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취향 전시회
Part. 1.
음식을 굳이 짜게 먹지 않는 사람에게
"넌 이 싱거운 걸 무슨 맛으로 먹냐?"
"네 입맛은 틀렸어" 라고 할 수 없다.
"건강을 위해 너무 짜게 먹지 마"라고 권유는 해볼 수 있어도 이렇다 할 근거도, 이유도 없이 '싱거운 건 틀렸으니 더 짜게 먹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원하는만큼 내 접시에 덜어 소금을 더 치면 그만 아니겠는가. 소금으로 더 짜게 간을 하는 당신에게 아무도 뭐라하지 않듯, 소금을 치지 않는 사람에게 '왜 소금도 안 치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너의 취향' 그리고 '나의 취향'이므로.
Part. 2.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거기까지 가서 여길 안 갔다면, 거길 갔다온게 아니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게 무슨 해괴한
정신승리 우월감의 표현인가 아니면
투어가이드의 리더십인가 그도 아니면,
같이 가지 않은 여행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랖인가.
핫스팟 인증샷이 없으면, 내게는 너무나 좋았던 여행도, 여행도 아닌게 되는건가.
내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가보라, 해봐라, 추천할 수는 있어도 재단할 순 없다.
취향이란 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다. 그래서 taste, 입맛이라고, preference 선호라고 한다. 입맛이 모두 다른 것처럼, 선호하는 게 조금씩 모두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단맛이 더 좋은 사람, 신맛이 더 좋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매운 걸 못 먹는 사람,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Part 3.
멋드러진 에펠탑 사진을 찍지 않았다 해서 에펠탑을 눈에 담지 않은건 아니다. 심지어 에펠탑에 가지 않았던 여행이라고 해서, 파리를 즐기지 않은 게 아니다.
소금을 하나도 넣지 않는 곰국과, 소금을 세 스푼이나 넣은 곰국을 놓고, '옳은 곰국', '틀린 곰국' 논쟁을 하진 않잖아.
에펠탑이 있던 파리 여행, 에펠탑을 거치지 않았던 파리 여행, 모두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소중하다.
어떤 경우엔 후자가 더 소중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누군가에겐 파리가 생애 최악의 여행지였을 수 있다. 가보지도 않았지만, 영원히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일 수도 있다.
Part 4.
그러니 모두가 똑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짠맛, 단맛, 신맛, 쓴맛, 알아서 즐겼으면 좋겠다. 그냥 소금을 두번 치든, 네번 치든, 열번 치든,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지금 내 마음이 쏠리는 이 방향, 이 느낌이, 이 감정이, 네 마음이 쏠리는 느낌, 감정이나 방향보다 더 옳고, 맞고, 더 고귀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굳이, 타인의 취향까지 재단하지 않는, 유연함과 너그러움, 다양함과 존중이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모두가 검은 옷을 입은 겨울 한복판의 한국이, 때론 숨막히게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