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나도 나를 못 믿겠지만, 우리 모두 함께 승리하자.
나는 작가로 일해본 경력이 있다. 그것도 방송 작가. 심지어 책도 썼다. 원고를 쓴다는 부담감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실수를 꽤 자주 했었다고 기억한다. 거기에 똑똑하시면서도 철저한 방송인의 사명을 가슴에 품고 계셨던 PD님이 계셨기에-지금도 감사드립니다-많은 맞춤법 교정을 받곤 했다.
"주혁 씨, 방송 10분 전인데~
원고 2페이지에 그거 잘못 쓴 거지?"
"주혁 씨, 다섯 번째 페이지에
**라고 썼더라?
그거 원래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런 맞춤법 지적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 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긴 했지만, 그때 PD님께 배운 맞춤법은 지금도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글을 쓸 때마다, SNS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내가 쓴 글을 네댓 번 다시 읽게 만든다. 뭔가 틀린 건 없나, 혹시 내 글을 읽는 분들이 잘못된 맞춤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진 않을까 싶어서.
요즘 같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맞춤법을 100% 지키며 살아남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정갈하고 기본을 지키는 글을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신조어도 써보고 싶고, 세대별 유행어도 써보고 싶다 보면, 맞춤법이 뭐가 그리 대순가' 할 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언제나 나의-비루하고도 재미없기 짝이 없는-콘텐츠를 보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나도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누군가도 조심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종종 있다는 걸 고백한다. 그중에 오직 나에게만 눈에 거슬리는 몇 개만 꼽아 본다. 써리~원. 서른 하고도 한 개 더. 개인적인 글이나 포스팅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케팅 페이지나 광고 이미지, 뉴스 기사에서도 잘못된 맞춤법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럴 때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는 몇 가지 불편한 예다.
맞춤법은 솔직히 '브런치 작가'라는 나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정말 쉬운 걸, 써보거나 말해보면 너무 이상한 걸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쓰는 건 때론 '직무유기' 아닐까 싶다.
좋은 시간 되세요
상대에게 하는 말이라, 대상이 당신인데, 당신이 = 좋은 시간이 될 수는 없다. 좋은 휴가 되세요. 좋은 명절 되세요. 행복한 연휴 되세요. 다 틀린 말이다. 헷갈리면 전부 '보내세요'라고 쓰는 걸로.
퀴즈를 맞추시면
맞춤법은 맞춤법이고, 퀴즈는 맞히는 거다.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복수의 복수화..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여러분드을~~ 하면 있던 정도 식는다.
역전앞 / 모래사장 / 가장 최근에 / 10월달 / 약수물 / 유산을 남기다 / 새로운 신제품...
역전이 역 앞인데 거기다 앞 붙이면 안 된다. 제발 한 번만 하자.
갭차이
갭이 갭인데...갭차이는 차이 차이인가 갭갭인가.
문안
문안은 인사고, 무난한 건 무난한 거다.
요세
요새 이런 거 틀리면 사랑도 식는단다.
단언컨데
단언컨대, 데 아니다
금새
금세 맞춤법을 또 틀렸어.
왠만하면 > 웬만하면
웬만하면 조심하자
사겼다 > 사귀었다.
맞춤법 이렇게 쓰면 못 사귈 걸요.
않 하고 않 돼 않 된다
이런 거 안 하고 안 돼 안 된다
나의 바램
노랫말들에선 허용될지 몰라도 '바라다', '바람'이 맞으니 '바래다', '바램'으로 쓰지 않길 바라.
일일히
이걸 다 일일이 말해줘야 알면 내가 힘들어.
몇일
며칠 동안 얘기해도 맞춤법 틀리던 너
깨끗히
지금까지 잘못 쓴 거 깨끗이 수정해 보자.
미쳐
미처랑 미쳐를 헷갈리거나 헛갈리게 쓰면 내가 미쳐 버려
도데체
도대체 왜 그러는데?
역활
맞춤법을 바로 잡는 역할을 맡아봅시다.
읍니다
오늘도 당신은 옛날 사람 인증을 했습니다
설레임
아이스크림이 세상 다 망쳤지 뭐야. 먹고 싶다가도 설렘이 사라져.
시껍하다
네가 시껍하다고 말할 때마다 내가 식겁해
대표로써
작가로서 '대표로써'가 틀렸다고 알려드립니다.
서슴치
서슴지 않고 틀린 맞춤법을 알려주세요.
가벼히
맞춤법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지 마세요.
희안해
그러는 네가 희한해
어의없어
그 맞춤법이 더 어이없어
부부 금실이 참 좋으셔
금슬이랍니다. 거문고와 비파, 악기를 얘기해요.
날라다녀
당신이 맞춤법 천재로 등극해 이 세상을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어요.
행복하세요
행복하라고 명령하지 마세요. 행복하길 바라요.
겁시나 by 임창정
이런 가사는 정말 겁이 나
브런치에는 글을 발행하기 전에 자동으로 맞춤법 검사를 하는 기능이 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검사를 할 때마다 내가 잘못된 맞춤법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틀리는 건 만날 틀린다. 놀라울 지경이다. 어떻게 하면 맞춤법을 잘 쓸 수 있을까. 오늘도 맞춤법을 고민하는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간다.
나도 정말 많이 틀린다. 맞춤법이 헷갈려 글을 쓸 때마다 사전을 열어 보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맞춤법 표기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글을 쓰려고 해도 틀리기 십상이다. 중요한 건 고치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과 한 번 더 확인해 보려는 시도일 테다.
고작 서른한 개 가지고 뭐가 그리 불편하냐 싶다. 굳이 이러는 나도 영원히 맞춤법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틀린 건 그냥 틀린 거다. 웬만하면 잘 써보자. 우리 모두 다 함께, 써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