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May 28. 2020

완벽주의는 인생을 완벽히 망친다

모든 인간에겐 흠결이 있다. 그게 인간이다.

시험을 잘 못봐서 눈물이 난 적이 있다. 사실 잘 못본 시험도 아니었다. 매우 잘 본 시험이었다. 과도한 노력을 쏟았는데도 흠결이 생겨서 억울해서였을까. 좀 울었다. 13개 과목에서 3개를 틀리고도, 전교 1등이 아니라서. 평균이 99.3이었는데도 전교 1등만 했던 내가 2등이라고? 가슴을 쥐어짜며 봤던 중학교 입학 첫 시험이었다.




보통 중간, 기말 시험 준비는 최소 4주간 했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서도 그랬다. 물론 바빠서, 대체로 게을러서 그 계획을 못 맞추는 때가 생기면, 시간을 여러번 다시 쪼갰다. 혹은 속도를 냈다. 아니면 건강한 수면을 삭제했다. 암기과목을 24시간 동안 반복해서 외고 들어가 시험을 본다든지. 4주간 준비했다면 하루 하나씩 했어도 될 과목을 하루에 3개로 늘려 공부량을 키운다든가.


애초에 지킬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세워 두면 지킬 거라고 착각하곤 하는, 달성 못할 계획을 빼먹지 않고 세웠었기 때문에, 그걸 매번 달성하지 못하는 나에게 자괴감을 퍼부었다.


"니가 한다고 세운 계획 가지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으이그 화상아..."




시험을 앞두고 밤을 새며 공부하는 건 모든 수험생이 한번쯤은 해보는 일이라지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일 때도 밤을 샜다. 부모님이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라고 시킨적은 없다. 그저 시험 범위에 나올만한 전과-나만 아는 단어려나-를 전부 외야 하는데 다 외질 못했다. 완벽하게 봐야 시험을 망칠까 싶어, 새벽 6시 30분까지 전과를 통째로 외우고 시험을 봤다.


공부 운은 좋았다. 그렇게 몰아치기를 해도 성공률이 꽤 좋았다. 별로 연습 안하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연타석 홈런을 날리는 식. 물론 가끔 망할 때도 있었다. 나름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꼬아서 생각하다 틀리고, 분명 알았었는데 뭘까 싶어 고민하다 다른 답 써서 틀리고.


친구들은 가끔 그렇게 물었다.

"넌 왜 그렇게 모든 걸 열심히 해?"

"야, 살살해. 뭐 그렇게 죽을 것처럼 공부하냐?"


나는 그냥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런 내가 오답인 걸 몰랐다.




그냥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 나는 학생, 그러니 내가 할 건 공부다. 부모님의 기쁨은 자식의 성공. 나는 하나밖에 없는 둘째 아들. 그러니 내가 성공하는 길은 지금 해야 할 공부를 잘 하는 것. 착한 학생은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잘하는게 기본. 선생님이 내주는 것은 보통 숙제, 혹은 문제. 그렇다면 내가 착하고 좋은 학생이려면 나는 그 모든 것을 언제나 문제 없이 완성해 가야 하는 것.


숙제를 한번만 안 해가도 세상이 두쪽 나는 줄 알았다. 손바닥 한 대 맞는게 그렇게 치욕스러웠다. 이번 중간고사를 망치면 인생을 망치는 줄 알았다. 공부를 못하면 아무도 내가 '좋은 학생', '좋은 사람'인 걸 안 믿어줄 줄 알았다.


초등학교 내내 반장, 부반장을 했고, 전교회장을 했고, 중학교에서도 학생회장을 했다. '나는 리더다. 리더의 의무는 사람들이 나를 잘 따르게 하는 것. 그렇다면 나는 학생들의 리더이니 공부를 잘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이들은 나를 인정하지도, 따라주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제일 잘 할수 있는 것, 바로 그 '공부'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밤을 새고 공부하고, 책장이 찢어져라 밑줄을 그어가며 암기 과목을 달달 외웠다. 몇 페이지 몇 번째 줄에 무슨 단어가 나와있는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하나만 틀려도 나를 자책했다.


그렇게 공부하고도 그걸 틀리냐. 이런 일이 있을 수나 있는 일이냐. 미쳤거나, 바보거나, 노력을 덜했거나. 얼굴이 화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인생은 그랬다. 생각도, 습관처럼 어김없이 돌아온다. 매번 보는 시험에 최선을 다했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완벽하게 노력한게 아니니, 그 과정이 100점이 아닌 것은 마치 '범죄'라도 저지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참 성실한 아이구나', '참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구나'라고 칭찬해 주었지만, 사실 내 욕심의 한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왕 볼거면 100점. 이왕 칠 거면 완벽하게. 이왕 쓸 거면 대단하게. 만족할 만한 반응이 안 나오는 일이라면 그건 내가 뭔가 한참 모자라거나, 노력을 다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여겼다. 그게 언제고 다시 돌아왔다. 99.3점을 맞고도 '다음엔 2개 이하로 틀려야지, 아예 다 맞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시험 과목 평균이 95점 이하로만 내려가도, '내가 한참 놀았거나 정신을 안 차리고 있는 건가'라고 자책했다. 모의고사 전국 1%안에 들지 못하면 불안했다.


애초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들이었다. 나는 이제 그 시험들을 언제 봤었는지, 내가 몇점을 받았는지, 어떤 과목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제 먹은 점심도 가물가물한데, 길고 먼 인생길에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중간고사 점수가 무슨 대술까.


99.3점의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이제 세상 사람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거니와, 굳이 꺼내 얘기하면 욕 먹을 '나쁜 훈장' 마냥,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 의미없는 숫자들을 여기에라도 써서 자랑을 해야 누군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봐주지 않을까 망상하면서.




완벽주의였다. 못된 완벽주의.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줄 알았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20색상환을 그리는 숙제가 있었는데, 붓질을 하다가 0.000001mm라도 색깔이 선을 넘으면 다 그린 그림을 찢어 버리고 다시 그렸다. 숨도 안 쉬고 다시 그렸다. 또 삐뚤빼뚤하게 선을 넘을까봐. 20색상환 그림을 말 그대로 20번 넘게 그린 건 아마 그 학년 전체에 나 하나 뿐이었을테지.  



암기과목은 적어가며 공부하면 더 좋다고 해 깜지노트를 썼는데, 깜지 노트를 쓰다가 글씨가 틀리면, 마음에 안 들어서 찢어버리고 다시 썼다. 빈틈 없이 완벽하게 까맣게 쓰여진 깜지가 아니면 이 공책을 다 쓰는게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뭔가 찜찜한 구석을 남겨둔, 미완성 그림처럼.


군 복무 시절엔 매일 아침 장군들에게 배달하는 기밀 문서를 들고 시간에 맞춰 4-5층을 뛰어다니다 무릎에 물이 차 치료도 받았다. 나는 대한민국 사병으로서 장군 보고에 1초라도 늦으면 안된다는 집착. 너는 언제나 제일 빨리 보고서를 들고 오는구나 라고 칭찬듣고 싶은 욕심.





일을 시작하고는 더욱 심해졌다. 완벽한 원고를 쓰고 싶은 욕구. 다음날 생방송은 내 덕분에 완벽해졌다고 인정받고 싶은 집착. 2년을 밤을 새며 살았다. 하루에 2-3시간을 자면서. 결국 이유를 알 수 없다던 흉추 골절에 공황 장애를 얻었지만.


회사에 들어가선 더했다. 상사들을 조선시대 신하 마냥 대해야 완벽한 신입사원이 될 줄 알았다. 부장님께 보고를 끝내고 뒷모습을 보이지 않느라 뒷걸음질로 나오다 다른 사람과 부딪힌 적도 있다. 말하지 못한 억울함들이 쌓여 화가 생겼다. 공황장애는 더 심해졌고, 몸도 자꾸만 나빠졌다.


이직하고도 그랬다. 첫 퇴사가 완벽한 실패였다는 생각. 그 좋은 회사에서 내가 제일 먼저 튀어나왔다는 자책. 새로운 회사에선 그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내 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움도 청할 줄 몰랐다. 1부터 100까지, 내가 다 해야 완벽함에 흠결을 낼 수도 있는 사람들이, 내 일을 망쳐버리지 않을테니까. 내 일을 망치더라도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되려면 그들에게 '내 일을 망쳤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모든 실적을 갈아치우고, 글로벌 어워드도 받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공허했다. "다들 도와주셔서 이 상을 받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거기에 갈아넣었던 건 결국 내 영혼과, 시간과, 행복과, 체력이었다.


그 좋다는 외국계 회사에서 매일 혼자 남아 새벽 2-3시까지 일했다. 발표가 매번 완벽하길 바랐다. 일하다 너무 피곤해 회의실 책상에 널브러져 자다가 새벽 청소 아주머니가 깨워주신 적도 많았다. 초고속 승진을 했다. 모든 사원 중에 가장 긴 휴가를 써도, '완벽한 실적' 덕에,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우스운 건, 그런 회사를 그만 두는데 있어, 나의 '완벽한 실적'은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 실적이 사라지는 것, 그 실적을 감당할 내가 없어지는 것이, 회사에 대한 완벽한 복수라 생각했다.  


딱 거기까지.

두번째 회사를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일을 시작했지만, 기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한심한게 인생일 줄이야. 그리고 그게 바로 내 얘기가 될 수 있을 줄이야.


또 다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 이전 회사들에선 찾아볼 수 없던 장점을 가졌을 거라 기대했던 곳. 하지만 그곳엔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조직문화, 그래서 나도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정을 쏟아부었다. 공황장애가 다시 심해졌다. 가장 즐거워야 했던 회사에서 가장 불편했다. 그래, 세상에 완벽한 건 그 무엇도 없었다.


나도 완벽하지 않았다.


나는.. 완벽할 수 없다.

나는 인간이니까.





그냥 닥치는대로 외우자고 쓰는 깜지가 대체 뭐라고 찢어버린 연습장처럼, 나는 그렇게 모든 걸 찢어버렸다. 그놈의 20색상환이 뭐라고, 나의 서투름을 탓하며 스무 번 넘게 다시 그렸을까. 1,300점 만점의 시험에서 9점을 틀린게 원통할 일이긴 할까. 초등학교 6년 성적표에, 모든 것이 '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우'라는게 어떻게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졌을까.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이면, 회장이 아니라 부회장이면, 왜 그렇게 소심해지고, 내가 인기가 없었나, 내가 부족해서 반장이 되지 못했을까 라며 나를 탓했을까.


아이큐 테스트에 만점이 있다면 아마도 나는, 아이큐도 '만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테다. 그것도 모자라 EQ까지도. 완벽한 감성이란 뭘까? 흠결 없는 감수성이란 뭘까? 못해도 괜찮다고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했는데. 아무도 내 실패와 성공을 재단하거나 기억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살수 있다는 믿음이, 대단한 오만과 착각임을 왜 일찍 알지 못했을까.


"완벽주의가 얼마나 피곤한데?
넌 어떻게 그렇게 살아?"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봐주면 고맙지. 근데 내가 얼마나 부족한데. 너도 나보다 **도 잘 하잖아. 나 **도 너보다 못하잖아. 그냥 잘 못하는게 많으니까 항상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야."


이 대답이 그토록 오만하다는 걸 왜 몰랐을까. 부족하다는 말로 나를 깎아 내리면서도, 나는 전혀 부족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겸손이 완벽에 가까운 '태도'라고 여겼기 때문에, 애써 부족한걸 억지로 찾아서라도 나를 낮췄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완벽하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답을 내가 줄 수 있길 바랐고, 모든 문제는 내 손끝에서 풀리길 바랐다. 타인의 결과물에선 언제나 오타부터 보였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정해진 기한보다 빨리 끝나면서도 남들보단 완벽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더욱 완벽해 보일테니까.




살다 보니 절대 그렇게  되더라.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  마음을 100% 이해해 주는 사람은 전혀 없더라. 사람은 원래 다들 그렇더라.  그건  못해.  완전 약하잖아. 열심히 해보겠지만   수도 있지 . 너무 기대하지 않는게 좋아. 무조건   되는  있을  없으니까. 그건 신이 나를 위해 완벽하게 계획해주는 일도 아니니까.


이런 말을 내 입으로 내뱉을 수 있기 전까지, 나는 언제나 완벽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완벽주의는 내 인생을 완벽하게 망쳤다. 나는 지금도, 한치의 실수 하나 용납하지 않았던 나의 학창시절이 그저 애처롭다. 매번 1등이 아니어도 된다고, 그렇게까지 자신을 불살라 애쓰고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좌절과 한숨은 더 적었을까. 실망과 낙담은 덜했을까.


인간관계든, 외모든, 성격이든, 재주든, 실력이든, 모든 것이 완벽하길 바랐던 나는, 이제 없다. 그 어떤 것도 '완벽'이라는 범주 속으로 넣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한계를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나를 들여다보는 일도 완벽할 순 없었지만, '끝없이 나를 성찰해야 함이 완벽한 삶의 태도'라는 집착 때문에 자존감에 흠집을 냈다.



회사에서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으려 애쓰는 후배들에게, '라떼'의 나는 보통 이런 위로를 해주곤 했다.

OO야, 세상에 완벽한 건 없어. 넌 지금도 너무 충분해. 이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130%를 쏟지 말고, 80%로만 해도 돼. 너의 그런 마음과 태도가 이미 만점이야. 그냥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니까, 80%만 해도 되는 일에 너무 애쓰지 말고 쉬엄쉬엄해.

그리곤 저렇게 열심히 하는 OO는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번 아웃(Burn out)되지 않길 바라는 '완벽한 선배'로써의 모습을 보여주길 소망했다. 그게 '후배를 잘 챙기고, 사랑해 주는 게 완벽한 선배의 태도'라고 믿었던, 불완전한 나의 모습이다.



나는 왜 나에게 이미 내가 알고 있던 '완벽한 정답'을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 인생은 훨씬 숨쉬기 수월했을까. 몸이든 마음이든 절대 아프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강박을 버렸다면 어땠을까. 공황 증상의 두려움을 갖는 건 일종의 나약함이므로, 공황장애를 겪는건 뭔가 '모자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이제 와 이 모든 걸 조금씩 깨닫고 완벽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의 노력도, 결국 완벽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완벽함을 버리고, 그걸 버리려는 노력조차도 완벽할 필요가 없는 내가 될 수 있어야, 결국 편히 숨 한번 쉬지 않을까.


나는 이제 75점짜리 생을 살려고
마음 먹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