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아는 사람 Jan 05. 2022

발이 묻는다

손? 우리 둘 중 누가 더 힘들까?

발은 신체 중 자신이 가장 힘든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몸 전체의 무게를 견뎌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심받지 못해서 속상해한다. 양말 속에 신발 속에 덮여 있으니까 수고를 모를 거라 생각한다. 괜히 손에게 자신의 힘듦을 하소연하려다 손에게 질문을 던진다. 


<발이 묻는다>

? 네가 하는 일이 힘들까!, 내가 하는 일이 힘들까!

<손이 대답한다>

묻지 말고 나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손은 말없이 움직이고,
발은 그 움직임의 시선을 따라가며 말한다.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고 손 인사를 하질 않나,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 길을 안내한다는 핑계로 방향을 가리키지를 않나, 처음 보는 간판이라도 보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유심히 쳐다보지. 한 순간도 가만있지 못하는 너.


부엌에 들어가면 그릇을 씻다, 행주를 씻다, 정리가 다 끝나면 야채도 썰고 생선도 썰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정말이지 너처럼 바쁜 이도 없을 것 같다. 과일을 먹는다고 열심히 껍질을 벗기고, 그것도 모자라 칼로 다시 썰고, 그다음엔 예쁜 접시에 담는 너는 항상 바쁘구나.


아침에는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손빨래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너는 항상 바빠 보여. 씻고 나면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는구나.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한참을 하고 나면 출근시간. 집에서 나와 회사를 향하지. 잠 차 문을 열고, 차 문을 닫고, 차 안에 있는 물건도 만져보고, 거울도 들춰보고, 한참을 그렇게 하지.


회사에 가면 앉는 동시에 볼펜을 잡고, 키보드를 두드리지. 언제 끝날지 모 볼펜 잡기와 키보드 두드리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를 들고 열심히 대화도 하는 너... 전화하다 볼펜 들다가, 키보드 두드리다, 머리도 긁적, 땅에 떨어진 휴지도 줍고, 가끔 식물에 물도 주는 너.


일에 지쳤다 싶으면 서랍 속에 아껴 둔 향이 진한 동백꽃잎차 티백을 꺼내어 컵에 넣은 뒤, 정수기 밸브를 꾹 눌러 뜨거운 물을 받았. 향긋한 차를 들고 책상으로 이동해 쉬엄쉬엄 를 입에 가져다 주지. 잠깐 쉬려다 잘못 쓰인 글자를 지운다며 지우개를 들고 글자를 지운 뒤 지우개 찌꺼기를 쓱쓱 밀어서 휴지통에 버리지.

    

얘기를 하다가도 머리를 긁적긁적, 어떤 일이 생각나지 않으면 목덜미를 빡빡 긁어대고, 괜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만지작만지작 혹여 누락된 것은 없는지,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지. 일에 푹 빠져 있다 보면 몸에서 열이 나고 더워질 때, 양쪽 옷을 걷어 말아 올린 뒤 시원하다는 듯 맨살을 한 번 만져도 보는 너는 참 웃겨. 바빠도 할 건 다 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종이도 만졌다, 컵도 만졌다,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노트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그것도 모자라 파일을 뒤적뒤적. 하여튼 너라는 애는 하루를 꼬박 움직임으로 채우는 것 같다. 넌 쉬고 싶은 마음도 없니? 편안하게 늘어져 쉬었다가 가끔 움직이면 안 되는 거야?. 볼 일을 보고 다른 움직임에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길 바란 적은 없나 봐. 바빠도 아프지 않고 꿋꿋하게 잘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단 말이야. 몸 중에서 가장 자유롭게 움직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네가 주인공인 것 같아.


너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행동만으로도 얼마나 부지런하고 생기 있는지 알 것 같아. 너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많은 일들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니까. 너는 소중한 존재 가치가 있구나! 인정해. 어떻게 하면 힘든 일을 이렇게나 척척 잘해 내는 거야.


손이 말한다.

나도 혼자서는 못해. 팔이 잘 도와줘서 할 수 있는 거지. 발? 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대단해. 너도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잘하고 있어. 열심히 제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꼭꼭 숨어 있어도 보석을 찾아낸다잖아. 제대로 알아보는 거지.

작가의 이전글 걷기에 속도를 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