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의 미학이 깃든 나시 르막

지구별 우체통

by 타인의 청춘

고소한 코코넛 밀크 향이 퍼지는 밥과 바삭한 멸치, 담백하게 볶은 땅콩, 여기에 촉촉함과 시원함을 더해주는 오이와 삶은 달걀 반쪽. 이 모든 재료들이 바나나 잎사귀에 소담히 싸인 나시르막(Nasi Lemak)은 말레이시아의 국민 음식이자 소울푸드(Soul Food)다. 매콤한 삼발(Sambal) 소스에 비벼먹는 나시 르막은 한국의 비빔밥에서나 느낄 수 있는 풍성함을 맛보게 한다.

말레이어로 '쌀밥'을 의미하는 나시(Nasi)와 '기름 또는 지방'을 뜻하는 르막(Lemak)의 합성어인 나시 르막은 명실공히 말레이시아의 국민 음식으로, 한국의 불고기나 김치와 맞먹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인들의 아침식사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음식임은 물론이고 활기가 넘치는 출근길에 한 손에는 음료수, 다른 한 손에는 나시 르막을 들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주 저렴한 경우엔 1링깃, 우리 돈으로 300원 남짓한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가 하면, 나시 르막을 응용한 피자, 햄버거, 심지어 케이크가 선 뵌 적도 있으니 이쯤 되면 나시 르막이 왜 말레이시아의 국민음식이라고 불리는지 쉽게 수긍이 간다. 2009년 말레이시아 통일문화예술유산부의 국가 유산에 포함된 나시 르막이 2016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건강에 좋은 세계 10대 아침 식사'에 오른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소를 빠짐없이 먹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합도 없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여섯 시간 정도면 닿는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인구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중국계, 인도계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나라다. 그래서 '아시아의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도 불린다. 한 나라 안에 살고 있는 민족이 다양하다 보니 자연스레 종교, 문화, 사용하는 언어까지 제각각이다. 말레이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인 중국어와 인도어를 사용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영어도 함께 병용한다. 이런 언어적 배경 덕분에 해마다 말레이시아를 찾는 수천만의 관광객들도 이질감 없이 현지인들과 어울리기 쉽다고 느낀다.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은퇴 후 살고 싶은 나라 10위 안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또한 말레이시아의 수용적이고 유연한 다민족 문화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꽤나 보수적일 거라 예상되는 이슬람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며 각기 다른 민족이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오래전부터 문화적 종교적 충돌이 없지 않았고, 민족 간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을 존중한 결과일까.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각자의 언어, 종교, 문화를 잇고 발전시키며 조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간다. '사뚜 말레이시아(Satu Malaysia)'즉, '하나의 말레이시아'라는 슬로건 아래 나라사랑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사람들. 바로 이 근사한 어우러짐이 내게는 한 접시의 푸짐한 나시 르막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재료가 오묘하게 섞이면서 풍성한 포만감과 행복감을 주는 한 접시의 소울푸드처럼 말이다.

이제 말레이시아에서 산 지 3년 가까이 된 나에게 누군가 말레이시아를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나시 르막이라고 답할 것이다. 각기 다른 재료의 근사한 어우러짐처럼 관용과 포용으로 서로를 따스히 끌어안는 나라, 말레이시아. 그래서 이방인에게도 무척 따뜻한 나라. 내일도 아침 식사로 나시 르막을 먹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 볼까 싶다.



이주혁

EBS 라디오 프로그램 <오디오천국>의 '그곳은 어때 말레이시아' 진행자이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 말레이시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리테일 채널, 홈쇼핑 등 한국 기업의 말레이시아 진출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가, 스쿠버 다이빙, 글쓰기와 책 읽기를 즐기며 가슴 뛰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습니다.


* 위 글은 월간 샘터 8월호의 <지구별 우체통>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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