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일을 오늘도 조금은 하자.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어떤 이를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일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일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미루곤 한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다. Procrastination, 즉,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을 때도 있다. 그런 날도 있지 않은가.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은 날. 그날따라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이 생겨 못할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고, 그냥 그날이 갑자기 그 일을 하기 싫은 날일 수도 있다. 비가 온다고 해서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준비했건만, 뭉게구름이 솔솔 떠다니면 모든 걸 내려놓고 시원한 커피 한잔에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순간이 어디 한두번일까.
하지만 이 글은 '막중한 부담감' 혹은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다. 그게 바로 내 이야기이자,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큰 나 같은 사람도 있다. 경중은 다를지언정, 칭찬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테다. 하지만 이 글의 '미루기'는 시작, 도전, 넘어섬에 대한 이야기다.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은 나를 언제나 마지막까지 몰아부친다. 시작이 언제였건 상관이 없다. 잘 쓰고 싶고, 잘 만들고 싶고, 결과물이 좋았단 얘기를 듣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일을 조금씩 미루곤 했다. 시작이 좋지 않을까봐, 결과물이 실망스러울까봐 두려웠던 거다.
이런 '한심한 미룸'이 의도적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어떨 땐 구상을 한다는 변명으로, 어떨 땐 계획을 더 세밀히 해야 한다는 변명으로, 또 다른 때엔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해야 할일, 혹은 이미 끝났을 수도 있는 일을 미루곤 했다. 모두 잘 하고 싶은 마음의 부담감에서 출발했다는게 공통점일 뿐이다.
더 큰 폭탄이 숨어있다. 바로, 내 마음의 회로가 이걸 가속화된다는 거다. 조급함, 불안감, 회피, 실낱같은 희망, 자책감, 망상에 가까운 더 큰 희망, 분노, 좌절의 악순환.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러니 안해도 되는 야근을 하거나, 밤샘을 하고, 벼락치기 전문가 타이틀이 붙는다. 더 절망적인 건, 간혹 이런게 성공했을 때다.
"오, 이 짧은 시간에 이걸 해내다니, 역시 나는 할 수 있어."
그리고 다음 번엔, 조금 더 미룬다. 나는 선례를 가진 사람이라고 믿으며.
다만 차분히 설계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은 계획은 언젠간 어그러지고 만다. 내 능력의 100% 이상을 다 해도 망가지고 어긋나는 게 계획일텐데, 현실적인 목표와 타임라인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일을 20%, 10% 시간에 욱여넣어 잘할 수 있는 건, 정말 운이 좋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미루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실 그걸 알면서도, 또 미루고 미룬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신기할 노릇일거다.
그러니 마음을 잘 들여다 봐야 한다. 단순히 하기가 싫은 걸까, 게으른 마음의 스위치가 켜진 걸까. 아님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 손댈 수 없다는 거대한 중압감을 느끼는 걸까.
단순히 하기가 싫은 건 괜찮다. 모든 일이 즐거울수만은 없다. 세상에 하기 싫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애초에 내 선택이 옳았는지 잘 살펴보고 이 일을 해냈을때의 이점을 잘 살펴보면 좋다. 그리고 그 일을 100으로 쪼개, 1이라도 하면 된다. 그러면 그렇게 싫을 만한 건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즐거움도 만날 수 있다.
게으른 마음의 스위치가 켜졌다면, 잠깐 게을러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주자. 평생 정해진 시간에 단 1분도 늦지 않고 일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엄마 3분만", "나 5분만 좀 더 누워있을게" 이 마법같은 순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다만, 스위치는 켤 수도 있지만, 끌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자. 그러니 적당히 '자신이 선택한 게으름'의 보상을 받았다면, 게으름의 스위치를 꺼야할 시간에 대한 책임도 질 줄 알아야 옳다.
매번 침대에서 뒹굴거리느라 2-3시간을 낭비하곤 한다면, 양치질을 하거나, 이를 닦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잠깐 스트레칭 하기, 기지개를 켜주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몸이 아프거나 힘든 날이 아니라면, 일단 낮잠을 자는 한이 있더라도 잠이 깬 뒤 3분 안에 나는 반드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는 걸 아주 작은 일로 변화시키면 된다. 실제로 그래서 나는 이불 정돈을 한다. 그리고 그건 정말이지 기적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손댈 수 없는 중압감이나 두려움을 느낀다면, 이건 해결이 간단하다. '지금 하라'의 주문을 외면 된다. 그냥 하자. 1%라도 하자. 물론 1%만 시작하고 이내 손을 놓는 사람도 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울궈먹으면 안되겠지만, 어찌됐건 시작은 하자. 그리고 어떤 부분을 덜 부담을 가지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도 좋다. 또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어려운 일을 먼저 하는게 좋은지, 쉬운 일을 먼저 하는게 좋은지를 천천히 파악하자.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 이걸 알고 느끼는 것에도 시행착오가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목표를 아주 잘게 나누어, 단계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면 좋다. 1,950미터의 한라산도 그 높이만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계단 하나 하나를 천천히 오르다 보면, 이제 1/5을 지났다, 이제 1/3을 지났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근력 운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당장 내일부터 덤벨 30kg를 100개씩 하겠다고 하면 숨이 턱 막히지만, 오늘 3개, 내일 4개, 모레 5개, 이렇게 늘려가는건 부담이 적다. 혹시 하다가 힘들면 쉬어도 된다. 오늘 12개 했다고 내일 꼭 13개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다고 '이생망', 'FML(F**k my life)'를 외칠 필요는 없다. 자존감에 상처만 날 뿐. 제대로된 휴식을 할 줄 아는 것도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한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오늘 하루 건너 뛰었다고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라는 꼬리표를 달지도 말자. 알고보면 다들 그렇게 산다.
마지막으로 내 의지박약이 걱정된다면 금연을 할때처럼 주변에 공언을 하거나, 함께 할만한 사람을 찾아보는 것,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북돋워주고 응원해 줄 사람에게 경과를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루의 일과가 어땠는지를 나누듯 가볍게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단, 징징거려서 어설픈 위로를 받아보겠다며 쓸데 없는 자학을 하는 건 금물.
"내가 원래 이렇지 뭐."
"이번 시험도 망했다."
"발표 완전 망칠 것 같아." 이런 말들은 하나 마나 한 말들이다.
잊었는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결과는 해보고 얘기해도 늦지 않다.
이 글의 주제를 잡은지가 언젠데, 쓰는 데까지만 약 20일의시간이 걸렸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나보다. 결국 제목을 쓰고나니 30분만에 다 쓰는 것을. '커피 한잔 마시고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이 글 한편을 30분만에 완성시켰다. 완벽한 글은 아닐지라도 그 누군간 공감해 줄 것이다. 그렇게 또 한편의 글을 완성했다. 나도 했으니, 지금 누워있을 당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