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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의 청춘 Dec 11. 2018

햄버거 아저씨께

긴 편지 잘 읽어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햄버거를 던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요. 저는 짐작도 할수 없을 것 같아 아프고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도 없지만.. 대체,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요. 울분이 치밀어오르고 분노가 끓어올라 무언가를 부수거나 집어던지지 않는 이상 해결이 안될 것 같은 답답하고 억울한 느낌이셨을까요. 괴로우셨겠습니다.


아저씨, 울산 어디 동네에서도 또 햄버거를 던진 분이 계시대요. 완전 동지! 그분도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겠냐고 울분을 토하고 싶으시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분도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그랬겠어요. 암요. 잘 압니다.


그런데요 아저씨, 어디 다른 식당에서는요, 장애인이 만든 음식이니 먹을 수 없다고 새로운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신 분도 계셨대요. 와.. 뭐 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장애인 셰프분이 요리를 꽤 잘하시니까 거기서 일하시는 걸텐데. 무슨 음식에 독이라도 탔을거라고 두려워하셨던 걸까요. 트라우마가 있으셨을라나? 그렇게까지 먹기 싫었다면,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제가 아직 덜 살아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참 헤아리기 힘든 마음들인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네요. 죄송해요 아저씨. 충분히 공감해 드릴 수가 없어요. 아마도 제 공감 능력이 한참 떨어지나봐요.




아저씨, 참, 근데요, 아저씨도 언젠가 대한항공의 갑질, 조선일보 손녀의 막말, 위디스크 회장의 손찌검과 폭행에 대해 들어보셨지요? 그분들도 아저씨처럼, 아마 울분이 치밀어오르고 분노가 끓어올라 뭘 막 부수거나 소리를 지르고, 뭐라도 잡아서 집어던지지 않는 이상 해결이 안될 것 같은 답답하고 억울한 느낌이셨을까요. 와, 진짜 다들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셨잖아요, 전부... 대단해요. 진짜 유튜브 시대의 진정한 인플루언서들 같아요. 부러워.


조선일보 손녀딸은 매번 자길 '모시러 오는' 기사에게 '아저씨가 죽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고 하지요. 10살이라고 아저씨도 분명 들으셨죠? 너무 슬펐어요. 그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무엇을 보고 배웠길래, 가슴에 울분만 남았을까요. 누군가가 죽길 바라는 마음이 어디 편하고 성한 마음일까요. 그 정도의 분노라면 아마 쉽게 지워지지도 않을 것 같아요. 가슴에 독만 얹고 사는 것 같을테죠? 대체 이 아이에겐 무슨 감정만 남아있는 걸까요. 아저씨는 아시나요?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욕했던 거 같아요. 요즘 사회가 마땅히 요구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했죠. 끝까지 바른 자세로 책임을 질지 안 질지는 절대로 모르는 일이지만, 어찌됐건 그렇게 됐어요. 뭐, 별로 달라질 건 없겠지만요.


아마 이런 일이 앞으로 더 자주 있으면 있었지 줄어들진 않을 거 같아요. 전 그만큼, 별로 희망이 없거든요. 그렇게 보면 저도 불쌍하죠, 아저씨?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꼭이요.


갑자기 되게 궁금해요. 아저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아저씨에게 먹다 남은 밥그릇을 던지거나, 손찌검을 하시던 분들이셨나요? 차려준 음식을 빨리 안 먹는다고 밥상을 뒤엎고 숟가락으로 머리라도 때리셨나요? 섣부른 추측이지만 정말로 만약 그랬다면, 상처가 크셨을거 같아요. 어떡하지...죄송합니다. 아픈 부분을 건드린건가요?


아, 아! 그런 분들은 아니셨나요? 그럼 아저씨는 햄버거를 던지는 걸 어디서 보고 배우셨나요? 아님 뭐라도 던져야겠는데 마침 손에 그거 밖에 없었나요? 어떻게서든 내가 화가 났다는 걸 막 보여주고 싶은데 성격은 급하고, 막 답답하고 미쳐버릴 거 같은, 뭐 그런 느낌이었나요? 아님, 직원을 때리기라도 해서 분을 풀어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혹시 마음이 아파서 대신 물렁한 햄버거를 던지셨던 건가요? 아 그렇담... 많이 신경 쓰셨는데, 안타깝네요.




아저씨, 아저씨, 제가 그자리에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그래도 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셨을거 같아요. 맞죠? 히히, 그래도 제가 이렇게 아저씨를 헤아려보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공감능력이 1도 없는거 같진 않네요. 그쵸?


음..아저씨한테도 이제 나름 '햄버거 아저씨'같은 별명도 생길거고 재밌네요 인생. 그렇죠?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셨어요. 이렇게 개인 브랜드가 중요한 세상에. 뭐 굳이 비교하자면 대한항공은 땅콩항공이라고 별명이 생겼고, 조선일보 손녀딸에겐 이제 '아저씨 죽었으면 좋겠어'가 평생 따라다니겠죠? 위디스크 회장은 '괴물', '악마'라고들 부르죠? 그러고 보면 아저씨는 햄버거 아저씨... 그래도 뭐 어감이 그렇게 나쁘진 않네요. 에이, 괴물보다는 낫잖아요?




아저씨 그거 아세요?


오늘이 세계 인권의 날이었어요. 인권이라는 건, '응당 마땅한 것들을 사람으로서 요구할 권리'를 말하겠지요. 인권은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구할 수 있는, 보호 받을 수 있는 어떤 걸 말한대요.


아저씨가 던진 햄버거를 맞은 그 직원에게도, 10살 내기 어린 아이에게 쌍욕을 들으며 운전한 기사에게도, 무릎을 꿇고 뺨을 맞는 주차요원에게도, 하늘 위에서 온갖 치욕을 겪으며 고생하는 승무원들에게도 인권이 있어요.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맞는 의사, 간호사에게도 인권이란게 있고요, 저기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에게도 보호받을 권리와, 생명을 지킬 권리같은게 전부 다 있어요 아저씨. 다요. 심지어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어서, 수갑 찬 손도 가려주고, 얼굴도 모자이크 해주고 그러잖아요.


되게 쉽죠? 그렇게 보면? 당연히....? 아저씨에게도 인권이 있어요! 와우, 신난다.


심지어 햄버거를 던진 아저씨에게도 인권이라는 게 있다구요. 그런데요, 아저씨. 잘 보면 아저씨는 아저씨의 권리를 위해 햄버거라도 던지셨잖아요. 아저씨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햄버거를 던지셨지요? 그럼 그 햄버거를 맞은 직원도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아저씨에게 케찹이라도 뿌렸어야 했을까요? 갑자기 다시 빡치시죠. 죄송해요. 근데 잘 생각해 보면, 그 직원이 나한테 케챱이라도 뿌렸으면 어쭈 이것봐라, 너 죽을래? 하고 진짜 때리기라도 하셨을거 같아요. 어불성설이죠? 내 돈 받고 서비스 하는 사람이 나한테 뎀벼? 이런 생각이 진짜 말도 안되는 거 같죠.


그런데 이게 왜 말이 안되요? 그 사람도 권리라는 게 있는데. 그건 아시잖아요?


아......? 아저씨는 돈을 내셨으니까요? 그렇죠. 그렇네요. 아저씨는 돈을 내셨어요.


그런데 아저씨, 혹시 돈을 냈다고해서 햄버거를 던지신거면요, 아저씨는 너무 큰 기대를 하신거 같아요. 돈을 낸만큼의 서비스라는 상식이란 게 있어요. 물론 100원짜리 아이스크림 먹으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똥이 나와도 아무 말하지 말란 소리냐, 1백만원 짜리 소고기 먹으면 식당을 뒤집어 엎어도 된단 말이냐, 그런건 아니에요. 내가 지금 햄버거값 냈다고 무시하냐, 그러시면, 이건 또 자격지심 얘길 풀어야 되요. 에이, 아니죠. 아니라고요. 아저씨.


근데요, 만약 이게 말이 되려면요, 조선일보 손녀딸은 어마어마하게 부자고 돈을 많이 내고 기사까지 고용했으니, 기사 얼굴에 침을 뱉든, 기사를 때리든, 폭언을 해도 된다는 말이잖아요? 말도 안되는게 말이 되야 되잖아요. 아저씨가 사 드신 햄버거보다 적어도 100배는 비싼 월급을 기사에게 주었을테니까요. 그럼 조선일보 손녀딸이 기사에게 햄버거보다 더 비싼 걸 집어던져도 되게요? 근데 그럼 또 욕하실거잖아요. 못 배웠다고, 그 부모의 그 자식이라고요.


돈 많이 줬으니 갑질해도 되고, 돈 적게 줬으니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건 아니에요. 오해는 마세요. 에이, 또 화내실려고 그런다.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꼭 돈 가지고 목소리 달라지는 사람들이 명품 매장에서는 주눅들어 있잖아요. 없어보이게. 살수 있으면 꽤 떵떵거리고 못 사면 별말 안하더라고요?


그게 아니면, 전 떡볶이집 가면 갑자기 왕이 되나요? 햄버거 매장가서는 떵떵거려도 되나요? 딱 들어도 너무 졸부같고 한심하죠? 그래요. 맞아요 아저씨. 이런건 진짜 한심한 거에요.





아저씨. 누구나 같은 사안에 대해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와 목소리를 갖는 건 같아야 해요. 돈 받는 걸로 마땅한 '서비스'를 받아야 된다 치면요 아저씨, 세상 돈 주는 모든 사람은 '갑'이어야 하고 돈 받는 모두는 '을'이어야 해요. 보통 계약서라는게 그런 식으로 쓰여지긴 하죠. 배우신 분이니 아실테지만..


그런데요 아저씨, 그래서 대한항공, 위디스크, 조현아,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다 갑질한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니 되게 웃기죠? '내가 너한테 돈 주잖아'라는 걸로 그런거라구요. 되게 심플한데.. 어렵나? 아니죠? 그래서 돈 주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갑질하는 세상이에요. 그런거 같아요. 아직도 여의도 불꽃놀이처럼 여기저기서 터질게 아마 겁나게 많을거에요. 팡팡팡팡! 팡팡! 와하하. 신난다.




근데 그거 아세요? 그럼 아저씨도, 아저씨 아들도, 아저씨 딸도요, 월급받는 사장님께서 땅콩 가져와라, 내 구두 핥아라, 내 침 먹어라, 너 싫으니 죽어라, 그런 거 할때, 다 참으셔야 되요. 그러실 수 있죠? 나이드신 분인데 역지사지 정도는 아시잖아요. 돈 받을려면 더러워도 해야죠 그게 세상이치인데. 그런거 잘 알고 강인하게 자라신 분이니까, 햄버거 던질 힘과 용기도 있으신거 아니에요? 어? 전 그렇게 생각했는데. 울분이 많으신 분이면 그동안 얼마나 우여곡절도 많으셨겠어요.


꼭 참으셔야 되요. 1,000만원 버실려면요,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셔야 되요. 직장인 평균 월급이 288만원이라는데, 거의 700만원이나 더 주는데, 그것도 못 하세요? 사장님이 짜장면에 짬뽕을 아저씨 머리 위에 들이 부으셔도 와하하하 재밌다, 할 정도의 배포는 있으셔야 해요, 아저씨. 왜요, 햄버거 값도 아니고, 200만원, 300만원 막 주잖아요. 얼마나 고마워요. 하늘같으신 분들이고 좋으신 분들.. 어디 감히 올려보지도 못할 그런 분들... 그분들이 아저씨 돈 주시는 대신에, 아저씨도 그분들에게 '서비스'하셔야 되는 거에요. 햄버거값 주는게 아니잖아요. 더한것도 견뎌야죠! 그분들은 그렇게나 많이 주시는데 무슨 서비스인들 못하겠어요!! 그렇죠!! 그게 아저씨가 생각하는 '돈'이 오고 가는 '서비스'에 대한 '댓가'라고 생각하신다면요.




어느날 아저씨 큰 아들이 집에 와서, 우리 사장이 회식자리에서, 내가 고기를 빨리 못 구웠다고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하면서 막 울어요. 그럼요 아저씨, "그 월급 받으면서 그것도 못 참냐"라고 하셔야 해요. 다음날 따님이 집에 와서 우리 상무님이 "보고서를 이딴 식으로 쓰냐, 월급 주는게 아깝다, 너는 머리에 똥이 들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결제 서류를 집어 던졌다고 해도 "딸아, 세상에 돈 벌려면 그보다 더한 일도 참아야 한다"라고 우직하게 말씀하셔야 해요. 꼭이요.


혹한기에 군대간 막내 아들이, 재수없게 공관병이 되는 바람에, 장군들 개인 심부름 하고, 사모에게 뺨 맞고, 추운 겨울에 김장독 파주고 손이 다 퉁퉁 불어서 힘들다고 전화와도, "니가 을이고 장군님이 갑이니까 참아라"고 꼭 말씀해 주셔야 해요. 그게 아저씨 생활 신조잖아요. 맞죠?


아저씨 고생 많으시니까, 집안 살림에 보태신다고 아주머니께서 학습지 교사로 일하시는데, 옆동 새댁이 "아니 어디 아줌마가 와서, 발음을 그딴 식으로 해서 우리 귀한 아들 가르치겠냐"고 소리를 지르고, 엘리베이터 고장나서 1분 늦었다고 "아줌마, 꼴보기 싫으니까 꺼져"라면서 반말하고 소금을 뿌리고 막 그래도, 꾹 참으셔야 되요. 그러실 수 있죠? 세상이 원래 그런거니까요. 아저씨 생각 다 맞혔죠! 장하죠 저! 신난다. 와.

 



근데요, 아저씨,


우리 솔직해져 봐요. 내 목숨보다 귀한 큰아들, 작은 아들이 막 서럽다고 울어요. 금쪽같은 딸래미가 회사 그만두고 싶대요. 나란 놈 잘못 만난 우리 마누라는 이 나이에 학습지교사한다고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어요. 막 이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정말 너무 너무 싫지 않아요? 가서 막 가족들 대신해서 햄버거 던지고 싶고 그렇죠. 아무리 생각해도 울분이 막 치밀어 오르잖아요? 막 가서 멱살 잡고 싶고, 때리고 싶고, 불지르고 싶고, 막 그럴 정도로 화가 나죠? 아저씨가 일약스타로 햄버거 아저씨 별명 얻는 거보다, 진짜 더한 별명도 지어줄 정도로 괴물같고, 악마같고 나쁜 놈들 맞죠?


그래요, 아저씨.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근데요, 아저씨가 솔직하게 얘기해주셔서 저도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제가 얼마전에 아이폰X를 샀거든요? 근데 액정이 두번이나 깨졌어요. 너무 잘 깨지는거 같기도 해요. 그 전에도 잘 깨졌었어요. 근데 비싸도 너무 비싸요. 어떻게 서비스를 이렇게 하죠? 막 100만원을 넘게 썼는데 막 깨지고 잘 고쳐주지도 않아요. 보험이라고 들었는데, 다 보상해주는 것도 아니에요. 너무 너무 화가나요. 아저씨 햄버거보단 비싸니까, 제 수준엔 엄청 큰 돈 들인거니까 막 사과라도 1톤 트럭으로 사서 애플 본사에 가서 막 쏟아 붓고 싶어요! 햄버거는 애플이랑 안 어울리니까요.


근데요, 떨어뜨린건 제 잘못이에요. 제가 떨어뜨려서 여러번 고쳤는데도, 알고도 산거구요. 비싼거 다 알면서 샀어요, 그냥 좋아서요. 근데 제가 아저씨보다 200배는 비싸게 아이폰을 샀다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막 썩은 사과를 궤짝으로 사서 애플 본사 로비에 쫙 들이부으면, 애플 직원들은 뭐가 되요. 그 사람들이 억지로 집어던져서 깨진 것도 아닌 걸요. 어떻게 생각하면, 분노도 치밀고요, 저보다 억울한 사람도 없는거 같지만, 그렇다고 사과를 던지는 건, 꼭 그렇게 해야 될 일은 아닌거 같아요. 그쵸...? 유명세는 반짝 타겠지만 저한테 남는게 뭐에요? "또라이?" 아님 "전과자?", 아님 "사과 테러범?".... 매력이 없네, 그쵸?


옛말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전 가끔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말이 돌고 돌겠죠? 천원짜리 붕어빵 파시는 분이 저보다 하찮은 분도 아니고, 200만원짜리 아이패드를 만든다고 해서 애플 직원이 저보다 훌륭한 것도 아니잖아요? 반대로 생각해봐도 그래요. 200만원을 내고 물건을 산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2천원짜리 고무장갑을 샀다고 해서, 그런 순간에 내가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쵸 아저씨? 200만원이나 내는데 나를 우습게 보냐, 2천원짜리 산다고 나를 우습게 보냐, 라는 생각은요... 진짜 재밌죠. 결국 생각이 똑같아요. 그냥 자격지심이에요. 뭐, 별 다른 말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냥 그런거에요 아저씨. 그냥 나의 자격지심이 나를 이렇게 흉하게 만드는구나, 그럼 되는 거 같아요.




저는요, 세상에 정해진 모든 어떤 날들이요. 그게 엄청 중요해서 생긴거라고 생각해요. 없어서 생긴거고요. 무슨 말이냐면요, '평등의 날'은 '평등'이라는 게 엄청 중요한건데, 불평등이 심하니까 생긴거구요, '인권의 날'은 '인권'이라는 게 엄청 의미있는 건데, 그런 인권이 쉽게 짓밟히니까, '우리 그러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만든거 같거든요. 에이, 블랙데이 이런거 말고요.


그래서 아저씨께 손수 편지를 써보고 싶었어요. 너무 길었죠. 근데 저는 울분이 터져나올거 같으면, 글을 써요. 글을 쓰다 보면 생각도 정리되고, 제가 어떤 잘못이 있는지도 잘 보여요. 눈으로 읽히니까, '오타'처럼 그게 눈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아저씨, 살면서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요. 그 직원이 왜 '빨리 안 가져갔냐고' 말한 것도 아저씨를 화나게 한 실수였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근데요, 저는 지금 말레이시아에 있거든요. 여기서는요, 그보다 더한 일도 훨씬 훨씬 많아요. 모니터에 제 번호가 안 뜬적도 있고요, 다른게 잘못 나온 적도 많구요, 번호표가 종이가 없어서 순서가 뒤죽박죽 되는 일도 많아요. 에이, 그뿐인 줄 아세요? 내 햄버거가 다른 테이블에 가 있기도 하고요, 20-30분쯤 주문을 까먹는 경우도 있어요. 기껏 포장해왔는데, 메뉴가 빠져있는 경우도 많고요, 배달이 된다고 해놓고 1시간 30분 후에 전화와서 재료가 떨어졌다고 배달 못해준다고 해서 밤새 굶은 적도 있어요.


근데요, 제가 스마트폰보다가 제 순서 번호를 못 본적도 있고요, 잠깐 전화한다고 밖에 나갔다가 제가 집에 간줄 안적도 있었어요. 웃기죠? 메뉴가 제대로 들어있는데도, 이건 왜 안 넣어줬냐면서 따지려다가 얼굴 빨개진적도 많고요, 저보다 먼저 온 다른 사람이 똑같이 시킨 메뉴를 보고 원래 저게 내껀데, 나보다 먼저 주나보다 싶어서 화를 낼락말락한적도 있어요. 근데 알고보니 그런게 아니었더라고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살다보면 정말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많고, 피차 지친 하루에 짜증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꼭 그런 일은 예민하고 답답하고 그럴 때만 더 자주 생기는거 같아요. 그쵸?


근데요 아저씨, 그렇다고 햄버거를 던지면 안되요. 그냥 사람과 사람간의 일이잖아요. 인권과 인권을 가진 둘이 만났잖아요. 돈을 내는게 내 권리를 주장할 마법과 같은 부적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거 같아요. 가도 너무 간거에요. 이게 말이 되어 버리면요, 제일 높은 월급 주고, 제일 비싼 물건 사는 사람은 '신'이어야 해요. 비행기 가졌다고 땅콩 가져오라는 사람이나, 기사 썼다고 죽으라는 사람이나, 월급 준다고 내 가래침 먹으라는 사람이 다 '신'이에요? 꼴들을 잘 살펴보면 아저씨 보다 잘난거 하나 없잖아요. 오죽하면 세상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부모 욕'하겠어요? 못 배웠다고. 한심하다고요. 근데 못 배웠고, 한심한데, 돈 가지고, '갑'이라고 저러니까 욕 진짜 바가지로 먹잖아요. 너무 추하잖아요. 그런게 진짜 '신'이에요? 그냥 '병신'아니고요? 돈 가지고 서열 매기면, 전 워런 버핏 똥이라도 먹어야 되잖아요. 안 그래요?



아저씨가 햄버거 던진 사람도 알고 보면, 하루 종일 많은 손님들에게 시달렸을 거에요. 그 사람도 뼈빠지게 일하면서 시급도 잘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걸수도 있잖아요. 아저씨 아들, 딸처럼요. 그리고 결국 그분도, 사장에게 월급 받으면서, 그 돈으로 아저씨한테 서비스를 대신 해주는 사람일 뿐이에요. 아저씨보다 낮은, 아저씨보다 높은, 그런 게 아닌, 각자의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요. 차례를 매긴 갑,을 이 아니라요, 그냥 갑이라는 사람, 을이라는 사람인거에요 .


그렇게 생각하면, 서로 그렇게까지 화낼 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아저씨, 이제 그러지 마세요. 오죽하면 안 건드린다는 아저씨 부모님 욕듣고, 자식들까지 욕 먹어야 되잖아요. 조선일보 사장은 뭔 죄로, 손녀 때문에 욕먹어요. 그냥 다 그렇고 그럴거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아저씨 예쁜 아들, 딸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게 하고 싶으신건 아니죠? 맞죠?


그럼, 아저씨 자식이 예쁜 만큼, 아저씨가 던진 햄버거 맞은 직원도, 남의 집 아들, 딸, 귀한 자식인데, 남의 집 자식한테 굳이 그래서 뭐해요. 그집 자식이 오늘 매장에서 손님한테 햄버거 맞고 왔다고 집에 와서 펑펑 울면, 아저씨 동년배의 그집 부모님 마음은 뭐가 되요, 에이.




아저씨, 그냥 우리 적당히 살아요. 그리고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럼 논리있게, 합리적으로, 차분하게, 잘 풀면 되요. 진짜 뻥 안치고요, 30초만 다시 생각해보면, 서로 오해가 있거나, 아니면 소름끼치게 내 잘못인 경우도 많거든요. 30초 생각했는데, 제 말이 맞으면, 아저씨는 이제 '품위'를 지키시게 되는 거구요, 30초 아니라 3분을, 3일을 생각해도 아닌 거 같잖아요? 그럼 이미 '품위'는 지켰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서요, 정당하게 아저씨 권리를 얘기하고, 정당하게, 품위있게 찾으면 되는거에요. 빵 던지지 말구요. 에이.


요즘 같은 세상에요, 짜증난다고 막 미친듯이 울분을 폭발시키고 막 그럼 진짜 되게 없어 보여요. 그동안 어렵게 어렵게 고생하면서 지켰던 품위, 품격 이런거 다 시궁창으로 가는거구요. 누가 동영상이라도 찍으면, 내 이미지는 그냥 한 순간에 저 세상 가는거에요. 다들 화질은 좀 좋아요? 미쳤지 아주. 인스타 라이브 하는 사람도 있을 걸요? 그럼 바로 실검순위 막 오르시고 그래요. 아우 남사스러.


그리고요,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다보니깐, 아저씨 진짜 순식간에 '갑분분'되요. 나 막 멀쩡하게 잘 살아 왔는데 갑자기 분노조절장애 있는 사람 취급 받는다니까요? 그리구 사실 품위도, 품격도 없어봐요. 그럼 그게 '사람'은 아니잖아요. 사람이니까 '인권'도 있는건데, '권리도 말 못할' 짐승 취급 받으면 너무 속상하잖아요. 그쵸?




아저씨,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손 시렵고, 마음도 시려운 날들인거 같아요. 근데, 아무리 마음이 시려워도, 우리 너무 서늘하진 말아요. 햄버거 던졌다고, 미친듯이 열불 난다고 따뜻해지는 세상도 아니잖아요.


오늘이 세계 인권의 날이었대요. 우리가 진짜 뭐 별 햄버거 때문에 인권을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 주위의 불우한 이웃이나 차별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소수자들, 전쟁터의 사람들, 최소한의 권리도, 목숨을 부지할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는 날인지, 우리 자기 전에 꼭 한번 고민해 봐요. 전 아저씨 때문에 너무 피곤해졌어요. 편지 쓰다가 배가 고파지니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네요.


잘 자요 아저씨.


별 햄버거 같은 일로 고생많으셨어요. 그러니까 이제 별것도 아닌 걸로 #갑질 하고 그러진 마세요. 꼭이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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