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배려, 종교, 그리고 여성에 관한, 비행기 위 웃지 못할 이야기.
19년째 형 동생으로 지낸 EBS 모닝스페셜의 인연인 Matthew의 말레이시아 방문 휴가차, 그야말로 서프라이즈로 갑작스럽게 랑카위행을 택했다. 쿠알라 룸푸르에 7일, 랑카위에 8일이나 머무르는 휴가에,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저녁만 한두 번 먹고 보낼 수는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과, 나 자신에게 보내는 '초단기 휴가 계획서'였달까.
쿠알라 룸푸르에서 랑카위로 가는 비행시간은 1시간 정도로 짧기도 하고, 초저가 항공권이 많은 에어아시아, 즉 저가항공(LCC)이 다 그렇듯, 내가 원하는 자리를 사전에 고르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에, 이번엔 자리도 고르지 않았다. 그냥 '매튜 형네 가족이랑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짧게라도 랑카위에 가보자'가 기승전'결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어아시아에서 웬걸. 핫시트를 선물해 주었다 - 정말 무슨 연유였는지 궁금하다-. 들뜬 기분도 잠시.
내 자리는 ZONE 1, 3B였고, 3 by 3의 중간 좌석에 끼어 타게 됐지만 개의치 않았다-나는 보통 반쪽의 여유라도 즐기기 위해서 복도에 앉는 사람이지만- 탑승해 보니, 복도 쪽 3C에는 아까 보딩게이트에서 "도대체 무슨 줄이 ZONE 1, 2, 3인지 구별이 안 간다"며 내게 수줍게 질문을 던졌던 유러피안-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Oh, There you are. 오, 또 너구나?" 내가 ZONE 1은 여기가 맞다고 알려드린 이유에선지 환하게 웃으시며 서둘러 일어나 내가 가운데 좌석에 앉는 걸 허락해 주셨는데, 2-3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중동 지역에서 온 듯한 커플이 타더니 유러피안 아주머니께,
"Sorry, but we cannot be separated. Can you change the seat for us? 따로 앉을 수가 없는데, 좌석 좀 옮겨 주실래요?" 나에겐 전달되지도 앉았던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3C 아주머니는 적잖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Excuse...me? 뭐라고요...?" 당황하신 아주머니, 허나 이어서 답하셨다.
"Well, I don't really mind, but this guy sitting next to me...뭐..저는 상관없긴 한데, 제 옆의 이 청년은..."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If you cannot move over to another seat, then can you change the seat with this guy? My wife cannot sit right next to a stranger man. 좌석을 못 옮겨주시겠다면, 이 남자랑 자리라도 바꿔 주실래요? 제 와이프가 낯선 남자 옆엔 앉을 수 없어서요."
이 대화가 오가며 자연스레 탑승은 지연되었고, 승무원이 찾아와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니 일단 자리에 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니캅을 입은 여성과 남성의 느긋한 요청(?)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동시에 여기저기서 "You can respect our religion. 저희의 종교를 존중해 주세요"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 혹시 나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어찌 됐건 결국 나는 복도석 3C로 자리를 옮겼고, 혹시나 나처럼 '반쪽의 여유'를 즐기는 걸 좋아할지도 모르던 유러피안 아주머니는 3B, 가운데 자리로 몸을 옮겼다.
나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잘게 채 썰어, 무엇이 맞는지, 틀린 지, 내가 모르던 무언가는 없는지, 뒷배경에 감춰진 진실이 있는 건 아닌지 등을 매우 심각하게 들여다보는 '예민한 남자'이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3B에서 3C로 좌석을 '고작' 한 칸 옮긴 걸로 지금 이 고민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결단코 NO. 아니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제대로 된 결론이 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3C로 자릴 옮기고도 니캅을 입은 여성들이 끝없이 들어왔다. 다른 관광객들도 섞여 있는 건 물론이었다.
"Hello, but can you please exchange seats with mine?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혹시 저랑 자리를 옮겨주실 수 있나요?" 이런 대화가, 그 뒤로-정확히 카운트했으니 토 달지 말자-7번이 반복되었다. 정말 놀라운 건, 가끔 'Sorry'를 달고 나오는 요청이 전혀 'Sorry'해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어떤 남자는 일단 남의 자리에 먼저 앉고, 해당 자리의 주인이 왔을 때 자기 표를 보여주면서 '거기로 가면 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런 사람이 끝이 아니었다. 그냥 묻지도 않고 다른 자리에 먼저 앉은 뒤, 승무원을 불러 '내가 내 딸과 같이 앉아야 하니, 당장 내 옆사람-저기요, 옆사람도 귀가 있...-의 자리를 옮겨달라'는 말을 했던 사람도 있었다는 게 진짜 놀랠 노짜였는데. 자리만 옮기는 소동으로 끝난 게 아니라 그 대화를 촘촘하게 나누는 일곱 번의 시도마다 뒷사람들이 통로를 지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비행기는 제시간에 뜨지 못했다.
그때마다-이들이 무슨 단체 관광객이었는지 모르겠지만-"저희의 종교를 존중해 줄 수 있잖아요?"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게, 나의 랑카위행 '떴다 떴다 비행기' 모드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오히려 내 옆에 앉은 유러피안 아주머니가 '샀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앉아, 억지로 반쪽의 자유를 즐기게 된 나도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데, 자리를 바꿔 달라고 요청한 저 사람들의 마음은 대체 어떤지 너무나 궁금했다.
지금 누가 누구를 배려하고 있는 거지?
대체 누가 누구로부터 존중이 필요한 거지?
랑카위Langkawi는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무슬림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해마다 건기가 되면 무슬림 국가의 가족이나 커플 여행객이 랑카위에 휴식을 취하러 오곤 한다. 물론 이슬람이 국교인 말레이시아에서, 이런 무슬림 커플들을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니캅을 입은 승객들이 이렇게 많이 비행기에 동시에 타는 건 사실 본적이 별로 없었다.
니캅을 입은 여성들은 일단 '이슬람 율법의 힘'이 강하고, '여성에 대한 인식'이 소위 '남다른'-말을 줄이기로 한다-국가에서 왔다는 표식처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흔히 통용해 말하는 히잡Hijab을 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얼굴을 내놓고, 어깨, 목, 가슴 언저리를 가리는 수준, 현지어로 '뚜둥Tudung'을 쓴다. 온몸에서 오로지 '눈만 보이는' 니캅을 입었다는 건, 이슬람 주의가 훨씬 더 강한 나라에서 왔다는 걸 뜻한다. 그나마 눈마저도 그늘막으로 가리는 '부르카'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던 건지.
무슬림 율법이 더 강한 나라들에서는 보통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차원'에서 부르카, 니캅 등을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허용되는 노출 수준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신께서 창조하신 인간 중, 가뜩이나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가 노출되었을 때, 남성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신체 모두 가려야 한다'는 그들의 기준은, 종교적 해석에서는 자유로울지 모르나, 21세기적 '평등, 인권, 자유' 등을 외치는 작금의 세태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지 '무슬림'이 아니면 사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법도 하다. 여성의 자전거 타기, 운전을 오랫동안 금지해왔고, 여성은 참정권도 없었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니캅이나 부르카를 입어야 한다는 의견이 74%로 나오는 건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비행기가 내릴 때까지 이 생각에 골몰했다. 내가 저 여성들의 남편이었다면, 그래서 내 아내를 낯선 남자와 함께 동석시킬 수 없고, 내 딸을 내 옆좌석에 앉혀야만 했다면, 나는 이렇게 했을 것이다. 혹에라도 내가 돈이 많은 남자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아내의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못하도록 추가 좌석까지 구매할 의향이 있다.
첫째, 나는 먼저 좌석을 구매했을 것이다. 요즘처럼 웹, 앱을 가리지 않고 비행기표를 사기 쉬운, 게다가 좌석까지 미리 지정하고, 체크인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이 어딨다고. 심지어 이날의 핫시트 추가 비용은 제일 비싼 가격이 30링깃, 우리 돈으로 약 9천 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둘째, 나는 부득이한 경우, 반드시 아내와 같이 앉아야 한다면, 먼저 승무원과 상의를 하거나, 둘째, 승무원들의 '간곡한 요청'처럼, 먼저 앉았다가 탑승객들이 불편함 없이 다 타고나면 자리를 바꾸었을 테다.
셋째, 만에 하나-아직도 너는 무슬림을 이해하지 못해, 무슬림을 욕되게 굴었어'라고 말한다면 입을 다물겠다.- 정말 1초라도 낯선 남자의 옆에 내 부인을 앉힐 수 없었다면, 나는 내 부인과 함께 맨 마지막에 탑승하거나, 아니면 먼저 탑승해 맨 뒤로 가서 다른 승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길 기다렸다가, 좌석 변경 요청을 했을 것이다.
넷째, 나는 자리를 옮김으로써, 그들의 종교를-나도 모르는 사이-존중해 준 사람이 되었지만, 가는 내내 이 생각을 하느라 불편했고, 이륙이 늦어진 것이 불편했고, 가운데 끼인 유러피안 아주머니의 심기가 걱정됐다. 때문에 원래 좋아하던 복도 좌석에 앉은 '반쪽의 여유'도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자리도 아니었을뿐더러,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결에 자릴 옮긴 게 영 탐탁잖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 진심으로 양해를 구했다면,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을 텐데.' 거기에 더해, 나 때문에 자리를 옮겨야 하는 모두에게 진심으로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다섯째, 내 딸을 아무리 내 옆에 앉히고 싶어도, 나는 절대로 아직 앉지도 않은 남의 자리에 가서 먼저 떡하니 앉아 자기 자리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표를 보여주며, '니가 가라 하와이'를 외치지 않았을 거다. 이건 정말 최소한의 상식이자 배려다.
마지막으로, '우리 종교를 존중해 주세요'를 외칠 게 아니라, '너의 생각과 종교도 존중하고, 혹에나 니가 전혀 그럴 맘이 없다는 것도 알지만'이라는 배려를 잔뜩 깔고도 어쩔 수 없다면, 나는 자리 바꾸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 여기서 '여전히 너는 종교와 삶이 일체 된 이슬람교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라고 꾸짖겠다면 포기하겠다. 욕하라. 내게 돌을 던져라.- 그래서 결론은 뭔가. 하늘 위에 5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잠깐 떴다 내리는 비행기에서, 모든 승객이 탑승하는 걸 방해하고, 뒤에 오는 탑승객들을 배려해 달라는 승무원의 목소리는 허공을 떠돌게 만들고, 이륙까지 늦춘 그들이 얻는 보상이 고작 '나는 낯선 남자로부터 오늘도 내 아내를 지켰다'는 승리 의식이라도 되는 건지.
나는 결단코 그들의 아내를 쳐다볼 생각도 없고 만지거나 범할 생각도 없으며, 혹시나 그 여성이 내가 옆에 앉는 게 불편하게 느낀다면, 의식으로라도 내 몸을 종잇장처럼 10분의 1로 크기로 구기고, 내가 내뱉는 공기조차도 그쪽으로 가지 않게 숨이라도 안 쉬었을 텐데.
그런데도 내가 '우리 종교를 존중해 주세요'라는 외침 때문에 그들과는 직접 말 한마디도 못해보고 자리를 옮겨야 했다면, 만약 내가 그 좌석이 좋아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그 자리를 구매하기라도 한 거라면, 나도 내 가족과 내 애인, 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면, 나는 대체 무어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미안하지만 저도 제 가족과 여행합니다. 제 가족의 행복을 존중해 주세요."
"죄송하지만 이 자리 제 돈 주고 산 자리거든요. 미리 구매하시지 그러셨어요."
"아니요, 싫습니다. 당신의 종교는 존중하지만,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죄송하지만 저도 자리를 바꾸는 것은 불편합니다. 그냥 다른 자리로 가서 자리를 바꿔주세요."
대체 뭐가 정답이었을까. 혹은 정답도 오답도 없는 걸까.
진짜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비행기 상식으로만 생각해도 이건 내가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첫째, 이륙 전 자리를 옮기는 일은 반드시 승무원에게 말해야 한다. 물론 승무원들은 이륙 전에 자리를 옮기길 권하지 않는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반드시 무게 중심 또는 균형이 필요한데, 허락이나 예고 없이 자리를 너무 많이 옮기게 되면 '이륙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글도 수두룩하게 봤다.
둘째, 내가 만약 멀리 있는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면, 항공사리스트 속 내 좌석은 3B로 기록됐겠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수백 명의 승객 중에 하나인 내가 28C에 앉아있기라도 했다면, 만에 하나 그날 무슨 일이 생겨 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했다면, 우리 부모님은 사고 수습을 위해 3B가 있었던 동체 주변에서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앉는 28C에 앉은 나를 찾으며, 평생을 울부짖고 지내셨을 것이다. 잠깐이나마 '잠재적 성범죄자'가 되었던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말이다. 과하다는 것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면 어쩔 텐가.
나는 예민하다. 생각이 많다. 그래서 불편한 것도 많다. 다만, 난 타인의 종교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아니다. 오히려 의식을 하기 때문에 역으로 불편함이 없을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3년은 무슬림, 불교, 천주교, 개신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었다. 많은 것을 배웠던 소중한 기간이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믿든 그건 그들의 권리, 선택이자 자유다. 더군다나 그런 종교가 주어진 환경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특히 부르카와 니캅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의 예방책이자 의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 나는 추호도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겐 기실, 딱히 그럴만한 권리도 없다.
나는 예민하다. 생각이 많다. 그래서 불편한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남도 '조금은 불편해 주었으면' 하고 최소한은 바란다. 내가 최소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상대의 불편을 배려하고, 안온함을 지켜줄 수 있듯, 그렇게 상대방도 조금이라도 나의 불편을 배려하고, 안온함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부르카와 니캅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의 예방책이자 의무라고 말하는 나라의 당신이라면, 당신의 아내를 보호하려던 60분의 즐거운 시간이 내게는 얼마나 가시방석 같았을지 조금은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다.
잘 안다. 샤리아 율법이 한 나라의 헌법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을. 너무 궁금해서 책도 읽고 공부도 했고, 이해하려 애도 썼다. 하지만 적어도 부르카와 니캅으로 여성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려' 잘 아끼고 보호하고 있으니 '무슬림 여성'이 다른 지역 여성들보다 더욱 특별한 존재로서 보호받고 있다고, 우리가 너희보다 여성을 잘 보호하고 있지 않냐며 나를 굳이 '설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과 함께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도, 나의 21세기적 세계관에서 봤을 때, '여성의 신체의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내게 되면, 성적 욕망을 좇는 남성들의 대상화가 될 수 있으니, 성장하면서부터 가슴이 드러나지 않도록 등을 구부리고 조신하게 걸어야 한다'는 논리를 이해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고 건강하게 '똑바로 걸었으면 좋겠다'라는 나의 바람은, 단지 내 눈이 즐겁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만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성적 욕구의 대상을 찾고 싶어서가 아니란 말이다. 그저,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생겼던 그 굴곡이 작던 크던 자기의 의지대로 등을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여성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자연스럽다'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당신의 딸이, 당신의 아내가, 당신의 어머니가 '남자들이 쉽게 흥분할 수 있으니 등을 구부리고 가슴을 최대한 가리고 조신하게 걸으라'는 말 때문에, 평생 척추측만증이나 디스크로 신음하는 걸 지켜보는 게, 적어도 나에겐 더 큰 고통이다.
그러니 제발,
당신이 차지하고 싶은 어떤 구석만큼은
내 자리도, 내 생각도 존중해 주세요.
* 글쓴이가 직접 진행하는 EBS오디오천국 [그곳은 어때 말레이시아] 무료 다시듣기 링크입니다. 구독, 좋아요, 질문, 댓글 모두 환영합니다.
* 진행: 이주혁 / 게스트 : 초딕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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