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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Aug 07. 2023

엄마와 성인이 된 딸이 함께 여행을 가면?

괜히 따라왔어

딸이 : 엄마, 나랑 단둘이 여행 갈까?

나나 : 어디로?

딸이 : 제주도

나나 : 제주?

딸이 : .

나나 : 좋아. 재밌겠다.

딸이 : 근데 조금 걱정은 된다. 친구랑 가는 것은 괜찮은데, 엄마랑 가면 일일이 다 챙겨줘야 되잖아. 그래도 일단 가보자.

나나 : 걱정은 무슨? 가면 다 된다.


오래 다닌 직장을 퇴사하고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틈을 타 딸과 여행길에 오른다. 우린 둘 다 운전면허증은 있지만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 제주공항에 내려서 버스로 이동 중이다.


난 여유롭게 창밖으로 제주의 멋진 풍경을 구경 중이고. 딸은 여유가 없다. 다음 코스, 이동수단, 음식점을 찾느라 휴대폰과 목이 붙을 지경이다. 창밖을 볼 시간이 없다. 슬쩍 고개 돌려 다른 승객들을 본다. 아. 저기도 모녀커플. 우리와 똑같은 모습이다. 엄마는 여유롭고 딸은 분주하다. 우리  딸, 저 집 투덜투덜거린다.


딸이 : 엄마도 좀 찾아봐!. 인상을 찌푸린다.

나나 : 뭘 알아야 찾지!. 기분이 별로다.

딸이 : 이러니까 엄마들하고 여행하는 걸 다들 싫어한다니까!

나나 : 젊은 너희들이 정보도 빠르고 잘 찾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건 너희도 알잖아!

위태위태하다. 버스 안에서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딸한테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


딸이 다음 코스로 찾아낸 해수욕장에 도착. 끊임없이 이어진 하얀 모래사장에 천천히 발을 내디뎌 본다. 드디어 찾아낸 보물처럼 만지고, 던지고. 뿌려 본다. 신나서 감탄을 연발하는 우릴 보며 바닷물은 누구라도 유혹할 것 같은 맑고 고상한 모습으로 손짓한다.

'어서 발을 담가 봐'라고.


딸은 가방에서 오래된 수동카라메를 꺼낸다. 24장짜리 필름이라 나에게 바라는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딸이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적에 이 카메라로 내가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딸이 : 엄마, 사진 잘 찍어, 저번처럼 이상하게 찍으면 안 돼! 필름이라 사진 많이 못 찍으니까 아무거나 찍지 말고. 괜찮은 것만 골라서 찍어. 알겠지?

 

발 담그기 대신, 바닷물과 발바닥을 간질거리는 뜨겁게 달궈진 모래를 배경으로 딸은 모델 놀이에 빠진다. 천천히 걷다가 빨리 걷다가,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는 바람 따라 움직이다 휘익 뱃살까지 살짝 엿보인다. 난 자세를 낮춰서 한 컷, 꼿꼿이 서서 한 컷, 별로인 것은 넘기고 딸아이의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까지 충실히 사진에 남긴다. 쉽지 않다. 사진작가 되기가 쉬운 게 아니다.


한참 모델 놀이를 하다가

딸이 : 엄마, 잘 찍었지? 오늘 인생샷 건져야 되는데~ 우후!

나나 : 아마 마음에 들 거야! 내가 열심히 잘 찍었거든!

딸이 : 그래그래. 잘 나왔으면 좋겠다!


그때다. 순식간이 벌어진 일. 말릴 새도 없이 벌어진 일. 딸은 구름 낀 날도 아니고 햇볕 쨍쨍한 날에는 더더욱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한다.


나나 : 안돼!. 안 되는데!. 어떻게!


딸이 갑자기 수동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더니 필름을 머리 위로 쫘악 펼친다. 햇볕에 대고 필름에 찍힌 사진을 볼 거라며. 난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순간 할 말을 잃는다. 잠시 후,


나나 : 필름을 햇볕에 노출시키면 안 된다는 거 몰랐어? 그렇게 하면 사진이 다 타버리잖아!

딸이 : 몰랐어, 엄마가 안 가르쳐줬잖아!

나나 : 넌, 수동카메라를 가지고 오면서 기본적인 그것도 몰랐단 말이야?

딸이 : 전혀 몰랐지!


너무나 당당한 딸의 말과 행동에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며 골라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니만 힘들게 찍은 사진을 모두 햇볕에 바치고 말다니. 세상에! 허탈감에 어떻게 해야 할지. 한동안 달궈진 하얀 모래알 보다 더 뜨겁게 딸과 난 각자의 입장을 내세운다. 티격태격 또다시 말다툼은 시작되고,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그다음 여정엔 어떤 일로 말다툼이 발생할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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