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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Oct 22. 2019

<7화> 몸매에도 T.P.O가 있다니

열심히 운동해서 근육질 몸매를 만들어놓았더니만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이렇게 댄스에 푹 빠져 있지만, 그것이 운동을 대체할 수는 없다. 현재는 월수금에는 댄스, 화목토에는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고 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바빠져서 운동과 댄스 중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아마 필라테스를 택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기본이니까. 꾸준히 전신 근육을 체계적으로 스트레칭하고 강화해야 생기를 유지할 수 있다. 


줌바나 에어로빅 같은 피트니스 댄스라면 운동이 되겠지만, 방송댄스는 근육 강화나 스트레칭과는 그닥 관련이 없다. 안무를 결정하는 것은 가사 내용과 곡 분위기에 달려 있지 건강이 아니니까 말이다. 사실 몸을 상하게 하는 동작들도 있다. 빠른 비트에 맞춰 갑자기 무릎으로 앉는다거나(X1의 U GOT IT) 아예 무릎을 바닥에 대고 한 바퀴 도는(NCT U의 BOSS) 동작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댄스학원 수업 초반에는 체력 강화를 위해 스트레칭뿐만 아니라 근력운동도 따로 시킨다. 윗몸일으키기, 다리 올리고 내리기, 팔굽혀펴기나 플랭크 같은 것 말이다. 바로 춤만 추면 몸에 불균형이 올 수 있다.


어쨌든, 선생님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엉거주춤 동작을 따라 하기 급급했던 시절을 지나 가끔씩 전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정신머리가 생겼는데, 그때마다 내 몸매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 필라테스 하러 가면 내 근육질 몸매는 나름 선망의 대상인데. 그래서 언제나 거울 앞, 선생님 바로 옆에 자신있게 서는데... 여기선 뭔가 안 어울린다. 이런, 몸매에도 패션처럼 T(Time), P(Place), O(Occasion)이 있구나! 



각 공간에서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여성의 몸매가 다르다. 


필라테스나 요가 수련 현장을 생각해보라. 

선생님들은 보통 늘씬하다. 탄탄하면서도 매끈한 바디라인을 자랑한다. 근육이 울퉁불퉁하지 않지만 고난도 동작들을 너끈히 해내는 파워를 갖췄다. 코어가 단단히 잡혀있고 속근육이 길이방향으로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대신 S라인은 강하지 않다. 이쪽 현장에서는 몸매 자체보다 각종 동작들을 해내는 수행능력과 그로 인해 향상되는 건강이 더 중요하지, 외부로 드러나는 여성의 몸매 자체에는 그렇게 집중하지 않는다. 부차적으로 얻어질 뿐이다.  


피트니스센터(헬스장)는 조금 다르다. 이쪽은 건강미 넘치는 S라인 몸매 자체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만들기 위해 부위별 중량운동을 해서, 엉덩이는 '근육뽕'을 가득 채워 둥근 애플힙을 만들고 팔과 가슴은 탄탄하게, 등 라인은 매끈하게 만든다. 게다가 요즘은 여성들도 근육질 몸매가 트렌드라, 복근도 만들고 팔뚝 근육도 키운다. 


요가복 같은 에슬레져룩 쇼핑몰 포토 후기에는 헬스장 거울에 비친 자신의 대문자 S라인 몸매를 뽐내는 여성들 사진들이 가득하다. '옷 정말 예뻐요! '라고 후기를 달지만 사실의 자신의 몸매를 자랑하는 건데, 필라테스와 요가장에서 찍어 올리는 사람들과 달리 헬스장에서 올리는 여성들은 단단한 어깨와 11자 복근, 군살 없는 허리와 그에 대비되게 근육으로 키운 빵빵한 엉덩이 라인을 강조하곤 한다.  


댄스의 세계는 어떤가.

춤선이 예쁘게 나오려면 길고 날씬한 팔다리와 잘록하게 파인 허리라인이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춤꾼들은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아주 날씬한데, 그래야 다양한 신체표현을 풍부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특히나 잘록한 허리!! 춤꾼들은 딱 붙는 상의에 벙벙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든, 풍성한 후드티에 딱 붙는 레깅스를 입든, 상하의를 모두 넉넉하게 입든, 대부분 허리만은 내놓는다. 그래야 허리와 골반의 움직임이 잘 드러나 몸짓이 잘 드러나고 여성미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트와이스의 <Fancy>와 <Feel Special> 안무 연습 영상 캡처. 둘만 빼고 모두 크롭티로 잘록한 허리를 드러냈다.  


그런데 나는?!

2년 넘게 진지하게 필라테스 수업을 받았는데 다른 수강생들, 선생님들과 조금 달랐다. 

남자들처럼 근육이 툭툭 불거지더니 1년쯤 지나자 11자 복근(세로복근)은 기본이고 배에 올록볼록 식스팩의 '흔적'이 생겼다. 팔뚝살은 날씬해지는 것이 아니라 근육으로 대체되면서 두께가 그대로 유지됐다. 튀어나온 힘줄과 혈관이 팔뚝부터 손목까지 주욱 이어졌다. 인바디 측정을 해보면 상체 근육이 평균을 훌쩍 넘고 체지방은 평균 이하로 나오는데, 이것 때문에 울끈이불끈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원한 게 아니라, 타고난 체질이 그런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필라테스와 요가 수련을 했는데 엉뚱하게 헬스장형 근육질 몸매가 장착됐고, 어디 내놓고 자랑할 수도 없는 쓸데없이 불거진 복근 덕분에 오히려 굵은 통허리가 돼 버렸다. 그보다 먼저, 두 번의 출산으로 부풀었다 꺼진 아랫배의 주글주글한 거죽과 나잇살의 콜라보로 생긴 옆구리살은 또 어떻고. 레깅스에 잘 쑤셔 넣어도 그 위로 이른바 '머핀탑'이 고개를 내미니 탄력좋은 요가복 상의로 잘 눌러줘야 그나마 봐줄만하다.


필라테스에 맛 들일 때는 그저 통증 없고 활력 있는 일상을 누리면서 몸무게를 줄여 옷태가 나는 정도를 꿈꿨다. 그래서 슬림하거나 여성스러운 S라인이 아닌 '어쩌다 근육질' 몸매가 되었어도 그런가 보다 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몸매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 몸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으러 동네 피트니스 센터들을 한번 순회해볼까. 그런데 댄스에 입문하고 나니 이래저래 불만이 많아졌다. 


아오 나의 댄스 T.P.O에 안 어울리는 몸매를 어쩌면 좋으리. 유튜브의 유명 트레이너 영상을 섭렵해보니 잘록한 허리는 운동도 운동이지만 내가 제일 하기 어려워하는 소식 다이어트가 핵심이던데. 먹고자 하는 본능과, 그래도 더 나이 들어 주책이기 전에 잘록한 허리 한 번 드러내고 춤춰보고 싶다는 소원 중 누가 이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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