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아 Sep 09. 2019

<3화>드디어 댄스학원에 입성하다

은근슬쩍, 비겁하고 소심하게

호기롭게 줌바 재수강 취소 버튼을 누르고 나니, 이제 어쩌나 싶었다. 댄스학원에 등록을 하러 가야 하는데, 학원 문을 열 자신이 없다. 내가 배우겠다고 했을 때 어이없음을 친절한 표정으로 감추려고 애쓸 직원의 표정이 막 상상되는 것이다.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3개월(계획이었던 6개월보다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줌바로 워밍업까지 했는데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뭔가 마음을 먹으면 그와 관련된 상황을 이 각도 저 각도로 살피고 계산에 넣지 못한 변수가 있지 않나 망설이면서 시작을 미루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도중에 관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끝까지 가는 편이다. 


끙끙 앓다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딸을 팔아먹어야지! 오후 4시쯤 댄스학원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직원이 친절한 하이톤으로 맞는다.

"저, 상담 좀...."


한 면이 통유리로 돼 있는 큰 룸 안에서는 입시반 중고등학생들이 개인 연습에 한창이었다. 나는 짐짓 학부모 모드로, 벌렁대는 심장을 감추고 무심한 듯 상담을 했다. 


"저, 딸이 중3인데, 전공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취미반 초급으로 할 만한 클래스가 있나요?" 

이미 홈페이지에서 수없이 확인한 시간표를 처음 보는 것처럼 들여다보며 물었다.


"네~처음 시작하는 거면 <K-pop 댄스> 클래스 많이 하세요~. 주 3회이고 월 10만 원입니다!" 

한참 엄마 포지셔닝으로 질문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척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딸아이랑 상의하고 올게요! 다른 학원 스케줄이랑도 좀 맞춰봐야 되니까..."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다 몸을 돌리며 슬쩍 물었다. 

"저같이 나이 많은 분들도 있나요?"

"어머~~ 그럼요. 50대 남자분도 있으신데요?!" 

완벽한 친절로 무장한 통통한 직원은 목소리를 다시 한 옥타브 높이며 대답했다.  


(정말? 괜히 쫄았나?)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나요?

완전 초보자 코스프레를 하며 물었다.

"먼저 1회 무료 수업 들어보고 결정하셔도 돼요!"

"아, 그래요? 그럼 한 번 해봐도 될까요?"

"네! 이따 따님분이랑 같이 오세요~!"

(응, 미안. 딸은 안 와.)


댄스학원 문을 닫고 나오는데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일단 첫 관문은 뚫었다! 룰루랄라 옷을 갈아입고 저녁 7시가 되기만 기다리다 다시 학원으로 갔다. 직원은 반갑게 나를 맞았지만 내가 체험 수업 후에 등록할 가능성을 높게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춤 선생님께 "이 분이 오늘 한 번 수업에 들어가 보시고 등록 결정하신다고 해요",라고 말할 때 느낌이 그랬다. 


그런데 직원의 인도로 수업을 받을 룸에 들어간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강생이 너무 적었던 탓이다. 20대 남녀 한 명씩, 여자 중학생 1명 끝. 내가 상상한 장면은 이게 아닌데... 각 반마다 인원이 많지 않다는 건 영상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7~12명쯤 되는 수강생들 뒤에 숨어 적응기를 가져야지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6평 남짓한 작은 룸에 나까지 4명이라니. 아무 데도 숨을 곳이 없지 않은가!


전면과 측면 벽을 빈틈없이 채운 거울은 '경륜이 묻어나는' 나의 얼굴과 나잇살을 숨길 수 없는 몸과 엉거주춤한 자세를 빈틈없이 비추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혼자 못 따라 하면 모두에게 다 보여 호흡을 망친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몇 명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 따라 하고 내가 근처도 못 가고 있으면 고민될 것이다. 헤매고 있는 걸 빤히 다 봤는데 못 본 척 진도를 나갈 것인가, 친절하게 내 기준으로 언제까지 동작을 반복해 줄 것인가. 젊은 수강생들에게 <아줌마=뻔뻔한 민폐 캐릭터>(그냥 비슷한 사람들 많은 문화센터나 가지 왜 여기 와서...)라는 선입견을 강화시키는 것은 죽도록 싫은데. 


그렇게나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놨음에도 불구하고 각오한 것보다 더 험난하게, 나의 댄스학원 첫 수업은 시작되었다. 


참,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는 6개월 차에 들어섰는데 그동안 50대 아저씨를 목격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친절과 하이톤 목소리로 무장한 그 직원은 그만뒀는지 2개월 전부터 보이질 않는다. 하긴 나도 우리 딸이 합류할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쌤쌤으로 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화>일단 워밍업이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