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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n 01. 2023

개미집, 거미집, 제비집 주인처럼

땅을 파헤쳐 하나하나 이고 지고 옮겨 둔 고슬고슬한 흙 알갱이의 개미집을 엿보며 부지런함을 배우고, 가느다란 줄을 적당한 힘과 움직임으로 만들어냈을 아슬아슬한 거미줄을 엿보다가 지혜로움을 배운다. 같은 날 지나가다 들린 복권방에서 우연히 제비집을 발견한다. 내가 어릴 적, 고양이의 놀잇감이 된 제비와 최근 만난 여유 넘치는 복권방 제비를 함께 만나 본다.



제비를 사냥한 고양이


방 안에서 끄윽끄윽 비틀린 새시 창 문을 연다. 가을이라 담 너머 고구마 밭두둑에는 고구마 줄기가 넝쿨진다. 줄기는 앞으로 옆으로 자라면서 지네 다리 같은 작은 뿌리를 아무 데나 내린다. 두둑에서 고랑으로 내려앉은 고구마순은 작은 짐승들이 숨기 안성맞춤이다. 마침 고랑에 숨어있는 고양이 한 마리 발견. 의뭉한 고양이가 고랑에 웅크리고 있으니 더 의뭉스럽다.


고양이의 동태를 살핀다. 나의 숨도 조심스럽다. 고양이는 한동안 꿈쩍 않고 온몸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구마순과 붙는다. 잠시 후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 제비는 고구마 밭 위로 날다 아래로 떨어지듯 낮게 난다. 저렇게나 제비가 낮게 날아. 하는 찰나. 몸을 최대한 낮추어 숨어 있던 고양이가 위로 뛰어오른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 제비가 사라졌다. 고양이만 분주할 뿐. 고양이는 제비를 양손에 번갈아 가며 뜨거운 것을 게 잡지 못하고 굴리는 것처럼 이 손 저 손으로 건네며 장난을 친다. 다행히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제비는 왜 그렇게나 낮게 비행을 하고, 고양이는 제비를 어떻게 잡을 생각을 했을까. 제비를 보면 고양이가 생각나고, 고양이를 보면 제비가 생각난다.





제비가 진짜 복을 물고 왔을까?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을 지나가다 차를 세운다. 명당이라고 소문이 난 이후 관광 코스가 된 집. 바로 복권방이다. 일부러 가진 않지만 볼일이 생겨서 이곳을 지날  줄 선 사람들의 뒤를 이어 나도 줄을 이어 본다.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서 있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사방에 시선을 뿌려 본다. 포착. 창틀에 앉아 끄덕이는 제비와 눈 맞춤.


제비가 맞다. 제비 뒤로 제비집도 보인다. 신기해서 목을 빼고 자꾸만 제비집을 올려다본다. 어어. 하는 순간 제비집 또 발견. 혹시나 해서 제비집이 있는 작은 사무실로 몇 발자국 내디뎌 고개 들어 본다. 하나도 보기 힘든 제비집이 네 귀퉁이에 하나씩 있다. 공간 안에만 있겠지? 설마 밖에도 있을라고 하며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복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본다. 설마 했는데. 있다. 네 개나 있다. 대충 봐도 이 집에 그 귀한 제비집이 여덟 개나 있다. 


혼자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 행운을 나누고 싶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성에게 이 기쁜 소식을 속삭인다. 여성은 놀란 표정으로 "이 집의 복을 제비들이 다 물어다 줬나 보네요"  "오늘 권 사면 잘 되겠는데요" 하며 웃는다. 나도 속으로 같은 마음이 되어 웃었다. 괜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 없이 줄을 섰는데 갑자기 기대를 품게 다. 


로또복권 한 장과 즉석복권 세 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복권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꽝"이다. 앞줄 여성과 행운을 나눠서 안되었을까? 아닐 거다. 앞으로 나에게 행운을 하나씩 둘씩 서서히 주기 위함일 거다. 행운이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지면 그다음은 어쩔 거야! 큰 행운 하나 보다 작은 행운 하나씩을 길게 받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괜한 설렘이었다. 가만히 있는 제비를 핑계 삼아 잠깐이지만 기대를 품은 내가 너무 웃긴다.


새끼 제비들 중 한 마리가 집 밖으로 나왔다. 창틀에 앉아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작은 몸을 위아래로 흔든다. '다 똑같군. 노력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해야지 요행을 바라고만 있으니' 하며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는 것 같다. 개미처럼, 거미처럼, 제비처럼 자기 집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필요한 것이 참 많다. 넉넉함이 없다. 부족함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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