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그러다 숨 막혀요.
어둑어둑한 산책길 중간중간에 징검다리처럼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불빛 하나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듯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렸다. 어디 보자, 지금 기온이 17 도구나. 손끝을 매만지는 바람이 선선했다. 얇은 니트 스웨터를 홑겹으로 입어서 그런지 갈비뼈 사이로 찬물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몇 발자국을 더 떼자 저 멀리, 반쯤 포개진 듯한 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문 하나 일지 않는 호숫가 옆의 도시의 불빛은 반짝이고 있었고, 아마도 오래전부터 눈을 감고 있는 듯한 둘에게 그 풍경은 하등의 의미가 없었으리라.
규칙적으로 두 번씩 뚜벅거리는 내 발소리가 혹에나 방해라도 될까 다리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반쯤 포개진 연인들이 이내 더 가까워졌다. 아, 키스하던 중이었구나. 두 사람이 뭉개져 있는 커다란 모래주머니처럼 보였던 이유였다.
"아..... 저게 뭐야."
내 발걸음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혹시 종종걸음으로 뛴다 해도-내게 굳이 그럴 이유도 없지만-그들의 무미건조하고 엉성한 키스 장면을 눈앞에서 지울 방법이 없었다. 가던 길을 돌아갈 수도 없는 내게, 유일하게 보이는, 심장을 가진 피사체 둘이 저렇게 뭉개져 있는데, 하필이면 그 길은 아주 좁은 산책길이었다. 징검다리 같은 가로등 덕에 중간중간 이가 빠진 것처럼 어두컴컴한 길이, 차가운 바람과 만나 조금은 스산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조용히 이 순간을 과거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분명 리드하고 있는 것 같았던 둘의 키스는 정말 끔찍했다. 남자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40도 기울어져있었고, 여자의 목은 기이하게 뒤로 꺾여 있었다. 남자의 안경테가 여자의 창백한 왼쪽 뺨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5초..... 6초..... 7초가 지나도록 둘은 마치 심장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대로였다. 이런 걸 '목석'이라고 하던가. 남자는 입을 붕어처럼 벌리고 있었고,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입이 좀 더 큰 붕어와 좀 더 작은 붕어의 만남. 아마 여자에게도 이건 첫 키스였나 보다.
들숨 날숨도 없고, 오가는 타액도 없고, 혀의 움직임도 없고, 포개어지는 입술도 없는 그런 키스. 스킨십도 없고, 따뜻한 쓰다듬음도 없는, 풀었다 놓는 밀당도 없는 그런 키스. 마치 둘은 오늘 저녁 감자탕을 먹었고, 뼈에 붙은 살을 발라 먹다가, 입술 양쪽에 양념이 묻은 사람들 같았다. 거울을 보며 입 주변에 뭐가 묻었는지 확인하는 사람들처럼, 뻐끔뻐끔 물고기 밥을 먹는 붕어들처럼. 그렇게 벌어진 입 둘이 병뚜껑 닫듯이 딱 들어맞은 채로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아... 저기요. 죄송한데... 키스 진짜 그렇게 하시면 안돼요."
"네?"
"키스 처음 해보셨어요?"
"아.. 아니요."
"키스는, 입술을 아래로도 위로도 포개었다가, 입술의 촉감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하고요. 잠시 멀어졌다가 가까워질 수도 있고요. 가끔은 아주 느리게, 고개를 조금씩 돌리면서 코도 비비고, 입술 전체와 혀를 잘 써 가면서 해야 해요. 거친 숨소리도 느꼈다가, 이내 느려지는 숨도 느꼈다가, 다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졌다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요. 가끔은 입술을 깨물거나 살짝 긁어줄 수도 있고요. 혀로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수도 있어요."
"아 근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아니, 길을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두 분이 눈에 들어왔는데, 두 분이 키스를 너무 끔찍하게 하고 계시잖아요. 도무지 한 마디 안 할 수가 있어야죠. 강렬함이나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아니, 그리고 손은 뒀다 뭐해요?"
"아니 저희 둘이 키스하는데, 키스에 무슨 자격증이라도 있답니까?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 그래도, 그렇게 키스하시잖아요? 그럼 여자분이 백퍼 딴생각하게 돼요. 언제 이 남자의 가슴을 살짝 밀쳐 내야 할까, 살짝이라도 밀어내면 상처 받지 않을까. 그렇게 답답해진다고요. 피어나려던 사랑도 쩔게 식어요. 그리구요, 그러다 숨 막혀요.
"아니, 그러니까 당신이 키스 전문가야 뭐야? 무슨 상관인데요?"
키스를 못하는 남자를 보았다. 문득, 규칙적으로 두 번씩, 세 번씩 불규칙하게 뚜벅이는 내 발소리가, 지금 뛰고 있는 그 둘의 심장소리보다 훨씬 더 크고도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발자국을 더 떼자 나무 의자 위에 기묘하게 포개져 있던 연인들은 이내 멀어져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불빛 하나가 나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듯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렸다. 혹시나 해서 두근거리며 티가 나지 않게 잠깐 돌아본 그 둘은, 이내 흩어져 버릴 모래성 같이 흐물거리고 있었다. 여자가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섞인 오그라든 손으로, 안경테로 자기를 누르고 있는 남자를 살짝 뒤로 민 게 아닌가 상상했다. 뉴스에서 일교차가 크다고 했었나. 갈비뼈 사이로 얼음물이 진하게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