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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Jul 04. 2019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아쉬움

성장영화의 진부함에 양념친 '그래, 결심했어'의 오글 감성

[스포 있습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본지 얼마 안돼서 일까. 어색하고, 허무하고, 공허한 느낌이 든건. <엔드게임> 마지막에 등장했던 피터 파커는 토니 스타크가 만들어준 슈트를 입고, 전 인류가 위기에 처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해, 목숨 바쳐 타노스와 싸우며 온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이었는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는 매 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랑에 눈 먼 사춘기 소년으로 등장한다.


쳐다 보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만 같은 MJ에게 어떤 프러포즈를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세상을 짊어지기엔 어깨가 너무나 무거운 16살의 아이'. 그가 바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스파이더맨'이다.  


매 순간 위트있지만, 결정적 순간에 '감동 폭탄'을 제대로 먹이는 아이언맨, 사명감 흘러 넘치는 '아메리칸 애스' 캡틴 아메리카, 부족과 인류를 지키는 '와칸다 포에버'의 블랙 팬서, 온몸으로 세상과 맞서 싸우다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블랙 위도우. 마블의 히어로들에게는 뭔가, 보통 사람 이상의 책임감과 감정을 뛰어넘는 '고귀함'이 있었다. 그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고유의 매력과 멋진 정의로움이 있었다.

피터 파커는 나이가 어려서일까. 세상을 구하고 싶어 안달나기도 했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눈 열정과 호기심이 넘쳤던 전편 속 스파이더맨은 어디 갔을까.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이번만큼은 반드시 고백을 해야 해서, 임무가 주어져도 일단은 프러포즈가 먼저인 사춘기 소년으로 퇴화해 버린 스파이더맨을,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영화 내내 들었다.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
그게 마블의 메시지는 아니었잖나.


마블이 로코물이 아닌 이상, 보통 사람이 영웅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성장 영화가 아닌 이상, 사춘기 소년의 사랑이 이렇게 영화를 지배하는 주제가 되어도 되는 건가 싶다. 그 주제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너무 압도적으로 영화 전체에 숨 막히는 '랩'을 씌워버렸다.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게.


게다가 피터 파커는, 사랑을 좇고 갈구하지만, 그래도 전편에서 숱하게 인류를 구했던 그런 영웅이었는데 말이다. 혹에나 피터 파커가 40-50대가 되어, '아, 이제 세상을 구하는 건 진절머리가 나', '도대체 왜 나만 남은 거지?',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이제까지 주야장천 세상을 잘만 구했던 우리의 스파이더맨이었는데.


그런 그가 '나는 매우 이제 지쳤고', '사실 토니가 EDITH(아이언맨이 남긴 슈퍼 안경)를 주고 싶었던 건 내가 아니었을지도 몰라'는 말울 남기며, 굳이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에게 EDITH를 넘겨주는 장면, 그 후에 바로 이어지는 제이크 질렌할의 '직원 회식 건배사' 시퀀스는 정말 오글거려서 보기가 힘들었다. 오글오글.


그래, 결심했어


그렇게 정신 못 차리던 스파이더맨이, MJ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그래 결심했어. 놈들을 혼내어 주고야 말 거야'라는 대전환의 결심을 하는 건, 아이언맨의 오랜 친구인 해피와 서로 투닥투닥거리는 60초도 안 되는 대화 중에 끝나버렸다.


'나도 너무 힘들어 죽겠다'고 찔찔 대던 피터 파커가, 갑자기 대오각성을 통해, '새 슈트를 입고 그놈들을 끝장내(I'm gonna kick their asses.) 버릴 거야'라고 '뾰로롱'하는 장면은,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외치며 한바퀴 '뾰로롱' 도는 시간보다 더 짧았다. 무려 24년 전 '일밤' <인생극장> 같았다. 오글오글오글.



가끔은 까불거렸지만 내내 영웅이었다가, 한때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가, 모든 질곡을 다 겪고 굳이 이제 다시 16세 아이로 돌아갔다.


스파이더맨은, 이제 이번 영화를 통해 MJ와 사랑의 결실을 이루었으니, 앞으로 어떤 동력으로 인류를 구하고 싶어 질까. 그리고 나는 이제 어떤 동력으로 정체까지 드러난 스파이더맨 후속편을 보러 가고 싶어 질까.


그냥 '오락 영화'인데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내가 피곤한 걸까. '와 개꿀잼, 역시 마블은 액션이지.'라고 행복과즙 터지게 마무리해야 할까.


아무래도 <어벤져스-엔드게임>이 너무 잘 만든 영화였나 보다.


영화 본지 3시간이 지났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온몸이 오글오글 거린다. 게다가 악당이 홀로그램이든 뭐든, 엘레멘털, 즉 땅,불,바람,물 이런 식이면 너무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같잖아. 그게 게다가 드론이면, 평창 동계올림픽 드론쇼 감동보다도 못하잖아. 그리고 미스테리오는 초록색 면봉 같잖아.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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