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껏 용기 내지 못했을까.
나는 물을 무서워했다. 아니, 물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수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땐, 계곡이나 바다에서도 무서움에 떨었고, 사실 바다 수영은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 고쳐 쓰자면,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곳에 잘 놀러 가 본 적도 없다. 워터파크도 예외는 아니었지 아마.
피부가 별로 좋지 않다. 어렸을 때, 나에게 큰 콤플렉스 중 하나가 바로 닭살이었는데, 그런 닭살 피부를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도 그리 당기지 않았다. 이왕이면 긴 옷으로 가리고 싶었고, 체육 시간엔 체육복을 좀 더 끌어내려 닭살을 가리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과하게 말해, 천 쪼가리 같은 수영복을 입고 사람들이 득시글 거리는 곳을, 내 흉한-이라고 생각했던- 피부를 드러내 보이고 활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나에겐 '나는 물을 무서워해'라는 지독하고 명쾌한 이유도 있었으니, 친구들과 수영장이든 워터파크든, 사우나든 별로 가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것들은, 나이가 들고 이젠 의미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지만. 세상 사람들은 사실 그다지 남에게 별로 관심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여하튼, 다시 돌아가,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지 않나. 내 몸뚱이에 납덩이라도 달려 있어서, 한없이 빠져버릴 것 같은 공포.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면 어떡하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면 어떡하지 등등, 원래 두려움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는 걸 눈앞에 가져와 목을 조르곤 한다. 그런 까닭에, 물을 지독히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남는 게, 차라리 마음은 편했을지도.
다만, 정말 좋아하는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는 바다가 너무 좋고, 해양 생물을 관찰하는 게 너무 좋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버디를 맺고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은데, 수영도 좀 할 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아쉬움. 그토록 좋아하는 대상이, 그토록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라는 건, 그리 자연스럽지도, 편치도 않은 일이니까.
스쿠버 다이빙은 수영을 잘하지 못해도, 충분히 제대로 교육받으면 할 수 있는 활동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게다가 이제는 대부분의 공인 자격증을 따려면, 수영은 필수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다이브 마스터 교육까지 받았던 나에게 수영이란 건, 영원히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을 계속 갖고 있었다.
4년 동안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콘도에 딸린 수영장에서 가끔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수영이란 게, 진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그 수영이 아니란 건 당연했다.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면 꺄무룩꼬르르르 하면서 죽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 건 여전했으니까. 그래서 마음을 바꾸었다. 그냥 조금씩만, 조금씩만 다가가 보자. 물에 몸을 담그기만 보자. 조금만 움직여 보자. 숨을 조금만 참아 보자. 그렇게 그렇게.
꼬박 3년을 그렇게 했다. 자주는 아니었어도, 가끔 몸을 담갔다. 그냥 물이 몸을 감싸는 느낌을 느끼고, 발을 움직일 때의 감각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긴 호흡으로 잠수도 해보고, 아이들이 물장난 치듯이 물과 놀았다. 그렇게 3년쯤 지났을까. 이제 물에 뜬다는 게 뭔지 알게 됐다. 누가 보기엔 참 오래도 걸렸지만, 그게 나에겐 최선이었다.
건강을 위해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한 지 4개월. 근력 운동은 충분하니, 평소에 습관처럼 유산소 운동을 더 해야 한다는 얘기를 트레이너 선생님께 들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에 수영을 해볼까?"
근처 수영장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쪽쪽 빨려나갔다. 어디가 좋은 건지, 뭐가 좋다는 건지를 구별하는 눈도 없는 내가, 근거리 안에 있으면서도, 성인반 수업 스케줄이 나에게 맞는 곳이 어딘지를 찾고 또 찾았다. 거의 일주일을 넘게, 매일 밤 침대에 누워 검색하고 찾았을까. 몇 군데를 캡처해 두고, 전화 문의를 해봐야지, 그러고는 또 보름이 흘렀다.
내가 수영을 왜 하려는지, 얼마나 하고 싶은지가 궁금했다. 그 생각이 확고하지 않다면,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고 그만둘 것만 같았다. 오래 곱씹으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수영을 할 수 있는 스케줄인가. 내 체력이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돈이 많이 들진 않을까.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어쩌지. 이 나이에 처음 시작하는 수영을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혹시 수업에 가서 주눅 들거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지. 거 참 생각도 많았다.
그중에 가장 바보 같았던 생각은 이거였다.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어쩌지.
태권도를 그만두어봤다. 합기도도. 서예학원은 꽤 오래 다녔지만, 피아노는 금방 그만두었다. 바이올린을 배웠다가 한 달 만에 거기서 멈췄다. 그러고 보면 나란 사람은 무언갈 꾸준히 해본 게 없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퇴사를 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더. 사업도 해봤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했다가 갈아엎기도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나만 이런 건가. 아니면 모두들 아닌 척 그럴듯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건가.
집과 가깝고, 어린이 수영장으로 쓰이는 곳이라, 온수풀이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처음 수업을 듣던 날, 킥판을 붙잡고 허우적 대느라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힘들었다. 어푸 어푸가 왜 그렇게 안되던지. 잠시만 머리를 물속에 넣고 있어도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박자가 맞질 않으니 과호흡 대잔치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킥판을 붙들고 발차기를 연습했다. 호흡법을 연습하고, 수영장 벽을 붙잡고 스트로크를 익혔다. 이제 조금 익숙해지나 싶다가도, 가슴이 뻑뻑해 오면서 숨이 가빠지면, 나는 역시 재능이 없나 보다 하며 풀이 죽었다. 25미터 레인도 한 번을 제대로 가기 힘들어 쉬고 또 쉬고 걷고 그랬다. 아, 이걸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지.
기껏해야 허리 조금 위로 오는 물속에서도, 물에 대한 공포는 여전했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니까 쉽사리 뜨지 못했다. '가라앉을 것만 같아'라는 생각만 하면, 어김없이 가라앉았다. 숨을 억지로 쉬려고 고개를 들 때마다 몸이 천근만근처럼 처박혔다. 준비 운동을 하고, 킥판을 부여잡고 낑낑거리며 레인을 예닐곱 번 돌고 나면 숨이 차올라서 머리가 핑핑 돌았다. 아, 이게 기본일 텐데 이게 그렇게 안될 일인가.
매일 아침 8시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참여하는 작가의 숙명 같은 하루 일정도 큰 장벽이었다. 오전 반은 엄두도 못 낼일. 유일하게 참석이 가능한 9시 성인반 수업에 간신히 등록하고, 이제 내게 남은 옵션에 충실해야 했다. 모든 걸 다 끝내고 가던가, 최대한 해놓고 부리나케 다시 돌아와 마무리하던가. 그 어떤 옵션도 쉽지 않았다.
아 너무 힘들다. 그만둘까.
매일 원고를 쓰고, 부족한 잠에 아쉬워하며, 주중 매일 밤 9시에 수영에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허투루 하고 싶진 않았다. 최선을 다해 참석하자.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보자. 죽어라 해도 안되면, 그때 그만 두자 하는 마음이었다.
힘이 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방송이 끝나면, 이미 하루가 다 간 것만 같다. 생방이 끝나면, 무슨 직업병처럼 졸리고 늘어지고 나른했다. 그 몸을 끌고 헬스장에 가 매일 운동을 하고, 집에 와 점심을 먹고, 1차 원고 작업을 하고 나면 이미 4-5시, 일어난 지 11시간째, 두 번째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9시 수영 수업에 가려면 그전에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끝마쳐야 하고, 원고가 늦지 않도록 앞뒤로 작업을 재빠르게 처리해야 하니, 마음도 불편했다. 이게 맞나 싶은 적도 여러 번이었고, 수영을 하고 돌아와 수영복을 빨고 널고, 내일을 준비하며 거울을 보면, 안 그래도 요즘 살이 빠진 얼굴이, 마치 뭉크의 [절규] 속 주인공 같아 보였다.
물을 너무 많이 먹었다. 코가 맵고, 배가 불렀다. 자유형 발차기를 3주나 연습했는데, 숨쉬기가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킥판 없이 자유형을 해봐도 스트로크를 채 두 번도 하기 전에 가슴이 뻑뻑하게 숨이 차올랐다. 뭐가 문제인 걸까. 죽을 것만 같이 숨이 찼다. 답답하고 막막했다. 대체 언제 느는 걸까.
딱 두 번만 더 가보고 결정하자.
진심이었다. 힘들고 지쳤다. 물이 무서운 것도 무서운 거지만, 나는 원래 수영에는 인연이 없나 보다 싶었다. 그 대신, 아직 한주가 지나지 않았으니, 목, 금, 딱 이틀만 더 가보고, 강사님이 말씀하시는 대로만 해보자, 마음먹었다. 그래도 안 되면, 그땐 어쩔 수 없는 거다.
바로 그날, 나는 자유형을 했다. 25m를 돌았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사실 수영은, 힘을 빼고 해야 하는 거였으니까. 빠질까 봐, 물 먹을까 봐, 숨을 못 쉴까 봐 몸에 힘을 잔뜩 주고 했던 게 그동안의 패착이었다. 어라? 이게 되네? 싶었다. 물을 먹지 않고 호흡도 했다. 팔, 다리, 몸통을 따로 세분해서 연습하고, 각 부위의 감각을 느껴보려고 했더니, 어디가 잘못된지도 알겠더라.
와, 40년 만에 내가 자유형을 하네.
다음 날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아보러 갔다. 안정된 실력이 없는 나니까, 오늘은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기대를 버리고, 물에 몸을 맡겨 보기로 했다. 무리하지 않고,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배운 대로만 해보자. 그렇게 이틀 연속, 나는 자유형을 했다. 25m를 몇 번이고 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우연인지 뭐였는지, '운동회'라는 걸 한다고 했다. 갑자기 가위바위보로 편을 가르고, 계영을 하는 거였다. 수영 세계의 가족오락관 같은 느낌이랄까. 쌩초보인 내가, 어느 한 팀에 속해, 민폐가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앞섰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여기서 가장 못하는 사람이란 걸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아는데,
설령 느리고 못하는 게 무슨 상관이람.
나는 그날, 내 옆 레인의 평영 선배를 따돌리고, 먼저 반대편에 도착했다. 내 인생에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일. 그렇게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허리께 올라오는 수영장에서 일어섰다. 상쾌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저께, 내가 수영을 그만 포기해 버렸다면, 오늘의 이 기분을 알 수 있었을까. 영원히 '저는 원래 물을 무서워해서요'라고 변명을 둘러대며, 물가에 가는 걸 저어했겠지.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에메랄드 빛 바다 앞에 발목을 담그고 서서, '이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수영 좀 배울걸'이라며, 발길을 돌렸겠지. 평생 내가 품을 수도 있었던 푸르고, 맑고, 시원한 물결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눈을 감았겠지.
정말 오랜만에 자유함을 느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배우려고 도전했기 때문에,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나는 예전처럼 쉽게 그만두지 않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견뎌내느라 애썼다. 수고했고, 버텨냈다. 마흔이 되어서야,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엉성하고 서투르지만, 수영의 즐거움이 이런 거였구나,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뒤늦게나마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 물살을 가르는 감각과, 물 위에 떠있을 때 온몸을 흐르는 매끄러운 물의 편안함도 알게 되었다. 이틀 전 그만 포기했더라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그런 기쁨을.
자유형이 처음 되던 날, 수업이 끝나고 강사님께서 "아직 이르긴 하는데, 오리발 준비해서 와 보세요. 같은 속도로 연습하면 좋으니까요."라고 해주신 덕에, 그날 밤엔 설레 잠도 못 잤다.
그리고 오늘, 배영을 배웠다. 내가, 배영을 배우다니. 접영을 배우고, 평영을 배울 때도 이런 느낌이겠지. 도전하지 않았으면, 풀이 죽어 중도에 포기했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기쁨과 성취감, 그리고 재미.
이제 그런 도전과 재미가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흥분되고 설레는지 표현하기 쉽지 않다. 더 이상 물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다만, 더 이상 무서워서 중간에 포기하는 내가 아니라는 건 진짜라는 거, 그래서 무려 40년을 무서워만 하다가, 두려운 것에도 도전해서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이 있는 나라는 걸 알게 된 마흔. 바로 그런 '긍정의 나'를 발견한 이 모든 과정이, 실로 중요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