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서둘러 집에 도착한다. 저녁밥을 같이 먹기 위해 먼저 딸의 퇴근 시간을 체크했더니, 딸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임을 통화로 확인한다. 운동복으로 대충 갈아입고 소고기를 프라이팬에 올린다. 남편은 내가 마트에서 사 온 냉동, 냉장 식품을정리 중이다. 딸이 집에 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밥 먹을 시간이 되자 굽고 있던 고기가 바로 먹을 수 있게 익었다. 시간을 딱 맞췄다. 저녁밥을 먹은 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알찬 하루를 마무리 한 뒤 잠든다. 다음날 퇴근 후,
우선 시원한 우유 한잔을 마신다. 어! 나의 눈은 주방 쪽을 누비는 남편의 동선을 따라, 뒤태를 따라가다 딱 멈춘다. 시선이 머문 곳에는피자 박스 두 개가 불쑥 보이고,
나나 : 냉동피자가 왜 저기에 있지! 설마! 여보, 냉동 피자를 어제부터 실온에 둔 거예요?
남편 : 나야 모르지! 난 측면만 보고 과자 원플러스원인가 해서 두 개를 겹쳐서 실온에 보관했지!
나나 : 피자 그림이 이렇게나 큰데 안보였다고요?
남편 : 안 보였다니까! 그럼 다음부터는 마트에서 장을 보면 직접 정리하던가? 괜히 도와주고 욕먹네!
나나 : 당신이 정리하고 있어서 난 고기 굽고 있었지!
남편 : 마트에서 사 가지고 온 식품 정리를 빨리 안 하고 있어서 내가 했지.
나나 : 나도 바빴잖아요! 도와주려면 똑바로 했어야지! 정리하는 사람이 냉동실에 넣을지, 냉장고에 넣을지 실온에 둘지 판단을 잘했어야지.
남편 : 운동 다닐 생각만 하지 말고 살림이나 똑바로 살아!
나나 : 거기서 갑자기 살림이 왜 나와요? 당신은 평소 응원 한다 하면서도, 은근히 내가 운동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거 같네요!
남편 : 내가 안제?
나나 : 지금도 그렇잖아요!
무더운 여름날인데,
전날 사 온 냉동피자가 실온에 방치되어 하루를 보냈다. '어떻게 하지? 버려야겠지?' 혼자서 묻고 답하다 피자 포장지를 뜯고 있다. 버리려 해도 일단 포장은 뜯어야 하니까. 에라 모르겠다. 쓰레기통 대신 에어프라이기에 피자를 넣고 있는 나. 5분을 기다리는 동안 나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에어프라이기에서 꺼낸 피자는 시각적으로, 후각적으로 먹고 싶게 만든다. 자른다. 작은 조각 3개를 가져와 의심 가득한 얼굴로 피자를 입에 넣는다. 식감과 냄새, 맛을 생각하며 무엇 하나라도 이상함을 감지하겠다는 표정으로. 도저히 불안감에 다 먹지는 못하겠다. 조금 남긴다. 그 모습을 창가 쪽 소파 끝에 앉아서 유심히 지켜보던 남편,
남편 : 다 먹어야지 왜 남기고 그래? 먹어 보고 괜찮은지 보면 되겠네!
나나 : 이러다 식중독 걸리는 거 아냐? 한 번 먹어봐요?
남편 : 난 안 먹어! 당신이 먹어 보고 괜찮은지 보면 알겠지? 배가 아프거나, 몸 어딘가 증상이 나타나면?
나나 : 내가 실험맨이야?
그 사이 퇴근한 딸에게 현재 일어난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사건의 과정에 대한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딸이 하는 말,
딸이 : 아빠는 글자도 안 보이나?
남편 : 눈이 나빠서 글자가 안보이더라!
딸이 : 피자 사진이 그렇게나 큰데. 아빠? 엄마한테, '괜찮다!. 내가 더 맛있는 피자 사다 줄 테니까 냉동 피자 버리고 마음 풀어'라 그래야지!. 그걸 먹으라고 했어? 이번엔 아빠가 잘못했네!.
남편 : 내가 미안하다. 마음 풀어. 근데 나를 좋아해서 골랐으면 이런 말도 들어줄 줄 알아야지!
나나 : 좋아서 선택한 남편인건 맞지만, 아닌 거는 아닌 거고, 잘못된 건 잘못된 거지.
남편 입장에선 바쁜 나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 결국 이렇게 되었다. 눈치 없이 까만 봉지에서 버려진 피자는 맛있는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다. 남편이 직접 아파트 공동 음식물쓰레기통에 부부 싸움의 근원이 된 피자를 과감하게 버린다. 서로에게 마구 던진 상한 감정 찌꺼기도 함께. 우린 때마침 산들산들 마중 나온 바람을 만나,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즐거운 걸음으로 운동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