을 뿜어내는지 이러다간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결단을 내린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나무를 베기로 한다. 아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작은 방에 비해 나무가 너무 크다. 나무를 여러 번 힘주어 어슷하게 자른다.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자르면서도 살 수 있는 약간의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나무를 살리고 싶은 건지 죽이고 싶은 건지 헷갈린다.


윗가지를 잘린 고무나무는 안방에서 베란다 구석으로 방치된다. 살면 살고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나무를 잘라낸 자리에는 하얗고 끈적한 것이 눈물이라도 되듯이 아래로 흐른다. 베란다 벽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나무에게 햇볕을 가려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 주고 있다. 나무길이는 짧지만 화분 길이는 나무를 자르고 난 뒤에도 길게만 보인다. 베란다로 쫓겨난 나무를, 있지만 없는 듯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듯 그렇게 대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얼마나 흘렀을까.


죽으라고 윗가지를 싹둑 자르고 베란다 구석에 방치했는데 글쎄, 고무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햇볕을 보지 못하고 물을 마시지 않아서 목이 마르면 죽을 줄 알았다.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듯 살포시 새싹이 나오고 있다. 잎 하나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둘, 셋 점점 성급하게 늘어나고 있다. 두껍고 짙은 고무나무의 잎사귀는 점점 크기를 확장하고 이웃을 만들고 있다. 잘리고 난 후 더 악착같이 자라는 것인지 폭풍 성장하고 있다. 잎은 더 예쁘게 올라와 시선이 머물게 만든다.


살고자 하는 고무나무의 열정으로 방치된 장소가 이동된다. 베란다 구석에서 안방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버림받았던 고무나무는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악착같이 자랐다. 그 열정으로 의 눈 밖에 났던 나무는 의 마음에 감동을 안기며 제자리를 되찾아 돌아왔다.


건강하게 잘 자란 것이 흠일까, 잎이 두꺼워서 흠일까. 적당한 햇볕과 물과 바람이 만나서 최적의 환경을 만든 것이 흠일까. 아픈 척 잎을 누렇게 만들어 떨구어야 했을까? 물을 거부해 가지가 말라야 했을까? 화분 속에서 넉넉하고 편안하게 숨 쉬는 고무나무를 숨차고 긴장하게 만든 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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