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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n 23. 2023

집과 돌담 곁을 지키는 나무랍니다

친정집 돌담 곁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있다. 어린 시절, 그 감나무에 감이 열리면 어서 한 입 베어 먹겠다고 아우성쳤다. 감꽃이 필 때부터  둥글면서 길쭉한. 아주 둥근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 감을 보며 큰 기대를 품고 살았다. 지금이야 줘도 안 먹겠지만 과일이 귀했던 터라 익어가는 모습만 봐도 좋았다. 막상 감이 먹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익었을 때다.  감을 한 입 베어 먹어 본다. 생각했던 맛이 아니다. 맛이 영 이상하다. 말해 뭐 하게 할 말이 없지 그만 인상부터 써진다. 단맛은 없고 떫은맛만 강해 입안이 떱떠름하고 마음은 더 떱떠름하다. 퉤~퉤~뱉는 게 상책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해가 안 됐다. 감나무를 심으려면 달달하고 아삭한 단감나무를 심지 왜 맛도앖는 떨감 나무를 심었는지. 나의 의문에 대한 부모님의 답은 바로 나왔다.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누가 주길래 하나 얻어다 심은 거린다.


시간이 많이 흘러 알게 됐다. 감나무는 감을 먹기 위해 심은 것이 아니다. 용도는 바람막이었. 우리 집은 낮게 자리 잡은 마을의 다른 집들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센 바람 앞에 돌담이 힘없이 쓰러진 적이 많았고, 창문이 깨지고 지붕이 부서져 피해를 본 적도 여러 번 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부모님은 감나무를 심은 것이다. 공짜로 얻어서. 감의 맛이나 외향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무만 튼튼하게 잘 자라면 그뿐이다. 할머니가 손자를 대하는 마음처럼. 담장 옆에서 위로위로 쭉쭉 자라기만을 원했다.


나무는 가족들의 바람처럼 기둥이 튼실해지고 가지를 원 없이 뻗혔다. 집 안마당 돌틈을 뚫고 나와서 돌담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개나리만큼은 아니지만 거침없이 가지를 뻗어 사방으로 구역을 닖힌다. 나무가 중심을 잡고 자리를 든든하게 지키니 태풍이 불어와도 신경  일이 없다. 고마운 나무다. 50년 까이 살면서 몸서리치게 무섭고 거센 바람을 참아냈다. 바람과 맞서 싸우면서 감잎이 지붕과 마당에 후드득 떨어지고, 가지가 휘청 거렸지만 죽지 않고 살았다. 몇 개의 잔가지만 부러졌을 뿐 견뎌냈다.


감나무는 풍성한 감잎을 자랑하다 죄인이 되었다. 엄마의 눈에 거슬림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떨어진 감잎이 지붕 물받이에 쌓여서 물길을 방해한다. 길이 막힌 물받이는 낙엽과 고인 물이 만나 썩음 썩음 물받이를 삭히고 있다. 반복적으로 쌓여서 이제는 얇아진 부분에 구멍이 들쭉날쭉 생긴다. 엄마는 사위를 불러 돌담에 사다리를 놓고 감나무 가지를 잘라  달라고 부탁한다. 매일 하던 일인데도 이젠 마당에 감잎 쓸어내는 것도 힘들고 지붕을 다 망가 놓는다며 톱을 빌려와 내민다. 감나무는 휴식 중이다. 나뭇가지가 나오기 무섭게 잘라 버린다. 몸통만 남아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나무만큼이나 나이 먹은 돌담. 태풍에 쓰러진  돌들을 올려서 얼마나 줄을 세웠는지 모른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오면 곧바로 돌담이 생각났으니까. 엄마는 자꾸 돌담이 물을 많이 먹어서 배가 불룩하다고 한다. 웬만하면 통역이 되는데 이 말은 도저히 모르겠다.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근데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했더니 돌담이 집을 중심에 두고 반듯하게 세워져 있어야 하는데 비뚤어졌다는 말이다. 비를 맞으면서 그 비를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까웠는지 돌이 물을 먹었다는 것. 으로 쌓아 올린 돌들이 세월이 가면서 전체 돌담의 형태를 흐트러 놨다는 것.


두어 달 전 물 먹은 돌담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담쟁이가 안아서 감싸 주고, 장미나무가 무섭게 줄기를 뻗어도 공백은 있는 법. 딱 그곳이 무너진 것이다. 담이 쓰러진 뒤,  현관에서 보이지 않던 앞집 지붕이 보인다. 담을 다시 쌓자고 했더니 엄마가 말린다. 히 건드리면 다 무너진다고. 담장이 부분적으로 조금 낮아지니 좋다. 일렬로 줄 선 담보다 움푹 들어간 곳이 있어서 현재로선 운치가 있다. 나중에 더 무너지면 큰일이지만. 돌담에 황토를 발라 돌 틈 사이에 심어 둔 다육 꽃이 더 멋져 보인다.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이럴 때 더 잘 보인다.


엉성한 돌담 옆구리에서  몸통만 뭉툭하게 남은  감나무가 밝힌다.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제 몸에 달아 둔 한아름의 조명을 안고, 시골 밤의 흙먼지와 흙 남새로 가득 채워진 짙은 어둠을 밝혀 보겠노라 다짐한다고. 안쓰러운 마음에 거칠거칠 감나무껍질을 만져 본다. 농삿 일에 바쁘던 예전  엄마 손을 만지는 것 같다.


다리가 아픈 뒤 반강제로 농사일을 못하게 된 엄마. 흙과 햇볕을 뒤로 하니 지금의 엄마 손은 곱디곱다. 엄마랑 나만이 알게 자주 하는 말. 도시 여자 손 같다고. 손은 부드러워졌는데 일을 하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이 좀 그렇다. 담 너머 밭을 보면 일하고 싶고 미안하다고 한다. 평생을 농사일하면서 살았는데 오죽할까. 감나무의 몸통에  남아있는 짪은 가지는 큰 조명을  꼭 잡고 있는 거치대가 되고, 담장은 눈으로도 쓰러뜨릴 것 같고, 엄마는 그저 순리대로 변해가는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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