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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Dec 13. 2019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렸다'

바라지와 치다꺼리라는 지옥에서

혼자 살다 보니 정말 할게 많다. 혼자니까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이지만 사실 나눌 수 없어서 오래 걸리는 일들이 더 많다. 설거지, 빨래, 바닥 청소는 기본이요, 다림질, 공과금 내기, 구석구석 때 벗기기, 욕실 청소, 분리수거, 끼니 때마다 해야 하는 요리, 냉장고 정리, 밥솥 닦기 등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마음 잡고 옷장을 정리하거나 모든 가구를 들어내 먼지를 닦고 침대 시트를 빨거나 하는 날이면, 땀이 송송 맺히는 건 물론이요, 삭신이 쑤셔서 한참 쉬어야 한다. 등이 뻐근하고 손목이 시큰하고 무릎이 아프다.


요즘 집에서 요리하는 날들이 부쩍 많아지다 보니-12일째 채식을 하고 있다-설거지거리가 그야말로 어마 무시하게 나온다.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서, 요리를 하느라 쓴 그릇과 도구들, 프라이팬, 그리고 밥을 짓고 나면 더러워지는 밥솥을 닦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지금껏 몰랐다. 밥솥 뒤에 물받침이 있고, 거기 고인 물을 빼고 닦아주어야 큼큼한 냄새를 없애고 항상 밥솥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수채 구멍에 끼인 음식물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결국 맨손이 제일 편하다는 걸. 변기를 구석구석 닦아 주지 않으면 물때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샤워 부스의 하수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벌레가 나오거나, 머리카락으로 꽉 막혀서 언젠가 욕실에 홍수가 날 수도 있다는 것. 드럼세탁기의 세제 넣는 부분은 청결히 유지해야 하고, 때때로 세탁기 먼지를 없애주어야 한다는 것. 에어컨을 청량감 있게 쓰고 싶다면 가끔 청소도 하고 유지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것. 버리기 아까운 칫솔이 욕실 구석구석 낀 때를 제거하기에 그렇게 좋을 수도 없다는 것.



그렇다. 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집안 살림이란, 가사 노동이란 사람을 옭아맬 수 있다는 걸.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열심히 해도 티도 안 난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한다. 청소에 빨래에 설거지에, 요리 도구만 쓱싹쓱싹 닦아도 네댓 시간이 훌쩍 간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내가 무슨 특별한 결벽증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저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집구석' 하나 만들기도 이다지도 힘이 든다.


거기엔 어김없이 엄마가 있었다. 밥솥 이야기를, 세탁기 이야기를, 수채 구멍 이야기를, 손목, 무릎, 어깨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사람. 변기를 닦는 건 구역질 나는 일이라고, 뒤엉킨 머리카락을 빼내는 일은 욕지거리가 나는 일이라고, 남은 재료들을 잘 솎아내고 음식을 정리하면서 냉장고를 닦는 일은 하루를 잡아도 모자랄 일이란 걸 한 번도 얘기하지 않은 사람. 먼지를 털어내는 일과, 걸레질은 엄연히 다른 거라고 알려주지 않은 사람, 바로 엄마다.



혼자 사는 남자로 이 모든 걸 하고 있자니, 나는 매일 엄마를 생각한다. '아이고'하는 곡소리와 함께 엄마가 보냈던 세월들을 떠올린다. 단 한 번도 구겨진 셔츠를 입어본 적이 없게 했던 엄마, 굶겨 내보내는 일이 없던 엄마, 계절이 바뀔 때마다 회사를 다녀오면 어느샌가 말끔히 정리되어 있던 옷장과 침대. 피곤에 절어 폭신하고 바삭한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잠이 들면서도 엄마가 1년에 이 베개커버를 몇 번을 빨았을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굳이 돌이켜 보지 않아도 안다. 이젠 내가 한 달에 몇 번 베개커버를 빠는 게 좋은지 알아버렸으니까.


엄마는 완벽했다. 아빠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언제나 아빠보다 먼저 일어나고, 아빠보다 늦게 잠들었다. 쌀이나 고추장, 간장, 식초 같은 먹고사는데 꼭 필요한 재료들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가난했건, 풍성했건, 늘 그랬다. 욕실은 어느 호텔 욕실과 비교해서도 깔끔했다. 물 한 방울 떨어지는 일이 없이, 거울에 먼지 한번 앉은 적 없이, 변기에 그림 한번 생긴 일 없이 늘 그랬다. 더러운 욕실처럼 들어가기 싫은 게 없다면서 언제나 샤워 후에 욕실을 청소하고 나오는 엄마였다. 하기에 나는 언제나 깨끗한 욕실만 보고 살아서 내가 굳이 청소를 해야 할 거란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다른 집에 갔을 때 더러운 욕실을 보면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없었다. 엄마를 누구보다 아낀다고 생각해왔던 내가 그랬다.


그저 가끔 설거지 한번 하고, 집 청소 한번 하는 걸로 - 그것도 어릴 적에나 그랬던 - '내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함으로써 '퉁친다'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생색도 그런 생색이 없다.


그걸 지금 내가 한다. 일어나자마자 먼지를 청소하고, 이불을 정리한다. 탈취제를 뿌리고 머리카락을 줍는다. 때 되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요리는 하는 도중에 설거지를 하고, 먹고 나면 반드시 곧장 일어나 설거지를 끝낸다. 매일 한 번씩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수거를 살피고, 밥솥을 매일 닦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세탁기를 청소한다. 가끔 쓰레기통을 닦아 말리고, 이틀에 한번 욕실 청소를 하고, 거울을 닦고, 땀이 나도록 샤워부스의 때를 벗긴다. 다림질만큼 귀찮은 건 없지만, 행사도 참석해야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업의 특성상 다림질도 쓱싹쓱싹 한다. 떨어진 단추를 꿰매고, 방석과 카펫의 먼지를 털어낸다. 오래두면 닦이지 않을까 불안한 식탁과 책상을 닦아 내고, 혹시 냉장고에 떨어진 재료는 없는지 살피고, 매일 장을 본다. 오븐은 왜 이렇게 닦기가 힘든지, 요리하다 보면 왜 그렇게 소스가 튀어서 옷을 버리게 되는지가 신경 쓰이고, 화장실 방향제가 떨어질까, 물때가 찌들어 지워지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 하게 된다.


그랬더니 이제 조금 알겠다. 아, 엄마는 대체 40년을 어떻게 이걸 해냈을까. '돕는다'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이 지난한 일들, 해도 해도 티 안나는 일들, 하고 나면 잠시 뿌듯하지만 내일이면 다시 해야 할 일들에 엄마는 왜, 투정 한 번 하지 않았을까. 어떨 땐 설거지가 너무 귀찮아 밥이 먹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사니까.


그런데 나머지를 먹여야 했다, 엄마는. 한 번도 불평불만 없이 우리 식구 모두를 정성스럽게 먹이고 돌봤다. 마치 당신의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마의 운명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라서 했고, 엄마였으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일을, 모두가 나누지 않았던 그 40년 동안에도, 엄마는 건전지를 사고, 쌀을 이고 시장을 걸었다. 간장을 채워두고, 똑 떨어진 쓰레기봉투를 다시 사러 가는 일에도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깨진 그릇을 다시 채워 놓고, 어제 먹었던 반찬이 질리지 않는지 고민하며 장을 보고, 집안 살림에 흠결이라도 잡힐까, 쓸고 닦고, 빨고 널고를 자그마치 40년을 했다. 한 번도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던 사람. 심지어 그것이 너무 완벽해서 도와야 할 생각까지 나지 않게끔 했던 사람, 엄마는 우리 모두를 먹여 '살렸던' 사람이다.


나는 지금 '혼자 살아서'  지긋지긋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살림살이의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둘이어도, 셋이어도 변하지 않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40년을 넷이었지만, '바라지' '치다꺼리'라는 지옥엔 엄마 혼자 있었다. 원래 내가 모두 했어야 하는 일을 엄마가 대신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단추를 달고, 운동화를 빨고, 요리를 하고, 세탁기를 청소하고, 밥솥을 닦는 , 베개 커버를 갈고, 침대보를 빨고 널고, 자신의 옷에 더해 셋의 옷을 매일 다림질하고, 발바닥에   방울 묻지 않게 욕실을 깔끔히 유지하는  지옥에, 엄마 혼자 외롭게 있었다.


나누어 주지 않았다.
우리도, 엄마도.

엄마는 재미있었을까. 엄마는 행복했을까.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은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나를 보면 다림질이라는 것이 뿌듯하고 즐거웠을까. 조금씩 키가 자라고 살이 찌는 나를 바라보면, 장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그릇을 닦고, 밥솥 물받침을 닦는 일들이 엄마에게 조그마한 '성취감'이라도 안겨 주었을까. 철이 바뀔 때마다 구충제를 사다 놓고, 양치를 하며 튄 치약 자국을 매일 문지르고, 가끔은 구역질이 날 법도 한 변기를 닦으며 엄마는 보람찼을까.



그저 평범하게 살기 위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을 꾸역꾸역 쳐내는 것, 그 잘난 '집구석 꼬락서니'를 보통 수준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을 매일 반복하는 그 지겨움 속에서, 엄마는 왜 '나 좀 살려달라'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그러니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렸다'라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외려 너무 '잘' 먹여 '살렸다'라고 해도 부족할 것만 같다.




'보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며 나는 매 순간 엄마를 생각한다. 하지 않으면 몸 버리고 마음 버릴 것만 같은 일들. 정신 사나워지고 마음 어딘가가 답답해지는 일들. 그 '바라지'와 '치다꺼리'를 나 하나 위해서 하는 일도 이렇게 버거울 수가 없는데, 자신이 아닌 나머지 셋을 위해 40년을 버텨온 엄마에게 나는 왜, 이제야 그렇게 미안할까.



살림은 정말이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잘해도 티도 안 나지만 안 하면 욕먹는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은 '집구석'이 어쩌고를 함부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일. 누가 '대체 집에서 뭐하냐'는 얘기를 꺼낼 기미만 보여도, 부아가 치밀 것만 같은 일. 관절이 쑤시고, 습진이 걸리고, 손목 건초염이 와도 어디 가서 훈장도 못 받고 산업 재해에도 해당 안 되는 그런 일. 그래서 모두가 하찮게 여기지만 전혀 하찮지 않은 그런 일. 그게 바로 '바라지'이자, '치다꺼리'다. 엄마의 노동력과 정성을 연봉으로 책정했더라면 지금쯤 10억, 아니 100억은 됐을까. 그 100억짜리 바라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그 바라지를 그대로 보고 배워 혼자 살아도 곧잘 이것저것을 해내는 나는, 이제야 하염없이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도 나누어주지 않았고, 멍청한 나도 나누지 않았던 그런 일들을 40년 동안 불평도 없이 했던 엄마가 이제야 바보 같다. 바라지와 치다꺼리의 지옥에서 극한 노동을 하면서도, 남편 잘되고, 자식들만 잘 크면 된다고 믿었던 엄마의 소망에, 나는 잘 크지 못했으므로 죄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야 당신의 크나큰 노고를 알겠습니다'라는 멍청한 편지를 뒤늦게 띄우고 만다. 그 잘난 수건을 개고 양말을 접다가.


그 아득하고 지루했던 당신의 세월에 한없는 진심을 다해 미안함을 전한다. 집안일은 '돕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혼자 산지 3년 차가 되어서야 깨달은 아들이.


이 밤이 지나고 한바탕 좋은 꿈을 꾼다 치더라도, 해가 뜨면 다시 나의 지옥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나는 또 이따금 엄마를 생각할 것이다.


너무 미안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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