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와의 숨바꼭질
그러니까... 이 글은 두 가지 무용담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왜 반지하 시리즈 다섯 번째가 아니라 번외편인가 하면, 이것은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닌 그 집과 엮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30대에 반지하 셋집 세 곳의 '주인아줌마'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부자라서가 아니다. 그저 목구멍에까지 차오른 대출 갚으면서, 재산은 그 집 한 채가 전부인 평범한 중산층일 뿐인데, 30년 전 방식의 단독주택을 샀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월세 받은 걸로 낡은 집 수리비나 대출이자를 간신히 감당하는 정도였다.
12년간 꽤 많은 사람들이 셋집들을 거쳐갔다. 그 사람들은 모두 달랐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 외에는 성격도 삶의 태도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만약 내가 그들의 공통점을 느꼈다면 '반지하 사람들'이라고 통칭하여 썼을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리 쉽게 일반화되지 않는다.
여러 자잘한 사건사고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이 집에 이사 온 직후 겪어야 했던 일이다.
이 집을 우리에게 판 전 집주인은, 계약할 때 우리에게 반지하 3호의 밀린 월세를 가볍게 떠넘겨버렸다. 두 달 월세가 밀려 있는데 직접 받으라면서 우리에게 그 월세를 받아간 것이다. 나는 어설픈, 되다 만 아줌마였고 워낙 신경 쓸 큰 일들이 많아서 이의제기 없이 달라는 대로 돈을 주었다.
집수리 하고 이사를 하고 또 정리를 하고 이웃집들과 낯을 익히고... 하면서 다시 두 달 가까이 지났다. 그런데 반지하 3호의 얼굴을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분명 나를 피하고 있었다. 이미 능구렁이 전 집주인과의 숨바꼭질에서도 승리한 청년이다. 편의점에서 가끔 밤 알바를 한다는 풍문이 있을 뿐 문을 두들겨도 반응이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계약자인 이모와도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현관문에다 연락 달라고 써붙여 놓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집주인인데 이 집에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공간과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영 께름칙했다.
생각다못해 그냥 쪽지가 아닌 협박쪽지를 붙였다. 3일 내에 전화 주지 않으면 열쇠를 바꾸어 버리겠다고. 지금은 전자도어락으로 다들 바뀌었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낡은 셋집들은 열쇠 방식이 많았다. 내게는 집주인으로서 그 집의 비상용 키가 있었다.
두 달 동안, 나는 인내심을 갖고 그 열쇠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쪽지마저 건드린 흔적 없이 3일이 지나자, 나는 폭발했다.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인기척이 없었다.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지? 그래도 주거침입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직접 대면하면서 몰아붙이는 것도 자신없고 조금 무서웠다. 그래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렇지! 그 집은 창문이 옆집 마당 쪽으로 나 있다. 그리고 그 옆집은 10년째 비어있었다. (주인이 아주 부자인데, 세입자가 있으면 귀찮다고 비워둔 채로 소유만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반지하 3호는 숨어 살기 딱 좋은 곳이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그 젊은이가 방안에 있나 없나, 없으면 어떤 상태로 살고 있나 상황 파악이라도 하기 위해 옆집 담을 넘어 들어가 그 방 창문가로 갔다.
그때 내가 내려다본 광경(반지하라 방이 내려다 보인다)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 들린 사람이 지내는 방 같았다. 두 평 반 정도 되는 비좁은 그 방은 보이는 벽면이 모두 시커먼 곰팡이로 가득했고 정면에는 옷더미가, 남은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한 싱글 침대에는 그 젊은이가 그림자처럼 구겨져 있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놀라고 화나고 걱정이 돼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왜 있는데 없는 척해요? 문 여세요!"
열어제낀 창문으로 물에 젖은 듯한 짙은 곰팡이 냄새가 홱 끼쳤다. 원래 반지하 3호는 창고로 지어졌으나, 전 주인이 개조해 방 하나에 부엌과 화장실을 들여서 세를 주고 있는 것이라 했다. 원래 주거공간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부실했고 통풍을 안 시키면 곰팡이가 금세 생기는데, 문을 꼭꼭 걸어 닫고 숨어 살았으니 난리가 난 것이다.
결국 그 청년은 스스로 문을 열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걸 아는지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 성인이라지만 20대 초반, 어린 나이였다.
그 젊은이에게서 전화번호를 받아 집에 상황을 알렸다. 지방에 있는 어머니 대신 계약자였던 젊은 이모가 와서 데리고 갔다. 밀린 월세를 제하고 남은 이백여 만원의 보증금을 그들에게 쥐어 주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적에, 그 청년은 이발을 하고 그 방에 있던 옷더미 몇 아름을 의류수거함에 미어지게 밀어 넣은 뒤 몇 개 안 되는 가구가 실린 용달을 타고 떠났다.
내 집에서 누군가를 매몰차게 쫓아낸 셈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잘했다고 믿는다. 그 청년은 말하자면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였다.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위해서 바깥출입을 하긴 했지만 끼니를 채울 수만 있으면 방구석에 틀어박혀 죽은 듯이 지내면서 삶의 의욕이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는 그 굴에서 그를 끄집어내야만 했다.
내가 고자질하지 않았으면 가족들도 이 청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깊은 무기력에 빠져 아무 계획도 없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보내고 있던 그는, 다행히 나의 액션을 계기로 조금은 삶을 새로 시작해볼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발도 하고 곰팡이 밴 이곳의 옷들을 한꺼번에 버리고 떠난 것이리라. 이모와 함께 떠나는 그의 표정이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밝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은 아니었겠지.
반지하 3호는 말끔히 단장해 다시 세를 주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여름에도 간간히 보일러를 틀어 바닥 습기를 날리고 창문을 열어 통풍을 시키면서, 꽤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원래 구석지고 해 안 드는 자리라는 한계는 명확했다. 환기시설 없는 부엌 때문에 요리할 때 나오는 습기가 공간에 지속적으로 침투했고 문제를 일으켰다. 수납이 부족하기도 해서, 나는 결국 그 공간을 다시 창고로 되돌렸다. 창고는 음식을 만들지 않고 사람이 내뿜는 습기도 없으니까 말이다. 처음부터 세 받을 욕심에 그곳을 개조해선 안 되는 거였다. 엑소시스트를 불러야 할 것 같았던 그 공간은, 지금 깔끔한 창고로 평화로운 공간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