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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l 13. 2023

뭐든 알아가는 길입니다

뚜벅뚜벅 걸어서

산책 갑시다. 그러지요.

남편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강가로 갈 것인지, 공원으로 갈 것인지. 두 장소는 서로 반대 방향에 있다. 난 공원을 선택한다. 둘 다 좋지만 공원 쪽으로 가면 오래전 어울린 이웃이 있고, 강가로 가면 새롭게 만난 이웃들이 있다.  공원 쪽은 우리 집 아이들이 어리고 우리 부부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즐겨 운동하고 산책하던 공원이다. 남편도 좋아라 한다. 여러 갈래길이 있지만 방향만 보고 길은 정하지 않고 마음 는 대로 간다.


구불구불 논두렁 길을 나란히 걷는다. 대부분의 논에는 충분한 물로 목을 축이며 어린 모가 자라고 있다. 그중 산 아래 길쭉한 한 개의 논에는 물이 부족해서인지 땅이 갈라지고 있다. 목마른 논을 쳐다보니 나 또한 갈증이 난다. 논 바로 옆에는 수로에 물이 넘치게 흐르고 있는데 목마른 논이라니.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논 주인이 갑자기 아픈가. 그렇지 않으면 멀리 여행을 떠났을까. 알고도 이렇게 놔두진 않았을 텐데. 그래. 농민의 마음이면 이러지 못하지. 하지 않아도 될 괜한 걱정을 한다.


논길을 걷다 보니 수변 연못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데크를 따라 걷는다. 이곳에서 참 운동 많이 했는데 하며 남편이 한다. 남편이 이곳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살을 빼고 건강해졌는데. 둘이서 데크에 팔을 걸치고 물과 일체가 되어 꿈쩍 않고 있는 연잎을 지긋이 본다. 움직임이 없는 연잎과 연잎 사이로 꽃대를 따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연꽃 봉우리들이 보인다. 곧 꽃이 피려나. 질척한 진흙을 밟고서도 당당히 피어오르는 연꽃은 아침에 만나는 희망이다. 희뿌연 연못의 생명이자 보배다.


연못에 연꽃만 좋을까. 연잎을 유심히 본다. 어린 날. 갑작스레 비가 내리면 우산이 되었지. 연잎에 물방울이 올라타면 물방울은 둥글게 뭉쳐 데굴데굴 구른다. 찌그러진 모양이다가도 금세 연잎의 움푹 피인 곳에 들어가면 둥글게 변한다. 물이 스며들지도 연잎이 흡수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꾸만 밀어내고 내치는 연잎이 얄미워 보이지만 연잎의 깊은 생태계까지 알기엔 지식이 부족하다. 생각을 바꾼다. 내치는 것이 아니라 돌려보낸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를 여는 것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연잎과 사색을 즐길 무렵  이른 아침임에도 수변공원 주위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남편이 갑자기 말문을 튼다.


'지금 걷고 있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지.

사람마다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돈 문제, 사랑 문제, 주택 문제, 자식 문제, 취업 문제를 고민하겠지.

혼자 걸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명이 걸으며 지나가도 다 생각이 다를걸.

고민고민해도 아침 일찍 일어나 걷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은 몸 건강이지.

도시 사람들은 이 시간에 취해 있기도 하겠지!

아침부터 곤드레만드레 나는 취해 버렸어!' 노래를 한다. 남편이.

남편 역시 고민 많음을 감지한다. 어쩔 것인가. 순한 여자와 사는 남자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할 수밖에 없다. 받아들여야지.


이젠 공단 안쪽으로 간다. 작은 저수지가 있던 장소에 공단 인근 주민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 중이다. 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안착해서 나무 그들을 드리우면 점심시간. 근로자들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소담 소담 이야기를 나무며 휴식을 취하겠지. 아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걷다 보니 해안가다.


몇 해 전 공단에서 바다로 통해있는 하수도관 바로 앞에 우글대던 물고기가 생각나 걸음을 서두른다. 그 모습을 지금도 볼 수 있을까. 멋진 광경이었는데.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다. 안전 난간대 너머로 바닷물부터 확인한다. 바닷물이 가득 차고 물이 맑지 않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을 남기고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자전거도로 공사 현장을 보며 지나간다. 자전거도로가 삐딱하다. 물 빠짐이 좋게 하기 위함 같은 건가. 분명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걷기에는 불편한 삐딱한 길인데.  어~어~ 저게 뭐야?


저 멀리 깊은 바다에서 은빛이 반짝거린다.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빛이 난 후에는 잔잔한 물에 파동이 인다. 뭔가 엠보싱처럼 볼록한 느낌이다. 물에 높은 곳에서 물건이라도 떨어 뜨린 듯 파장이 점점 더 크게 생긴다. 움직임은 작다가도 갑자기 놀란 듯 크게 요동친다. 고요한 마음에 충격을 가한 것처럼. 고기떼다. 작은 물고기들이 한데 뭉쳐서 물속에 숨어있는 거대한 물고기처럼 보인다.


그중에는 참지 못하고 껑충 물 위를 높이 솟구치는 물고기가 있고 하얗고 넓적한 배를 내보이는 물고기도 있다. 뛴다 뛴다. 안 봤다 안 봤다를 내지른다. 물고기가 뛰는 모습을 보고 안 봤다고 하면 자꾸 또 뛴다는 얘기를 어렸을 때 많이 들어서다. 난 탄성을 지른다. 물이 잔잔해지면 숨죽여 바닷물을 주시한다. 물 위를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보기 위해서. 어부가 물고기들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바로 그물을 던지고 싶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을 길로 들어간다. 이주할 마을이라 그런지 주민 보다 빈집 주변에 쓰레기가 더 많이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저 멀리 옥상 위에 목줄도 없이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 개 한 마리. 마지막 남은 주민을 지키는 지킴이처럼 마을의 침입자를 주시하고 있다. 해넘이 풍경에 멋진 진돗개가  함께하니 한 폭의 그림 같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뛰어내릴까 봐 난 개의 눈을 살짝 피해서 지나온다.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아프고 배도 고프다.


반갑게도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아파트 공사장 맞은편에 문을 연 식당이 보인다. 집에 가서 밥을 먹을까, 식당에서 사 먹을까 고민하다 식당으로 들어간다. 간판을 보고는 단박에 국밥집이라 생각했는데 함바집이다. 식당 주인이 우리를 맞이하며 뷔페식당이라고 덤덤히 한다. 어리둥절해서 식당 내부를 스캔하는데 젊은 남자 손님들이 몇 명 보인다. 공사장 인부들이 대놓고 먹는 식당이면 맛은 있을 것 같은데, 진짜 맛이 있을까 하고 생각중일 때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


'저, 이 집 단골인데 음식 맛있어요. 안내해 드릴게요' 하며 계란 프라이를 하고 있던 젊은 남자 한 명이 밥주걱의 위치와 음식 뜨는 순서를 가르쳐 준다. 음식을 접시에 담아서 식탁으로 가자, 이번엔 조금 전 밥주걱 위치를 가르쳐 준 사람이 '저 계란 프라이 다 하면 여기서 프라이 만들어 드시면 돼요' 하며 웃는다. 얼떨결에 받은 젊은 사람의 싹싹하고 친절함에 괜히 기분 좋아져 밥도 더 맛있는 것 같다.  계획 없이 이렇게 지나가다 우연히 들려서 음식 먹는 걸 좋아한다. 새롭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맛은 복불복이다. 장담할 수가 없다.


함바집에서 밥을 먹다 보니 오래전 사진식자를 배우며 만난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 엄마는 함바집을 했다. 친구는 한참 먹는 거 좋아하는 나를 엄마의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그때 식당에서 접시를 들고 줄지어 서있던 현장 근로자들과 어두운 조명을 반갑게 맞이하던 맛있고 푸짐했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다시 출발. 돌고 돌아 집으로 돌아온다. 어제 간단하게 산 하나 등산한 시간이나, 오늘 넓게 들판, 연못, 해안가, 이주마을,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온 시간이나 비슷하다. 대략 3시간 30분 정도.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남편은 발품을 팔아 더 넓고 깊게 세상을 바라본다. 특히 함께 걸으면서 나에게 새롭고 다양한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 덕에 나도 덩달아 뭐든 알아가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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