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계는 어떤가요?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 약 때문일까. 협찬받은 선글라스를 엄마와 함께 가며 들고 갔던 시장 바구니 안에 넣어두고, 한달을 넘게 찾질 않나. 내일 아침에 꼭 가져가야지 하며 눈에 보이는 곳에 준비해 둔 물건만 쏙 빼놓고 오질 않나. 어제는 혼자 제주 어딘가를 버스 타고 느릿느릿 여행하고 오겠노라 친구에게 떵떵거리고는, 카드지갑, 현금지갑만 집에 두고 나왔다는 걸, 친구를 보내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중에 알았다. 덕분에 햇살이 반짝거리는 제주를 8km 정도 걸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매일 먹는 약을 털어 넣으면서 이게 과연 오늘 처음 먹는건지 두번째 먹는건지 가물가물하다. 비타민이면 좋겠지만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뭐가 됐든 오줌으로 녹아 나갈 비타민 C도 아닌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량을 넘겨 먹어 좋을게 없으니까.
서울에 나온 김에 약을 구분하는 통을 샀다. 매일 다섯알씩 구분해 두고, 꼭 아침에, 딱 한 줄만 먹기. 꽤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안도감이 생겼다. 단, 약통을 잃어버려 이 안정감마저 잃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공황장애와 강박 때문에 먹는 약은, 도대체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뜯어 놓기도 그런데 싶다가, 약을 새로 처방 받은지 한달이 넘어서야, 그 병원에서 주는 약에는 번호가 쓰였다는 걸 알았다. 물론, 오늘 먹은 약봉지의 조그만 구석에 쓰인 번호를 내일 외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이 남았다. 아, 관심이 없는 걸까. 아님 그걸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도 없는 걸까. 찬찬히, 느릿느릿하게 들여다 보면 보이는 것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신경을 거스르는 작지만 결국 중요한 것들.
친구가 제주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최대한 친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나의 하루를 알차고 실속있게 보내야 한다. 이건 강박일까 아닐까. 이런 강박은 그래도 좋은 걸까 아닐까. 요즘 일이 아주 많아 바빠진 친구가 일하러 나간 사이, 가끔씩 친구의 강아지와 산책을 한다. 작은 강아지에겐 즐거움을, 나에겐 안식과 건강이 찾아오는 일이니 파란 하늘과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신나게 산책하러 나가서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보자 해 두고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1분도 채 되지 않아 알아챘다. 스마트폰을 두고 나왔다. 나오기 바로 전 신발 신기 전에 잠깐 내려둔 터였다. 그걸 그냥 두고 신나게 나오는 정신머리라니. 멀리 가고 싶어도 멀리 갈 수가 없다. 길도 잘 모르거니와 사람도 찾아 보기 힘든 제주의 돌담 사이를 미로처럼 헤매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돌담이 그 돌담이다. 길 이름을 외도 곧 까먹을 것을 알기에 그 또한 머리를 복잡하게 할 뿐이다. 최대한 직진으로 갔다가 직진으로 돌아오기로 한다.
"방금 지난 집엔 빨간 개집이 있었고, 모퉁이를 돌았던 곳엔 푯말이 붙은 나무가 있었지. 5분 정도 직진하니 양봉장이 나왔고, 마지막 코너엔 알로에 농장이 있었어."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께는 무조건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응, 넌 누구여?"
"아, 그냥 어르신이시라 인사 드렸어요."
"아 그래? 너 어디 사는데?"
"아 그냥 저쪽 언덕 위에 살아요."
다들 내가 본인들을 알아서 인사하는 줄 아신다. 어디 사는 누구냐고 자꾸 물으시지만, 대답하는 게 사소하고 의미없다. 한없이 이어지는 돌담 사이에서 정신이 뒤죽박죽 꼬여버린 이방인. 여기저기서 격렬히 짖는 동네 개들 탓에 한껏 머릿속이 꼬여버린 실타래 같다.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저렇게 덩치 큰 아이들이 목이 부러져라 힘을 주고 줄을 당겨 튀어 오르면, 언젠가 줄이 끊어져 우리에게 오진 않을까. 그럼 나는 이 작고 착한 강아지를 어떻게 지켜야 할까.
굳이 하지 않아야 할 생각들이 가득해지며 목줄을 짧게 쥐고 손에 감아 잡는다. 등줄기가 오싹 오싹 거리는 걸 느끼며 - 난 원래 깜짝 깜짝 잘 놀란다 - 애꿎은 강아지에게 "삼촌이 비가 싫어. 비가 올것 같아. 돌아가자."라고 징징거린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우두커니 서 있던 강아지가 이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긴다. '삼촌, 걱정 마요. 나 길 알아요. 냄새도 맡아뒀어.'라는 표정이다. 백구야, 그래도 내가 너보단 크지 않니?
알로에 농장이 오른쪽이었는지 왼쪽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양봉장은 분명 노란 지푸라기로 가득한 돌담길 옆에 있었는데. 푯말 붙은 나무에 대체 뭐라고 써 있었지. 왜 이동네 개집은 죄다 빨간색일까. 한시도 마음이 편할 길이 없다. 폰을 두고 나온 턱에 지도를 쓸 수도 없고, 친구 얘기론 백구가 가끔 안 가본 길을 가고 싶어서 용기있게 쭉쭉 나아가는 적도 있다고 했다. 내가 푯말을 찾을 새도, 빨간 개집을 찾을 새도 없이 호기심 충만한 작은 강아지가, 어떤 길로 힘차게 달려나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
그저 길을 잃을 법도 했었던 그 잠깐의 상황들이 자주, 매일 반복되는게 싫을 뿐이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까지 긴장해야 했을까. 잃지도 않은 길 위에서 심장은 왜 그렇게 쿵쾅거렸을까. 지나온 길에 그렇게 수많은 개들이 있다는 걸 알고도, 되돌아 가는 길에 울려퍼지는 개들 짖는 소리에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랄 일인가. 헨젤과 그레텔 주인공처럼 과자 부스러기로 표시라도 했어야 할 일인가. 이 길 끝엔 되돌아오지 못할 삼도천이나 요단강이라도 있는 걸까. 차라리 내가 지금 개였다면, 백구가 마킹해 놓은 냄새를 맡으며 집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이 모든게 과연 일어나기라도 할 일인가. 그럴게 아니라면 대체 뭐가 불안한 걸까. 잃을까봐 두려운 무엇일까. 잊을까봐 두려운 어떤 대상 때문일까.
잊는 것, 잃는 것이 당연한게 인간이다. 나는 머신러닝을 할 능력도 없을 뿐더러, 매일 진화하지 않는다. 슈퍼 컴퓨터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완전무결할 수 없으며, 가보지도 않은 길을 내 방 걸어다니듯 대할 순 없다. 적당한 긴장도, 예민한 촉각도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걸 알면서 예민해진 감각 때문에 짜증을 낼 일인가. 그렇다면 예민해질 감각을 지레 짐작하고 두려워해서 평소보다 잔뜩 긴장하다 잊는 걸까. 정신줄을 놓는 걸까. 그도 아니라면 선명한 색깔들이 한순간 회백색으로 바뀌는 이유가 뭘까. 즐거웠던 추억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가 뭘까. 집중하지 않아설까. 감정을 담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길을 잃을 것이다. 길을 잃는 것 따윈 상관없다. 나는 머신러닝을 할 능력도 없을 뿐더러, 매일 진화하지 않는다. 슈퍼 컴퓨터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그러니 완전무결할 수 없다. 내일도 무언가를 잊고 잃을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편해야, 길을 잃지도 않을 거면서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껏 살면서 내가 정말로 길을 잃어본 적은 아마도 13,870여일 중, 채 50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800만 분의 1밖에 안되는 당첨 확률에 1,000원짜리 로또는 그렇게 쉽게 사고 꽝을 맞이하면서, 길을 잃은 날이 될 수도 있는 0.3% 확률의 오늘 때문에, 왜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까를 사서 걱정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리고, 생각이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나이 40에, 그러지 않을 이유는 또 뭔가. 내가 티맵도 아니고. 사실 제주의 돌담길은 티맵이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길을 잃고 말고는 길을 잃고 나서 생각할 일이다. 준비가 부족한게 아니라, 기우가 지나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잃어도 별거 없다고 생각해도 된다. 도움을 구할 수도 있고, 헤맸다고 생각한 길이 원래 그길일 수도 있다. 방금 긴가민가 지나친 골목이 미로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자. 불안해서 힘든 건가, 힘들어서 불안한 건가. 힘들지도, 불안하지도 않고프겠지만, 그런 인생은 어차피 이 세상에 없다.
오늘도 나의 작은 세계는 불안정하다.
박소현의 러브FM의 오프닝에서 그러더라. "부정적인 말을 한번 들으면, 그걸 잊고 소화해 내기 위해서 긍정적인 말이 세번 필요하다'고. 그러니 애초부터 부정적인 말을 줄이고, 걱정을 줄이고, 불안정한 마음을 다독이며 잊고 잃는 것이, 지나고 난 뒤에 굳이 세배 더 노력해서 편해지는 것보다 낫겠다 싶다. 무작정 긍정인 마음도 순탄치만은 않으리라. 항상 밝고 긍정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의 등뒤에, 우울과 좌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목도해 왔는가.
내일도 나의 작은 세계는 불안정할 것을 안다. 사소하고 뾰족한 불안에 마스크의 갑갑함을 더해, 숨을 할딱거릴 순간도 있을 거란 걸 안다. 그걸 13년 동안 지내오면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도 안다. 지금 내겐, 파란 제주가 있고, 초록 들판이 있다. 겨우 며칠 공간을 나누고도 꼬리를 팔랑거리며 함께 뛰어주는 작은 강아지가 있고, 바쁜 와중에 잘 못 챙겨줘서 연신 미안하다는 좋은 동생도 있다. 잘 지내는 거 알면서도 매일 '잘 지내라'고 챙겨주는 부모님이 있고, 돌아오면 만나자는 친구가 있다. 제주 온 김에 만나자는 지인들도 있다.
그리고, 나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그러니 나는, 또 그렇게 무게중심을 잡는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의 작은 세계도. 이것은 나의 모자라고 사소한 고백이자, 당신에게 꾹꾹 눌러 써서 보내는 두어 장의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