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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Jul 11. 2019

제4화 : 반지하? 슈펠리움!

잠실에 산다고 하면, "잠실에도 단독주택이 있어요?" 하는 사람들이 많다. 19년째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 잠실은 70년대 한강변 모래밭을 처음 개발할 때부터 간선도로 주변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주택들로 빼곡히 채운, 대표적인 단독주택 지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근처 고층 빌딩이나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 올라가 본 사람들은 한눈에 그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종합운동장역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쭉 뻗은 올림픽로 좌우로 삐까번쩍한 럭셔리 아파트 단지들이 이어지지만, 그 배후인 성남 방향을 바라보면 가락시장 사거리에 막 지어진 헬리오시티 아파트 단지 사이 벌판이 얼마나 빼곡하게 저층 빌딩과 빌라, 단독 주택들로 차 있는지. 방이동, 송파동, 석촌동, 삼전동이 다 그렇다. 송파구 인구가 서울시에서 압도적으로 1위인 것에는 일반주택(빌라)에 거주하는 서민들이 기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석촌동?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석촌동 세 모녀 사건'의 비극이 일어난 곳이 바로 우리 옆 동네 반지하다.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 본 방이동(왼쪽)과 송파동 풍경.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석촌동과 삼전동도 엇비슷한 풍경이다.    photo by 전경우


서울시는 2010년부터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다. 수해가 날 때마다 너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면 공무원들도 같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사실 법으로 금지하기 전부터 주차공간 확보 때문에 반지하를 들이지 않는 분위기는 이미 있었다. 노후 주택들은 거진 다 필로티 구조로 1층에 주차공간을 들인 3층짜리 빌라로 변신해서, 이제 이 동네도 반지하가 많이 사라졌다. 새로 생기지는 않고 남은 곳들은 계속 노후화되니 반지하 주거공간의 이미지는 계속 더 추락할 일만 남았다.


우리 집도 예전엔 셋집을 내놓으면 그럭저럭 임자가 나타나곤 했다. 월세도 꼬박꼬박 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세입자 질이 점점 더 낮아졌다. 뭔가 수상한 청년들이 들어와 자꾸 월세를 밀리고 깬 유리는 방치하고 재떨이는 치우지 않은 채 두어서 온통 담배 냄새가 찌들게 하기도 했다. 월세를 독촉하기도, 아무리 잔소리해도 문 앞에 방치하는 각종 쓰레기를 못 참고 대신 치워주기도 지쳐서 셋집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압권은 연변에서 온 중국 동포 아저씨였다. 이 사람은 주인이 뭐든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매일같이 우리만 보면 뭔가를 요구했다. 그 아저씨가 부르는 소리에 먹은 게 얹힐 정도였다. 화장실 하수구에서 큰 지렁이가 나왔는데 자기는 징그러워서 못 잡겠으니 대신 잡아달라고 했을 때,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 연변 아저씨더러 우리 집 수납공간이 너무 없어 창고가 필요하니(거짓말이 아니다) 나가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동안 "나니까 살아주는 거지 한국 사람들은 이런 데 못 산다"던 아저씨는 급 자세를 전환해 계속 살게 해달라고 어필했다. 내 결심을 돌이키지 못해 나간 뒤에도, 창고로 안 만들고 다른 세입자를 들였다고 의심해서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거기에 누가 사느냐고 유도신문을 하기도 했다. 자기가 다시 들어가면 안 되냐고.   


이고 지고 살던 짐이 새로 꾸민 창고에 착착 들어가 자리를 잡자 숨통이 틔었다. 새 공간이 주는 만족감은 곧 더 큰 욕심으로 변했다. 결국 방 두 칸짜리 10평의 반지하 셋집 하나도 추가로 내 손아귀에 들어왔고, 대대적인 셀프 인테리어를 통해 내 미니 스튜디오가 탄생했다.


지인들이 놀러 오면 깔끔하고 쾌적하다고 칭찬하다가도, 들어간 비용을 들으면 놀라곤 했다. 손바닥만 한 데다 원래 촬영공간은 비어있는 것이니 집기도 몇 가지 없는데 무슨 500만 원씩이나 들어갔냐는 것이다. 사람 한 번 안 썼다면서. 그 돈은 거의 모두 기본기에 투자했다. 단열재 하나 없는 외벽은 열몇 겹 덧발라진 싸구려 종이벽지를 모두 떼내고 결로방지 핸디코트를 겹겹이 발랐다. 코딱지만 한 7개의 벽면에 총 110kg이란 어마어마한 용량이 투입됐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반지하 셋집은 원래 최소한의 투자만으로 유지되는 것인데, 이 공간도 이런 정성스러운 손길을 처음 받고 놀랐을 것이다. 홍대와 그 주변 지역의 길가 반지하들은 카페나 소품점 같은 영업공간으로 예쁘게 변신한 곳도 많지만, 순전한 주택가인 이 지역에서 이렇게 이색 공간으로 변한 반지하는 아마 이곳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최근 글발 좋기로 유명한 김정운 교수가 오랜만에 새 에세이집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냈다. 아직 못 읽었지만 자신의 '슈펠리움'에 관한 내용이라는 소개글을 보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이자 여유 공간'을 뜻하는 독일어라는 설명을 보자마자, 단번에 '어, 이거 우리 집 스튜디온데?' 했다. 무슨 얘기가 나올 건지, 그냥 벌써 다 알 것 같다.


분위기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에 속으면 안 된다. (내가 사진쟁이라는 걸 잊지 말 것)

포토 스튜디오로 꾸몄지만, 나는 이곳을 적극적인 영업장소로 삼는 것을 꺼렸다.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았다. 스튜디오 실장이기보다는 그냥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 남아 대부분 외부에서 일할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아무 사전교감없이 낯선 이들이 불쑥 들어오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는데, 지금은 참 잘했다 싶다.


가뭄에 콩 나듯 하는 프로필 촬영 외에 이 공간은 모임 장소, 미니 강의실, 뭔가를 만드는 작업실, 영화관람실, 독서실 등 다양하게 변신한다. 독서토론이나 번개모임을 갖고, 화이트보드를 걸어놓고 사진 기초강의를 했다. 남편은 가끔 뭔가 공부한다고 독서실로 쓴다. 딸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소원이었던 파자마 파티를 했다.  '도대체 사진 찍는 스튜디오에서 어떻게 잠을 잔다는 건가' 싶어 따라온 엄마들은, 따끈하게 바닥난방이 되는 일반 집이라는 걸 알고 안심하고 돌아갔다. 엄마 아빠를 면접관으로 앉혀놓고 대학 수시 2차 면접 시뮬레이션을 했던 아들은, 이제 대학생이 되어 그곳에서 친구들과 새벽에 프리미어 리그 축구 결승전을 보았다.


어느 하나로 정의되지 않은 '빈 공간'은 참으로 많은 가능성과 설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요즘 벽에 대형 거울을 달아 안무 연습실로도 써볼까 궁리 중이다. 호기롭게 댄스 학원에 등록했는데, 몸이 젊은 애들 안무 외우는 속도를 영 못 쫒아가서 말이다. 안 쓸 때는 병풍처럼 접히게 해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시판 전신 거울 몇 개에 경첩을 달고, 펼쳤을 때 쓰러지지 않게 양쪽 끝에 벽이랑 고정하는 장치를 하면 되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34년 된 낡은 단독주택에, 1층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비좁은 2층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 보상이 되는 공간. 몇 십만 원의 월세를 포기하고 만들었고 그것에 못 미치는 수익을 내지만, 대신 우리 가족이 각자 필요할 때 이곳에 자신의 슈펠리움을 지을 수 있어서, 나는 만족한다. 물론, 하루 종일 해가 잘 드는 지상을 꿈꾸긴 하지만.


(반지하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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