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인의 청춘 Jun 30. 2020

내 생애 가장 길었던 16km 달리기

버추얼 컴패션 런

10km 이상은 웬만하면 뛰지 않겠다고 해왔다. 하프 마라톤이나 풀 코스도 도전해 보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건 내 도전이 아니라고 했다. 달리기, 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 그러니 10km정도 뛰는게 딱 좋다. 무리 없이, 슬슬, 꾸준히 할 수 있는 여가생활. 건강 증진에도 좋고, 무릎에도 무리없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km수준.


4-5년 전 팔팔(?)할 때는 가끔 매일 그렇게 뛰었지만, 이젠 관절과 연골 때문에 매일 하긴 겁나는 10km. 그래서 계속 10km 안팎으로만 뛰었다. 하프나 풀 코스 해보면 정말 좋다고, 성취감도 대단하다고 무수히 들었지만,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방 안에서 바라본 대포항 풍경. 여기를 뛴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달리기가
힘들거나 일처럼 느껴지면
언젠가 이 즐거움을 놓아 버리게 될까봐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적당한 수준의 행복과 만족감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 혹여나 달리기 지식도 없는 내가 내키는 대로 마구 달리다가 무릎이나 관절에 무리가 와 오랫동안 달리기를 못하게 될까봐.


나가기 전까진 아주 아주 신났다.


그런 내가 16km를 달렸다. 2시간 36분 동안 쉬엄 쉬엄. #버추얼컴패션런 때문.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한 달리기. 컴패션 코리아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는 코로나 때문인지 '버추얼'로 진행됐다. 참가를 원하는 모두에게 러닝 키트가 발송되고, 정해진 기간 동안 언제 어디서든 뛰고 인증을 끝내면 되는 언컨택트 이벤트.


우선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로 세상에 아주 아주 작지만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참가금이자 기부금으로 낸 5만원 전액이 어린이를 위해 쓰인단게 맘에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브랜드 및 행사 홍보용 FUN RUN을 많이 했었지만, 한국에선 오랜만이었다. 소아암 환우를 위한 달리기 이후 거의 6-7년만에 참여해보는 기부 런이었으니까.


언제 뛰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글쓰기를 위한 동해안 드라이브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인증 기간 안에 동네 달리기는 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마음 먹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길을 뛰어보자. 그렇게 속초와 양양을 넘나 들며, 16.09km를 뛰었다. 내 생애 가장 길었던 러닝.


나의 운명적 반환점.


원래 10km 참가자였던 내가 갑자기 16km를 뛴 건 다름 아닌, 홍보 대사들의 선한 영향력 때문. 평소 컴패션 대사로 활동 중인 분들이 코로나 19를 이겨내자는 의미에서 19km를 뛰었다는 포스트가 올라왔다. 션, 이영표, 이시영 님의 의미있는 발걸음. 아니 그걸 보는데, 마음 속에서 열정이 불끈 솟아 오르며


더 뛰어야겠다.
 

아주 요상한 꿈틀거림이 터져나왔다. 죽을때까지 달리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10km만 달리자고 다짐해놓고. 지금까지 참가한 펀 런 FUN RUN중에 가장 긴건 말레이시아의 '퓨마 마라톤' 12km였다. 34도의 더위 속에서 요단강을 건널 뻔했다나 뭐라나.


그런 내가 마음 먹은 20km. 코로나 19를 이겨내자는 의미에 동참하면서 거기에 나만의 의미 아이들(I)을 의미하는 숫자 1을 더해 20km를 뛰어보자!! 그래!! 평생 이런 달리기는 다시 없을지 모르는 불혹에, 해보는 거야! 쉬엄쉬엄하면 될거야!


가끔 멈춰서 사진도 찍었다.


물론, 무리였다.


문제는 처음 달리기를, 그것도 코스 없이 혼자 해야 하는 속초의 날씨, 시간, 나의 체력, 이 삼박자를 맞추는 거였는데. 첫째, 지리도 모르는 내가 과연 안전한 코스로 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 둘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 장마가 길어진다면 어쩌면 임무 수행을 하기 전에 날씨가 개지 않을거라는 걱정, 마지막으로, 생애 처음 마음 먹은 20km거리를 과연 내 나이, 내 체력, 내 근성으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쫄림'. 이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어렵진 않았다. 첫째, 안전하게 반환점을 돌아올 수 있는 도보 거리를 네이버 맵으로 찾고, 둘째 날씨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장맛비가 시작되기 전에 완주를 하고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역으로 계산했다. 셋째, 혹시 내가 너무 힘들어 페이스가 늘어져도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을지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보았더니 답이 나왔다.


바로 지금 나가야 한다.

밤 9시부터 장맛비가 시작되고 그 비가 3일 동안 온다고 했으니, 오늘, 바로 지금이 아니면 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조만간 들르게 될 부산에서도 달리기를 할 수 있겠지만, 부산 일정은 왠지 마음 놓고 어딜 달릴 만한 여유가 없을 것만 같았다.


5분만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는 최고의 코스.


지리를 모르는 내가 자신있게 나갈 수 있던 건,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길을 잃지 않을 '자전거 환상도로'를 따라 뛰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안전하게 갈 수 있다면 사람도 그 길을 따라 어쨌거나 저쨌거나 뛸 수 있다는 뜻. 게다가 여름이라 8시나 돼야 해가 지니, 그 전까지 1시간 반의 여유가 있었다. 결국 길은 잃지 않을테니 한적한 길에서 공포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대에만 번화한 곳으로 돌아오면 될 거라는 믿음이 이 무모한 계획을 완성했다. 혹시 너무 힘들어 페이스가 늘어지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숙소 방향이라면 가로등도 있을 거라는 확신.


순전히 아이들을 돕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던


내 생에 가장 긴 16km의 달리기는
그렇게 완성됐다.

애초에 마음 먹었던 20km를 뛰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소하지만 당장 내려놓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통증이 시작된 것. 12km를 넘어서자 무릎이 무거워지고, 고관절을 작은 망치로 조금씩 두들기는 느낌이 들었다. 족저근막염을 만들 것 같은 왼쪽 뒷꿈치 통증. 거기에 저혈당인지 체력 저하 때문인지 모를 어지러움. 거기에 장마의 서막이었는지,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한 안개비.


목표를 변경했다. 20km는 무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멈추자고 생각을 바꿨다. 내일을 끙끙대지 않도록, 이 즐거운 달리기를 언젠가 또 할 수 있도록, 여기서 멈추자고 생각했다.


반환점 등대 앞에서 찍은 0484 참가자 인증 샷. 10km 참가자에게는 SOCKS UP에서 협찬하는 파란 양말이 배달됐다.


힘들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200-300m를 나아갈 때마다 모자 속에서 핑핑 도는 머리.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인가, 빈혈인가, 저혈당인가.


나는 애초에 션 님, 이영표 님, 이시영 님과 대적할 프로 운동러도 아니고. 신체 건강한 분들이 특별한 의미를 담아 19km를 뛰었다고 해서 나까지 무리해 20km를 달리기엔, 뛰고나서 갖게 될 성취감보다, 며칠동안 끙끙댈 피로와 한심함을 끌어안는 결과뿐일 거란 생각.


아, 여기까진가 보다.

혼이 나가기 시작함. 속초에서 양양을 다녀왔다가 다시 속초로 돌아오던 길.


그렇게 끝이 났다. 아마도 다시는 없을 내 생애 가장 긴 달리기. 16.09km. 애초에 계획한 20km를 완성하진 못했지만, 내가 참가하기로 했던 10km의 절반을 더 달리는 것으로, 나는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마음을 보태었다. 속초를 벗어나 양양을 돌아 다시 속초로 돌아왔다. 여러 해변을 감상하고, 생애 처음 보는 항구를 보며 신나기도 했다. 물론 그 중에 제일 좋았던 순간은, 아주 머얼리 보였던 숙소의 불빛.


이제 다 왔다.

롯데 리조트와 라마다 속초 호텔이 점차 선명히 보였던 순간.


대포항 튀김 센터-라는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지만-를 돌아 마지막 코스로 돌아오는 기분은 환상적이었다. 항구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즐기던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볼법도 한 파란 양말을 발목 위로 신고 아프리카 아이의 사진을 배에 얹고 달리는 까무잡잡한 외국인 같은 내가 신기했을 거다.


뭔데 이 밤에 혼자
번호표 달고 저러지 저 사람?

글을 쓰는 지금도 무릎이 살짝 무겁고 뻐근하다. 마지막엔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잠도 아주 푹 잤다. 베란다 너머 보이는 넘실대는 파도를 보며 내 인생, 한 페이지가 조금 넘을 기록을 이렇게 또 남긴다.


아이들을 위해 기부한 작은 돈 5만원. 한 아이든, 많은 아이든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니까, 한끼 식사가 됐든 주사가 됐든, 공책이든, 우물물 한바가지든. 아마도 내 생애 다시는 없을 가장 긴 달리기를 얹어 보내는 나의 마음과 애씀이, 아이들에게 온기로 전달되기를. 코로나 19를 이겨보자는 19km도, 거기에 머리로만 그렸던 '아이(I)'라는 의미를 담은 20km도 없던 일이 되었지만.



앞으로 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삶을 살더라도 오늘의 나를 잊지 않기를. 오늘의 내 마음을 잊지 않기를. 5만원이든 5천원이든, 나눌 수 있는 온기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남기를. 그 작은 마음이 돌고 돌아,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있기를. 머리는 냉철할 지라도 마음은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또 한번 달릴 수 있기를.


이렇게 운동을 하는데도 매일 그대로인 몸뚱아리가 나는 정말이지 불가사의 하다.


마지막으로 내 건강과 즐거움, 10km를 넘어 16.09km를 달릴 수 있게, 동기부여 해주신 션 님, 이영표 님, 이시영 님께, 컴패션 코리아에 감사드린다. 이분들의 선하고 뜨거운 온기 덕분에, 이렇게 작은 나도 마음을 조금 더 꺼내어 쓸 용기를 가지게 됐으니까. 2020년 6월 30일, 한해의 반을 막 지나는 나의 마음도 이렇게 정리 끝.


방에서 내려다본 속초 밤바다는 깊고 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우리, 약을 좀 줄여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