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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Nov 04. 2019

<8화> 외국어 학습과 너무나 흡사한 춤 배우기

무작정 따라 하고 반복하는 수밖에

배우면 배울수록, '춤의 언어'인 안무를 익힌다는 것이 어쩜 그리 외국어 배우는 것과 비슷한지 놀란다.

그래, 그랬던 것이다. 춤이 본래부터 바디 랭귀지, 몸짓 '언어'니까 말이다.  


우리 모두 어려서부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컸다. 시중에는 여전히 '기적의 영어학습법' 운운하는 책과 학원 광고들이 초심자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학창시절 내내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본 성인들은 결국 깨닫는다. 왕도는 없다는 것을.


살 빼기도 그렇지 않던가? 이 세상 몸짱들의 다이어트 방법이 수백 가지 다 공개돼 있지만 대다수 중생들은 여전히 새로운 방법이 나왔다고 하면 이번에야말로 획기적인 물질이나 방법이 나온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고 따라 하곤 한다. 하지만 끽해야 몇 개월 갈 뿐. 유행은 사그라들고 또 다른 방법으로 우우 몰려간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진다는 진리는 애써 외면한 채.  


외국어를 배울 적에, 처음엔 뭐가 뭔지 몰라도 우직하게 외우다 보면, 뇌가 '음성'에 가깝던 그 덩어리를 서서히 소화해 분석해내기 시작한다. 처음엔 이해 못한 채로 통째로 삼켰던 문장들이 점차 의미 단락별로 분해되고 구조가 보이면서 각각의 부분에 다른 단어를 끼워 넣을 수 있게 되면, 할 수 있는 표현이 복리처럼 늘어난다.


춤도 그랬다. 처음에는 아무 개념 없는 머릿속에 한 곡의 안무를 통째로 욱여넣으려니 탈이 나곤 했다. 수십 번 반복해서 외운 것 같았는데도 잠깐 고개 돌리는 사이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증발한 것처럼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것은, 몸과 머리가 그 안무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통으로 무작정 따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다 외웠다고 생각한 안무도 중간부터 틀어주면 바로 따라 하지 못했다. 젊은 아이들이 배운 건 중간 어느 부분을 틀어줘도 순간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7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렇다. 여전히 전세계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Kpop 랜덤 플레이 댄스> 이벤트 참가자들이, 수십 곡을 무작위로 틀어주는데도 1초 만에 무슨 곡의 어느 부분인지 파악하고 달려 나와 정확하게 군무를 추어대는 모습은 경이롭다. 그동안 배운 것이 30곡에 이르는데도 어느 하나 재빨리 기억창고를 깨고 꺼내서 출 수 있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그래도 발전이 있긴 했다. 팔 다리 어깨 허리 엉덩이 각각의 움직임(단어)이 조합을 이루어 하나의 의미 있는 자세(표현, 구절)가 나오고, 그 자세 두서넛의 합으로 동작(문장)이 생기며, 그 여러 동작들을 즐거우면서도 의미 있게 이어서 배치하면 안무(완결성 있는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니 평생 몸 한 번 안 움직여 본 사람이 하는 소리 같아서 슬프다. 그동안 기간이 짧든 길든 내가 추어왔던 에어로빅 줌바 볼룸댄스 다이어트 댄스, 문화센터 방송댄스는 다 무엇이지? 그만큼 예전에는 내가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얘기고, 또한 요즘 K-pop 댄스의 속도와 난이도가 높다는 얘기다. )


하나하나 어렵기만 하고 이해 안 되던 단어와 표현도 이후 다른 곡에서 또 나오면 훨씬 쉽게 되어 신이 났다.  Yes는 긍정문과. No는 부정문과 호응하듯 감는 동작이 있으면 다음엔 푸는 동작이 필연적으로 짝을 이루는 동작 세트가 있다거나, '섹시하게 보이기' 또는 '파워풀하게 보이기' 등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포즈가 있고 그것이 살짝살짝 변주를 주어 새로운 안무가 나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길래 수준 높은 용어들이 들어간 복합문 같은 Kpop 한 곡의 안무를 배우기 전에, Kpop의 기본을 이루는 스트릿댄스와 현대무용 기본 동작들을 좀 더 익히고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기 수업을 많이 해달라는 나의 요구에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힘들다고 출석률이 확 떨어져요."라고 했던 것도, 지나 보니 이제는 이해가 된다.


팔 웨이브wave 동작 같은 건 단기간에 되지도 않는데, 수업시간에 계속 반복하고 있으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팔이랑 어깨가 무지무지 아프다. 몸통은 그대로 있는 채 머리만 좌우로 왔다 갔다 하게 하는 목 아이솔레이션isolation 동작(우리 어린 시절엔 박남정의 <널 그리며(1988)> "왜 난 이리 널 그리는 걸까, 왜 내 모습 보이지 않는 걸까"의 ㄱㄴ춤, 요즘엔  방탄소년단의 <고민보다 Go(2017)>의 후반부 "고민보다 Go" 반복 부분에서 나오는 머리 동작을 떠올리면 된다.) 연습만 하다 보면 승모근에 담이 걸려서 다음날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성취감이 없으니 재미도 없다. 연습해도 빨리 웨이브나 아이솔레이션 동작들이 안 되는데 계속 반복만 시키면 취미반에 남아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정어정 어설퍼도 최신 유행곡 핵심 안무를 다 배웠다는 성취감이 있어야 계속 배우게 된다. 기초를 다진다고 기본기만 수없이 반복하면 흥미를 자체를 잃을 수 있다. 발음이며 문법 다 틀려도, 용감하게 말을 내뱉어 의사소통에 성공하면 점차 느는 외국어 학습처럼 말이다.


단어와 숙어가 언어의 기초라고, 또는 문법을 알아야 그 위에 쌓아 올리기가 쉽다고, 그것만 줄창해서, 그래서 우리가 영어를 잘하던가? 어학연수처럼 그 언어를 쓰는 환경에 풍덩 빠져서, 때로는 바디랭귀지와 쉬운 단어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과도 불시로 맞닥뜨리면서 겪어내야 결국 그 언어에 빨리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춤도 그런 것이다.  


아, 물론 깨닫는 것과 실력 향상은 별개의 문제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씩의 수업, 그리고 수업 들어가기 전 30분~1시간 나 혼자 안무를 눈으로나 몸으로 복습하는 것으로는 투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스튜디오에 들인 대형거울. X1의 <U GOT IT> 연습중. 무릎앉아 추는 안무 땜에 매트를 깔았다. 내 무릎은 소중하니까!

다만 처음에는 너무 요령부득이라, 또 혼자서는 너무 할 줄 몰라 연습을 오히려 못 했는데, 이제는 선생님의 시범 영상 녹화한 걸 틀어놓고 복습하거나 유튜브에 다른 강사의 '** 안무 배우기' 영상을 틀어놓고 예습도 곧잘 한다. 그걸 위해서 대형 거울도 질렀다. 전에, 나의 전 포스팅 "[반지하] 제4화 : 반지하? 슈펠리움!"편에서 꿈꿨던 것이 있다. 직접 꾸민 작은 반지하 스튜디오를 다용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댄스 연습공간도 될 수 있지 않겠냐고. 긴 전신거울 네댓 개를 경첩으로 이어서 넓게 펴 벽 고정고리에 걸어 쓰고, 안 쓸 때는 병풍처럼 접어서 치우면 어떻겠느냐고.


그런데, 와이드 대형 거울이 아주 싸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에는 대형 전신거울이 흔치 않고 가격이 어마어마했는데, 요즘은 전신거울 대형화가 유행이라 크고 좋은 물건들이 많이 나왔다. 제일 크고, 평소엔 치워놓을 수 있도록 바퀴가 달린 것을 골랐다. 폭과 높이가 120*180cm에 이르는 대형 거울!  사실 거울이 여러 조각 나 있으면 그 이음매 부분에 형태가 일그러져 거슬리는데 매끈한 통짜 거울이라 너무 좋다.


춤 실력은... 언젠가는 봐줄 만하게 될 것이다. 몇 년이 걸리든 말이다. 공연할 일이 있나 장기자랑을 할 일이 있나, 나이 먹은 아줌마는 조급할 일이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조금 더 나아지는 모습을 스스로 알아보고 즐거우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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