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너도 나도 자란다.
우리 주봉이와 만난 지 어느새 15개월이 됐다. '와 시간이 정말 빠르네.' 싶으면서도, 한 공간에서 아빠와 아들로 살아온 매일이 - 특히 어린 강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미숙했던 나날들- 꽤나 강렬하고 인상적이어서, 수없던 애태움과 걱정을 헤아려 보자니, 마치 시간이 15년쯤 흘러간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기견으로 발견돼 입양해온 주봉이는, 병원에서 우리 집까지 2km 채 되지 않는 길 위에서 극심한 공포를 겪은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싶으면서도, 엄마, 남매와 분리된 상황이 얼마나 어리둥절했을지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 주봉이가 우여곡절 끝에, 성견이 되어 지금도 내 곁에서 쌔근쌔근 잠을 잔다. 어느새 늠름하고 의젓해진 것 같기도 하고, 왜 이렇게 빨리 컸을까 싶기도 한 마음은, 이 세상 모든 견주들이 '시원 섭섭'함을 토로하는 어떤 지점이 아닐까.
주봉이를 기르는 건 참 쉽지 않았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해서, 절대로 어려울 수가 없는 착하고 순한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나는 그렇게 쩔쩔맸던 것 같다. 보호자인 내가 주봉이를 기른 건지, 되려 주봉이가 '견주'라고들 부르는 날 기른 건지 명확히 가르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날들. 아마도 우리는, 서로 자랐다고 표현하는 게 가장 잘 어울릴 것만 같다.
사랑이 넘치고, 애교도 많고, 눈치가 빠른 주봉이. 질투나 욕심도 없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까지 가진 주봉이. 칭얼거리거나 찡찡대지도 않고, 사납게 짖지도 않아, 하루 종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내 곁을 지키곤 하는 주봉이.
내가 어쩌다 이런 널 만났을까.
그렇게 착하고 예쁜 강아지와 함께 하면서도, 도무지 어쩔 줄을 모르겠던 순간들이 흑백 필름처럼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내가 너와, 그리고 네가 나와, 서로에게 처음인 세월을 함께 겪느라 그랬겠지.. 싶으면서, 그런 생각에 잠기면, 어느새 미소를 짓게 되고, 한없이 모자란 내가 이토록 충분한 너와 함께 이렇게 성장했구나 싶어, 가슴 한구석이 저릿할 때가 있다.
아주 어릴 땐 오직 '물고 뜯기' 밖에 모르는 것 같은, 세상에 아는 거라곤 '망가뜨리기'밖에 없는 것 같은 주봉이가 참 원망스러웠다. 새로 산 가구며, 출근할 때 쓰는 가방부터, 옷에 달린 단추, 전선, 매일매일 버리고 고치고 닦아야 할 것들이 쌓여갔다. 망가진 예닐곱 벌의 옷은 버린 지 오래고. 차를 타고 가다나 내 바지 위에 하루 종일 먹었던 밥을 모두 토해버린 일, 가방 속의 모든 소품을 꺼내 잘근잘근 씹어 놓은 일. 몇 번 신지 않은 운동화 끈을 개껌 씹듯이 씹어 끊어버려서, 새벽에 출근하다가 운동화 끈을 밟고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 비싼 원목 가구 다리를 하도 긁고 뜯어서, 식초나 간장을 발라놔야 하나 싶은 적도 여러 번. "너 대체 왜 그러는 거야"라고 볼멘소리를 해봤자, 동그란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빛나고, 쫑긋 선 귀는 물음표만 그리고 있었다.
아주 작은 너도, 그리고 나도,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더랬다.
첫 광견병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갔던 날, 씩씩하게 주사를 맞고 나오는 - 주봉이는 이제껏 주사를 맞으면서 단 한 번도 낑낑대는 소리를 낸 적이 없다 - 너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마치 방금 전 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침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주봉이가 생각난다. 워낙 어렸을 때 차 타는 걸 무서워해 침을 흘리곤 했었던 아이라, '너무 긴장해서 그랬나' 싶으면서도, 여느 때처럼 내 무릎에 앉아서 잠이 든 것 같은 주봉이를 보고, 집에 가서 코 자자.. 하던 차에, 주봉이는 감은 눈을 반쯤 뜬 채로, 그 작은 머리를 '쿵'하고 떨어뜨렸다. 광견병 주사를 맞고 찾아온 쇼크였다. 끙끙대는 소리도 내지 않고, 안아달라고, 살려달라고 매달리지도 않았던 너를 감싸 안고, 급하게 차를 돌려 병원으로 다시 가서는, 해독제를 맞고 회복하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너를 잃을 뻔했다는
공포와 죄책감은
한동안 나를 불면으로 이끌었다.
어느 날인가는, 자꾸 앞발로 귀를 긁어대기에, 뭐가 그렇게 간지러워서 그런가 싶어서 들여다보다가, 한쪽 귀가 다른 쪽 귀보다 한없이 빨갛게 변해있는 걸 발견하게 됐다. 목욕을 한 뒤에나, 간혹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 잘 말려주지 않아서 생긴, 곰팡이 염증이라고 했다. 현미경으로 본 곰팡이의 모양과 숫자에 얼마나 기겁을 했었는지. 매일 함께 자고 눈 뜨면서도 너의 아픔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어찌나 미안했던지. 오랜만에 죽은 털을 제거하느라 빗질을 해주다가 이미 껍질이 된 각질을 발견하게 됐을 때는 또 어떤가. 털이 짧은 단모종이라 빗질을 자주 해주진 않았었는데, 생활환경이 건조해 생길 수 있는 피부 건조증이라고 했다. 너를 매일 안고 쓰다듬으며 잠들면서도 그걸 몰랐었다니.
내가 과연
그토록 사랑스러운 너에게
좋은 보호자가 맞는 걸까.
주봉이가 아주 어렸을 때, 보상과 올바른 훈육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던 초보 견주인 나는, 뭔가 뜨끔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가르친다면, 놀라서라도 내 말을 더 잘 듣게 되지 않을까 싶은 그릇되고 멍청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훈련을 시키다가도 말썽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너! 이리 와! 안 와? 이 놈 시끼'를 남발하며 매서운 눈빛을 쏘아대곤 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 그 정도로 준비도 안 된 형편없는 견주였던 나지만- 어린아이에게,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부모이며, 부모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 일관성 있는 보살핌을 보여주어야 하듯, 강아지를 기르는 데에도 예외는 없었다. 공포와 불안을 조성했던 나의 '이리 와' 시그널에, 겁에 질린 강아지가 쪼르르 달려올리는 만무한 일. 참고로 '이리 와'를 외쳐서 내 품에 다시 두려움 없이 안기게 만들기까지 - 아빠에게 안기면 언제나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 - 그로부터 6개월을 들여야 했다. '오구 오구, 아빠한테 왔어, 아구 착해, 재밌어? 신나? 아구 이뻐, 사랑해'를 과장해 보자면 이제껏 천만번 정도 외치지 않았을까. 이제는 '이리 와' 소리에 달려와 꼬리를 왱왱 흔들며 머리를 마구 들이미는 주봉이 덕에, 하루 내 얼어붙은 마음도 스르르 녹곤 한다.
윽박지름과 공포로
강아지를 기를 순 없다.
아니, 길러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책임감 있고 성숙한 견주가 되는 길 위에는, 즐겁지만 무겁고, 행복하면서도 고생스러운, 납덩이같은 숙명, 바로 반.려.견.산.책. 이라는 숙제가 놓여 있다. 무겁고 찐득한 진흙뻘로 뒤덮인 것만 같은 길은, 아무리 걷고 걸어도 끝이 없는 것만 같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때로는 눈썹이 한없이 쳐진 심심하다는 표정을 하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우리 우리, 언제 나가요? 네? 네? 네?'라는 듯 나를 바라볼 때면, 갑자기 10kg짜리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찬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고 만다.
절대로, 저얼대로, 너와의 산책이 싫어서가 아니라, 네 웃음을 보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산책을 할 시간을 내고, 나갈 준비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 배변 봉투와 간식을 챙기고, 오늘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다른 개나 사람을 만났을 때의 마음가짐을 준비하는 건, 간혹 내게 인생의 숙제처럼 무겁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엔 '오늘은 진짜 진짜 아빠 마음이 그런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갈 수가 없어' - 라고 상냥하고 나긋하게 설명해주고 싶지만.... 절대로, 저얼대로 그럴 수가 없다. 끄응.
하루에 단 30분도 반려견과 놀아줄,
의지나 의욕이 없는 사람이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혹은 내가 아파서 누워 있거나 말거나, 주봉이가 하루 중에 가장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산책을 갈망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영원히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뛰는 걸 엄청 좋아하고, 신체 능력도 좋거니와 활동성이 강해서, 언제나 날렵하고 가벼운 주봉이. 친구들을 만나면 '날아다닌다'라고 표현해도 모자랄 주봉이.
혀가 튀어나올 정도로 숨을 헐떡 거리며 뛰어다니는 너를 사랑하고, 새로운 냄새에 신이 나서 흥분하는 너를 사랑하고, 마주치는 강아지들이나 행인들과 인사를 하고 싶어 하는 너를 사랑하고, 아빠가 피곤해서 잠들어 있을 때면, 일어날 때까지 발밑에 조용히 엎드려 기다리는 너를 사랑해. 몇 분만 집 밖으로 나갔다 와도, 대체 어디 갔다 왔냐는 듯이 날 사랑해주는 널 사랑하고, 너의 매끈한 등을 쓰다듬을 때, 고개를 가볍게 내 팔 위에 얹곤 하는 널 사랑해. 출근하고 돌아오면, 보고 싶어 죽을 뻔했다는 듯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아빠도 주봉이 너무 보고 싶었어'라는 말에 이내 씩씩 거리던 숨을 가다듬는 너를 사랑해. 너를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정신이 없이 일을 하고 있을 때, 내 옆에 가만히 앉아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를 너무 사랑해. 힘들고 우울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따뜻한 혓바닥으로 내 뺨을 핥아주고, 가느다란 두 손을 내 팔에 얹고선 물끄러미 바라봐주는 널 진심으로 사랑해.
너무 늦게 만난 우리 주봉이, 오래오래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이 아빠도 꼭 건강 지킬게. 지난 1년 반 동안 서툴고 미숙한 아빠를 많이 자라게 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