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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Dec 20. 2020

참을 수 없는 반려생활의 가벼움. 1

함부로, 무례하게

우리 주봉이를 입양한지 이제 50일이 지났다. 유기견. 버려진 강아지. 주인이 없는 개. 남들에겐 내가 모를 참신한 표현이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없다. 주봉이는 주봉이다. 태어난 날도 내가 정했다. 그러니 내년 생일이 되면 주봉이는 내가 정한 날짜에 영문을 모른 채로 촛불을 끄게 될 것이다. 원래는 다홍이였던 아이. 이제는 주봉이가 된 아이.


내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담긴 칩을 갖고 있는 주봉이. 매일 아침 힘겹게 눈을 뜨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주봉이. 방송이 끝나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면,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듯 나를 반겨주는 어여쁜 눈망울의 주봉이.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던 고민은, 과장을 보태어 만 4년을 넘게 하고서야 끝이 났다. 기를 수 없는 환경,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나와 맞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이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까 싶은 기우. 어렸을 때 초롱이라는 예쁜 강아지를 기르다가 집안 사정이 생겨 떠나보내야 했던 기억도 발목을 잡았다.


내가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다음 날, 보호소로 갔을지도 모를 주봉이. 그런 주봉이가 나보다 2도쯤 뜨끈한 몸뚱이를 내 다리에 붙이고 지금, 내 곁에 있다.



어린 강아지도 산책에 습관을 들여주면 좋다고들 하길래, 땅에 내려놓기도 힘든 아이를 가끔 데리고 나갔다. 슬링백에 안고 나가거나, 가슴팍에 포옥 감싸안고 나가는 정도. 시간이 흘러서는 가끔 - 주봉이는 끔찍하게 싫어했을지도 모를 - 하네스를 입혀 데리고 나가기도 했지만, 아직 3킬로 남짓한 아이에게 집밖의 세상은 -여전히- 무서웠을지 몰라 나는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간혹 납덩이처럼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결국 '반려생활'이란, 주인이 하고 싶은 걸 하려는 욕구 충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싶은 죄책감 같은 것.


어쩔 수 있으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간혹 내 최선은 아랑곳 없는 상황을 겪고 나면, 이 아이를 위해 이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또 무언지 헛갈릴 때도 있지만.  




저기, 얘 얼마 주고 샀어요?

아, 유기견이고요, 얼마 전에 입양했습니다.

어머 너무 이쁜데, 눈동자 색깔봐. 나는 되게 비싼 앤 줄 알았어.

아니에요. 형제가 몇 마리 있었는데 그 중에 한마리 입양한 거예요.

어떻게 얘가 입양된 애야? 난 당연히 돈 주고 산 줄 알았지! 비싸 보이는데!




얘 종이 뭐예요?

아 사실 저도 잘 모르고요, 믹스견이에요.

아 그럼 그렇지.



걔 몇 살이에요?

아 이제 5개월 째에요. 아직 애기죠.

걔 종이 뭔데요?

아 믹스견이에요.

어머, 조심해야 돼. 여보. 얼른 가요.





아이고, 얘 이쁜거봐.

감사합니다.

어머 얘 되게 크겠네. 발 좀 봐. 엄청 크게 생겼어.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 정도 발이면 막 15킬로도 되겠다.

아 그래요? 전 어미밖에 못 봐서요.

아 종이 뭔데요?

믹스견이에요. 입양했습니다.

어머 무슨 마음으로 입양했대?


어머 얘 '앉아'도 할 줄 아네?

네 제가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라 교육 시켰어요.

이렇게 생긴 애가 원래 똑똑해.

감사합니다.

뭐 유럽 쪽 개인가?

아니요 믹스견이에요.

아, 괜찮아. 원래 잡종들이 더 똑똑하대.





그냥 지나쳐도 될 하찮은 인연들이 너무 쉽게 다가왔다. 몇 살이냐, 몇 키로냐, 사료는 당연히 로얄 캐닌을 먹이지 않느냐, 잡종이 빨리 큰다더라 등등. 그리곤 나의 생명이자, 나의 동반자, 나의 가족에게 함부로 말을 던져댔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주봉이는 주봉이다. 주봉이는 그냥 주봉이다. 주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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