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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Sep 30. 2019

<5화> 요즘것들의 댄스 클래스

스마트폰과 유튜브 시대의 춤 배우기

제목을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좀 꼰대스럽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네? 지난 몇 개월간 기죽고 눈치 보느라 움츠러들었던 내 등허리가 괜히 펴지는 것도 같고. 하, 진짜 꼰대인가 보다. 


일단 요즘 취미반 K-pop 댄스 클래스의 상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주 3회, 혹은 2회 1시간씩. 초급자들은 대개 이쪽 반으로 온다. 진지하게 춰보겠다는 사람들이 찾는 '스트릿반'은 걸스힙합, 롹킹, 재즈댄스, 얼반 등등 춤 장르별로 있는데 대부분의 학원에서 주 1회 1시간 반~2시간으로 진행한다.  


케이팝 반의 문제는 <일주일에 한 곡>라는 대전제다. 두세 번 수업으로 곡 하나를 떼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지? 그러나 나는 "이렇게 모두들 헤매고 있으니, 이번 곡은 2주에 걸쳐서 꼼꼼히 하죠"라고 말하지 못한다. 아무리 제대로 소화 못하고 그 주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버리고 다른 곡을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속도다. 그리고 나는 이 시대 댄스의 중심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세대니까 입은 좀 닫아주는 것이 현명하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어차피 이번 주에는 마땅히 할만한 곡도 없는데, 기본기(웨이브나 아이솔레이션, 스텝 같은 기초) 연습을 하는 것이 어때요? 제대로 할 줄 아는 수강생이 없잖아요."라고 해 본 적은 있는데 까였다. 선생님 왈 기본기만 하면 힘들고 재미없다며 다음 시간에 출석율이 확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본기는 본격 수업 전에 잠깐 할 때도 있고 건너뛰기도 한다.


10여 년 전, 그러니까 K-pop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 케이팝 댄스는 칼군무가 미덕이고 트레이드 마크였다. 멤버 전체가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딱딱 맞춰서 추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경탄스러운가. 원더걸스의 <Nobody>, 인피니트의 <내꺼하자>....중독적인 후렴구를 가진 후크송들의 유행과 함께 칼군무는 케이팝의 명성과 인기를 드높이는 요인이었다. 후크송과 칼군무, 이게 맞아떨어지려면 안무가 너무 복잡해서는 안된다. 단순하면서 딱딱 떨어지는 동작이어야 맞추기가 쉽다.  


그런데 세월과 함께 케이팝 음악은 훨씬 더 복잡 세련돼졌다. 안무도 더 이상 단순하면서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 없는지 계속 더 박자를 잘게 쪼개 동작을 넣었다. 많은 멤버 수를 이용해 어떤 형상을 이루거나(BTS의 Fake Love 처음과 마지막 부분을 생각해 보면 쉽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알랑가ㅎㅎ) 순차적으로 다른 동작을 한다던가... 혼자서는 구현할 수 없거나 어떤 멤버를 따라 해야 할지 모르는 부분도 있다.  


다시 말해 한 곡 전체의 안무를 '완곡' 하는 것은 힘들다. 시간도 부족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 곡의 1절 혹은 더 짧은 킬링 파트 정도를 배운다. 약 40초~1분 10초 분량? 애개....? 근데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동작들이 들어가 있는지 정신이 다 혼미하다. 펜티엄급(586급) 시대의 두뇌 처리장치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흑흑, 예전엔 펜티엄이라 하면 최신최강의 상징이었는데) 제일 힘든 부분이다. 


그리고 선곡도, 무조건 최최최신곡 우선이다. 아이돌의 신곡이 나오면 공식처럼 일주일쯤 뒤에 유튜브에 '안무 연습 영상'이 공개된다. 멤버들이 연습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원테이크로 전체 안무를 보여주는 영상이다. 그러면 그것을 소스로 선생님들이 안무를 따서 수업을 한다.  


(선생님)  여러분, 다음 주에 뭐 할까요? 뭐 할만한 거 있어요? (정말 놀랄만한 공통점으로, 20대인 춤 선생님들이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어서 하나도 모른다. 학생들이 알려줘야 한다.)

(학생 1)  프로듀스 X101 유닛곡 <이뻐이뻐> 어때요? (나다.)

(선생님)  (폰으로 검색 중) 음.... 음.... 이건.... 아 좀... (또 하나 공통점, 귀염 떠는 안무는 못 참아하는 선생님이 많다.)

(학생 2)  레드벨벳 지난주에 신곡 나왔어요!

(선생님)  아 그래요? 제목이 뭔가요? (또 검색 중) 좋아요. 음... 안무 연습 영상은 아직인데... 나오겠죠. 그럼 다음 주엔 <음파음파> 하겠습니다!


댄스 선생님들은 10여 분이면 뚝딱 안무를 딴다. '안무 딴다'는 건 어떤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세부 동작으로 정리해 내는 걸 의미한다. 댄스 초급자들은 아무리 안무 연습 영상을 봐도 도대체 이 동작과 저 동작 사이에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순식간에 지나가는 웨이브가 왼쪽부터인지 오른쪽부터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지라, 그저 신기하기만 한 능력이다. 다시 말하지만, 요즘 안무 클래스는 "노바디 노바디 벗 유 짝짝 짝짝" 이런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 말미에는 선생님이 그날 수업 분량을 시범으로 보여주는데 이때 수강생들은 스마트폰 영상녹화를 한다. 그걸로 복습을 하지 않으면 (적어도 나는) 다음 수업 초반에, "지난 시간에 배운 거 얼마나 기억하는지 한 번 해볼까요?" 하고 음악을 틀어줬을 때 머릿속이 하얘서 그냥 서 있어야 한다. 

선생님 시범을 잘 녹화해 두고 복습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어렵다. 선생님마다 안무를 조금씩 다르게 따기 때문에 '우리 선생님표 안무'를 녹화해 연습하는 것이 필수다.


그 주의 안무를 다 익힐 때쯤 공포의 <영상 촬영>을 할 때도 있다. 이것 또한 유튜브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매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잘 따라온다 싶으면 영상 촬영을 하겠다고 선포한다. 그러면 평소보다도 더 열심히 반복연습을 하고, 선생님도 디테일을 좀 더 다듬어 준다. 그리고 수업이 거의 끝날 때쯤 직원이 캠코더를 들고 와서 두세 번 촬영한 뒤 잘 된 것을 유튜브와 카카오TV에 올린다. <**댄스학원 방송댄스반 수업 영상>이란 제목으로. 


물론 조회수는 십몇 회~백몇십 회에 불과하다. 학생이나 학원 관계자들만 조회했다고 보면 되지만, 어쨌든 언제 누가 보게 될지 모르니 긴장할 수밖에. 영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면 단점이 너무나 잘 보여 자극이 된다. 꼭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다. 뭔가를 배우면 시험을 봐야 열심히 공부하고 남는 것이 생기듯, 댄스 클래스에서는 영상을 찍어 공개함으로써 더 열심히 하도록 만든다. 


자신 없거나 하기 싫으면 영상에 참여 안 해도 되는데, 한번 빠져보니 카메라 앵글에 안 나오도록 구석에 찌그러져 앉아있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적지 않았다. 좀 어설퍼도 용감하게 카메라 앞에 서는 저 친구도 있는데 그걸 못 하나, 하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빠지지 않으려고는 하는데... 카메라 울렁증 극복이 쉽지 않다. 


이래저래, '요즘 것들' 문화에 맞추는 것은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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