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신 게 전혀 없다고요.
나는 호텔에 묵을 때, 방 청소나 침구 정리 요청을 줄이는 편이다. 하루 한번 정해진 수순이긴 해도, 그게 꼭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기본적으론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고, 세탁도 해야 할 것이다. 청소기를 돌려야 하니 전기도 써야 하고 설거지며 소독이며 다 해야겠지.
묵는 사람 입장에선 새로 빳빳하게 갈아둔 침구류처럼 세상 행복한 자리도 없다만, 굳이 청소를 꼭 선택하지 않는 데는 더 많은 부수적 이유도 있다.
첫째, 나는 열 중 여덟 번은 룸을 깨끗하게 쓴다. 마땅히 서비스에 대한 돈을 냈고, 대부분의 서비스는 포함 사항이란 것도 안다. 아니면 혹시 미안하거나 눈치 보여서? 그런 건 아니다. 대단한 스위트룸을 빌리지 않는 이상, 대략 15평이 넘는 방에 자본적도 손에 꼽거니와, 그 작은 방에서 뭐 흘리고 먹고 뒤집고 망가뜨리기엔 내 정신이 너무 산만스러워진다. 그러니 굳이 '내돈내묵' - 내 돈 내고 내가 묵는- 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남과 공유하며 잠깐 쓰고 떠나는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체류기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아주 길다면 중간에 정돈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긴 하지만, 일단은 그 Make bed, make room의 최소화가 목표다. 보통 내가 방에서 외출한 사이에 진행되는 룸 정리, 침구류 정리를 제때 맞춰 진행하려면, 하우스키핑 팀이 내가 나갔다 들어오는 사이에 반드시 청소를 끝내야 한다는 소린데, 어디 멀리 가서 액티비티나 투어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끔 그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서로 민망해지는 경우도 있더라. 애초부터 나는 충분히 나가 주는 게 좋고, 청소하는 사람은 내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그 어색함. 바로 이게 두 번째 이유다.
다음으로, 요즘 전 세계 어느 나라의 호텔이나 보통 붙어 있는 "소중한 지구를 지켜주세요"라는 배너 때문.
Save our Mother Earth.
수건 한 장을 덜 빨면 물이 얼마나 절약되는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면 환경오염을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 줄줄이 기억은 못해도 매번 꼼꼼히 상세히 읽어본다. 그걸 꼼꼼히 표시하고 여기저기 보이도록 잘 표시해 둔 호텔에, 나는 보통 더 좋은 점수를 준다.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머물러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예전보다 기본 제공 어메니티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호텔의 이런저런 변화도 나는 내심 반갑다.
이번 속초 여행이 딱 그랬다. 2박 3일의 일정 중에, 중간 청소를 뛰어넘자고 마음먹은 것. 우선 내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달리기 하고, 글 쓰고, 잠만 자고 쉬느라, 방에서 딱히 별로 한 게 없었다. 다만 하루를 묵었으니 추가로 필요한 것만 고르라면 샤워 타월 한 장, 그리고 여분의 생수 정도?
9번을 눌렀다.
"네, 리셉션입니다."
"네, 저 1417호 숙박객인데요, 제가 계속 밖에 나가질 않고 방에서 쉬어서 DND (Do Not Disturb)해뒀거든요. 하우스키핑 팀에 제 방 오늘 청소 안 해도 되니까, 수건 하나랑, 생수 하나만 더 달라고 해주시겠어요?"
"네, 지금 바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3분쯤 지났을까. 어쩌면 안전 문제, 또는 시급성의 문제인지 몰라도, 나의 어머니랑 비슷한 연배로 보이시는 두 분이 방문 앞에 서 계셨다.
"빨리 와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수건이랑, 생수 요청하셨지요?"
"아유 죄송하기는요. 네, 수건 하나랑, 생수 하나만 주시면 돼요."
"네, 죄송합니다. 여기 생수랑 수건 드리겠습니다."
"어?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되는데, 하나만 쓰면 돼요."
"네, 아닙니다. 혹시 방에 들어가서 추가로 정리해 드릴 건 없을까요?"
"네네, 아마 있었으면 말씀드렸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쓰레기통이라도 좀 비워드릴까요?"
"아 그럴까요? 잠시만요 가져다 드릴게요."
"아, 저희가 들어가도 되는데,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아뇨, 뭐가 그리 죄송하세요? 비워주시니까 고마운 건데."
연신 죄송하다 말씀하시는 직원분께선, 내게 샤워 타월 2개와 생수 3개를 주셨다. 그것이 혹시 규정인지, 정말 요청대로 청소를 건너뛰어도 되는지 미안해하시는 무거운 마음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방문을 닫고 수건을 가지런히 걸었다. 생수를 냉장고에 넣고 곰곰이 생각했다.
대체 뭐가 그리 죄송하신 걸까.
나는 나의 편의와 환경을 위해, 청소를 안 하기로 선택했다. 어쩌면 수백 개의 방 중에 청소를 건너뛴 방이 몇 개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타월로 김치, 깍두기 국물을 닦았을지, 침대 시트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알 수 없는 얼룩을 남겼을지, 잘 보이지 않는 TV뒤쪽에 땅콩 껍질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밀어 넣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모님들-직원분들이지만 글의 뉘앙스 상 이모님이라고 칭하겠습니다-은, 코로나 19로 손님까지 줄어든 호텔에서 일자리 걱정, 근무 걱정을 하며, 레이트 LATE 체크아웃과 얼리 체크인으로 더 쫄아들어 버린 시간 동안, 본인들이 맡은 수십 개의 방을 청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연신 죄송하다 말씀하시는 이모님의 얼굴에 맺힌 땀과 흩어진 머리카락이 왜 그렇게 눈에 들어왔을까. 모르겠다. 여행으로 말캉해진 나의 감수성 때문에, 마스크 너머 들리는 "죄송합니다" 소리에 이유 없는 연민을 느꼈을지도.
다만, 이모님이 정말 왜 그렇게 죄송한지 알 수 없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 그저 이틀 동안 두 번 해야 할 청소를 한 번으로 줄인 것뿐인데, 해야 할 일을 건너뛰는 불편한 마음이라도 가지셨을까. 그래서 두 병이 할당량인 생수를, 심지어 1인 고객에게 3개나 챙겨주셨던 걸까.
물론 나는 마지막 체크아웃을 하며, 사용하지 않은 샤워타월 2개를 그대로 올려 두고 놓고 나왔다. 전날 쓰지 않았던 타월이 남아있었는데 새로 받은 두 개를 의미 없이 적시고 더럽힐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샤워 타월 사이에 끼어있던 핸드 타월 두 개-받을 땐 몰랐다-는 사용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세면대 옆에 걸어 두고 나왔다.
나의 저의가 어찌 됐든, 새로 방에 들 손님을 위해서라도 쓰지 않은 타월을 세탁하실지 모를 일이지만. 그리고 사용했던 모든 집기들을 대략 제자리에 두고, 전날 근처 식당에서 받았던 사탕 두 개를 책상에 올려두고 나왔다. 혹시 일하다 힘드시면 드셔도 좋을 것 같아서.
이모님들이 방문 앞을 떠나시고 10분쯤 뒤, 저녁 산책을 하러 나가기로 했다. 어젯밤 편의점에서 사두었던, 꿀물 하나, 자양 강장 드링크 하나를 즉흥적으로 꺼내 들고.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오니, 도대체 이 복도에 방이 몇 개 일지 가늠도 어려운 거리 끝에 아까 내게 찾아와 주셨던 두 분이 아른아른 흔들렸다.
"저기요, 아까 1417 와주셨던 분이시죠?"
영문을 모르는 이모님이 화들짝 놀라셨고, 땀을 흘리며 청소를 하다 소파에 잠깐 앉아계셨던 어머님도 내가 방 쪽으로 발을 들이자 마치 사감 선생님에게라도 걸린 기숙사생처럼 벌떡 일어나셨다.
"네, 맞아요. 저희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실수는요. 저 이거 제가 사둔 음료수가 너무 많아서 드리는 건데, 더우니까 드시면서 하세요."
킹 베드의 시트를 수십 개씩 매일 갈아내기엔 무척 가녀려 보이는 깡마른 몸매의 이모님이 두 손을 수줍게 내미셨다. 마스크 너머로 주름진 웃음이 번져왔다.
"어머, 너무 감사합니다."
"아니요,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두 이모님, 사탕은 드셨을까. 오늘 하루는 조금 달달했을까.
대체 뭐가 그렇게 죄송하신 걸까. 혹시 우리는 상대의 암묵적 '죄송함'으로 위안을 얻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