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K-POP OPPA는 아니지만.
지난 2월, 말레이시아에서 현지에서 유명한 잡지사 Eh! Malaysia와 함께 화보 촬영을 했다. 내가 봐도 오글거리며,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사진들. 하긴 누구에겐 안 그럴까. 다섯 번을 폼 클렌징으로 닦아내도 채 닦을 수 없었던 헤비 메이크업 때문에 깜짝 놀라신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Feat. 지금 내 카카오톡 프로필이라서)
친구들이 물었다.
뭐어?? 화보촬영? 니가? 뭐야 말레이시아 인싸 된거야? 쏄럽이야 뭐야?
뭐 그렇다고 해두자.
시작은 이랬다. 해당 잡지사에 한국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KOREABUZZ라는 기획 코너가 따로 있었는데, 그 코너의 편집장이 페이스북으로 나를 찾았더랬다. 메신저로 첫 대화를 나누고 무려 카카오톡(카카오톡을 쓰는 말레이시아인은 많지 않다,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는 뜻)으로 보이스톡을 해보니,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까지 했던 편집장이었는데, 라마단과 라야 기간을 맞아, '말레이시아를 소개하는 유튜버'라는 콘셉트로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사실 나 말고도 말레이시아에 관련해 영상을 찍는 유튜버는 꽤 있고, 그 대부분 - 아니, 모두 - 나보다 구독자가 많은 인기인들이다. 나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왜 내게 연락을 주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가 찾는 몇가지 조건이 있었다.
1) 신변잡기 이상의 내용으로 말레이시아를 정성껏 소개하는 사람
2) 말레이시아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는 사람
3) 말레이어, 중국어, 영어 중 뭐 하나는 제대로 하는 사람
4) 화보촬영에 어울리는 나이대인 사람 -이걸 통과하다니, 기적이 따로 없다
5) 화보촬영에 적극 임할 자세를 가지고, 메이크 오버를 통해 K-POP 오빠 분위기를 낼 수 있을 만한 사람 -이것까지 통과하다니, "엄마 나 전생에 나라 구했나봐."
그래서 그저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밑져야 본전, 무조건 Go' 했다. 사실 화보촬영은 내 인생에 두번째 있는 일이었는데, 바로 아래 왼쪽 사진이 내 생애 최초, GQ와 함께 했던 화보 촬영이었다. 뭐, 9년이나 지난 일이라 크게 설명할 건 없다만, 2011년을 맞아 한국의 주요 회사에 신입사원이 된 11명의 남자를 인터뷰한 특집 기사였다. 참고로 아래 오른쪽은, 오는 7월에 2차 에디션으로 또 한번 릴리즈 될 '느끼 발랄' 콘셉트의 말레이시아 화보. 재킷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거 인정. 자고로 화보는 '날것' 아닌가.
다른 쟁쟁한 후보들도 있었지만, 몇몇은 코로나 사태로 말레이시아에 촬영을 아예 올 수 없기도 했고, 몇몇은 현지어나 영어를 할 줄 몰랐던 탓에, 결국 '최고령자'이자 '초고령자'인 내가, 말레이시아 인기 잡지의 화보 촬영을 하게 된 영광의 티켓을 거머쥐게 됐다. "엄마 나 대단하지?"
나야 뭐 애초에 쇼비즈Showbiz 사람도 아니고, 내가 현장을 진두지휘하거나, 콘셉트를 내 맘대로 정할 일도 없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임하긴 했지만,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 현장의 모든 전문가들을 믿고 마음이 느끼는 대로 촬영하기로 했다. 문제는 콘셉트.
"형 (그는 이제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이건 말레이계 여성들이 가장 많이 보는 잡지야. 그러니까 좀 '코리안 오빠' 느낌을 내야 해. 근데 형은 비즈니스를 하니까 머리도 너무 짧고,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코리안 오빠들처럼 찹쌀떡 같이 하얗고 막 그런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변신을 좀 해봐야겠어"
"그래 그럼. 나는 눈 감고 메이크업 받고, 촬영은 시키는 대로만 잘 따라 갈게."
사실 내가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 맞는 얘긴데.
그래서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 클렌징 폼을 써서 다섯 번이나 지웠는데도 안 지워질만한 두텁(떡)화장의 나. 얼마나 광대와 턱을 깎고 싶었으면 쉐딩을 저렇게까지 넣었을까. 과연 '코리안 오피피에이KOREAN OPPA'의 이미지란 대단히 편협적(?)이다.
잠깐 샛길로 빠져보자면 이날 처음 알았다. 여성들에게 화장이란 얼마나 귀찮고, 신경 쓰이며, 애를 써야 하는 결과물인지. 화장을 지우기는 얼마나 고되며, 하루의 끝에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든다는게 얼마나 피하고 싶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인지도. 세상에 얼마나 피곤하면 그런 선택을 할까 까지도.
"형, 좀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느낌으로 가야 될 거 같아. 방금 샤워한 것처럼 머리 하고, 도도하지만 날카로워 보이면서도 무섭진 않게."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마음대로 해. 나는 오늘의 화보 촬영에 콘셉트에 잘 녹아들면 되는 피사체일 뿐이야."
총 다섯 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모든 스태프에게 박수를 받고 화보 촬영을 끝냈다. 그말인 즉슨, 인터뷰이가 가져야할 덕목 중 5번, 화보촬영에 적극 임할 자세를 가지고, 메이크 오버를 통해 K-POP 오빠 분위기를 낼 수 있을 만한 사람 으로 내가 할 도리 정도는 했다는 얘기. 추가로, 7월에 릴리즈 될 2차 인터뷰 기사에 "케이팝 오빠" 분위기의 섹시, 귀염 콘셉트 사진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얘기. 그것도 4컷 이상 - 그때 또 자랑할 예정이다-.
"와, 너무 좋은 컷이 많아 형.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
"여긴 프로의 세계잖아. 열심히 안 할거였으면 애초에 오지 않았어야지. 나도 너무 재밌었어. 그리고 이렇게 잘 꾸며줬는데 내가 잘 못하면, 오늘 3-4시간 고생한 여기 스태프들 전부는 뭐가 되겠어."
그렇게 첫 해외 화보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5월호에 나, 초고령자의 모델, 이주혁이자, 제이 리 Jay Lee, 코리안 오피피에이의 기사가 나왔다. '한국인에게 말레이시아를 소개하는 유튜버'라는 타이틀로. 1년이나 지났어도 1,400명의 구독자 밖에 되지 않는 누추한 채널이지만, 말레이시아를 진솔하게, 가감없이 소개하려는 '핵노잼'의 노력도 결국은 빛을 발했다. 나이 마흔에, 내가, 외국 잡지, 화보 모델로 참여하다니.
'많이 잘 생겨진 버전의 내가 나온' 표지 화보와 함께.
"현민, 나 이거 오늘 너무 재밌었어. 나중에 또 하고 싶어."
"그렇게 될거야. 오늘 너무 잘했어. 스태프들이 다 칭찬하더라. 이렇게 잘 할 줄 몰랐대."
화보 촬영 하나 했다고, 내가 케이팝 오빠, 한국 오빠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이것은 말레이시아, 동남아시아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소망을 가진 불혹의 코리안 오피피에이의 또 다른 작은 이정표이자, 애씀의 결과물이다. 내 생각과 진심을 담은 인터뷰 기사가 과연 몇명에게, 어떻게 와 닿았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케이팝 오빠 콘셉트 화보들보다 이 글 속에 담긴 사진들이 마음에 더 드는 이유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의미있는 명절 중 하나인 하리 라야(라마단 금식이 잘 끝났음을 축하하는 이슬람 전통 명절)를,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코로나 시대에 무기력할 법도 한 프리랜서인 내가, 내 진짜 친구들, 말레이시아인에게 보내고 싶은, 쉬이 지나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메시지이자, 기도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코로나 사태가 어서 빨리 나아지길 진심을 담아 기도한다. 더불어 현지의 교민 분들도, 다른 나라에 계신 모든 한국인 분들도, 건강하고 안전하길 기원한다.
참,
7월, 코리안 오피피에이,
케이팝 오빠 사진도 기대하세요.
응?
https://www.youtube.com/channel/UCG6kGMWL2--_oDB0Mam_kkQ?view_as=subscri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