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아 Jul 11. 2019

제3화 : 반지하의 계단과 화장실

1년쯤 전에 50대 남자 경찰관과 20대 여자 경찰관이 한 조로 우리 집 1층 벨을 누른 적이 있다. 동네 보안 점검 중에, 우리 집 반지하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판단해 조언해주려 한 것이다. 포토 스튜디오로 만들면서 창문의 방범 쇠창살을 떼 버리고 레이스 커튼을 드리워놨는데, 딱 봐도 여자 혼자 사는 공간인 데다(아닌데요) 도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그래서 훔쳐갈 만한 건 아무것도 안 두었어요). 어쨌든 고마운 일이니 내부 점검에도 협조하려는데, 어이가 없다. 


"근데 저기 어떻게 들어가요?"


잠실의 단독주택 반지하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구조로 지어놓아서 들어가는 방법도 다 비슷하다고!  음식 배달 청년도 택배 아저씨도 물은 적이 없거늘, 뭐야 타 지역에서 발령나 제일 처음 들른 집인가? 저 경찰들은 반지하에서 칼부림이 나고 있어도 창문 앞에 쭈그리고 똑같이 묻겠지. 어떻게 들어가요?


우리 집(전형적인 잠실 일반주택) 반지하 내부로 진입하려면, 집 오른쪽 담장 안쪽의 좁다란 골목을 지나 뒷마당으로 들어가야 한다. 골목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살짝 경사가 져 있다. 그리고 꺾일 때 20cm쯤 되는 턱이 하나 있다. 그걸 내려서서 뒷마당에 들어서면 다시 두 개의 계단이 있고 현관이 세 개 줄지어 있다.  현관문을 열면 다시 2단짜리 계단을 내려서야 신발을 벗는 곳이 나온다. 지하실들이 바로 쭉 뻗은 계단들을 내려가게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멀리 돌아 들어가면서 의식하지 못하게 야금야금 지표면을 낮춰 현관은 온전히 지상으로 나오게 돼 있다. 집 앞마당에서 보면 창문이 지표면에서 불과 3~40cm 정도 올라와 있어서 공간의 반 이상이 땅 밑에 있는 것이 확실한데, 이런 은근한 단차와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경사가 이어져 뒷마당에선 온전한 1층 입구처럼 보이도록 설계돼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제일 먼저 공개한 스틸컷이 화장실이다. 그만큼 가장 상징적이고 충격적인 곳이다. 높은 계단 두 개를 딛고 올라서야 변기에 앉을 수 있는 기이한 공간. 이 공간은 그런데 현실과는 다르다. 기생충의 박사장네도 기택네 반지하 집도 모두 세트다. 중앙일보 이하준 미술감독 인터뷰 기사를 보니 봉감독이 구상한 박사장네 평면도를 보고 건축가들이 '집을 그렇게 짓진 않는다'라고 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미술감독 본인이 '대학 때 잠시 자취했던 반지하의 기억을 더듬어' 만든 이 화장실도 실제와는 다르다. 최소한 아주 예외적이다.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개연성 있으면서도 시각적인 충격을 주기에 너무나 잘 만든 세트임은 분명하다. 


공들여 단장하고 살림하는 곳이 아니라 온갖 욕실용품이 없어서 깔끔해 보일 뿐, 좁고 낮고 계단을 올라 들어가야 한다. 세면대는 하수구랑 연결도 안 돼 있다.

변기가 높이 위치해야 하는 것은 외부 정화조보다 높이 두어 자연배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오수펌프를 설치해 강제배수를 시키면 정화조보다 낮게 변기를 둘 수 있다고 하는데 비용이 드니까 그렇게 안 한다. 문제는, 자연배수가 화장실에서 쓰는 모든 물에 적용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씻고 빨래한 모든 물도 배수가 잘 되려면 높이 있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화장실 자체를 높게 만든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해야 하는 변기인데, 비좁은 화장실 안에서 높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도록 하면 너무 위험하고 불편할 것이다.   


실제로 반지하집들의 화장실은 거실에서 계단 하나를 올라서 문을 열게 돼 있다. 상황에 따라 변기가 놓인 부분은 10cm쯤 단차를 더 줘서 올려놓기도 하지만 그건 계단이 아니라 '턱' 수준이고, 화장실 전체가 들어 올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내부 높이가 낮아지는 단점이 있지만 감수해야 한다. 배수가 더 중요하니까. 나의 스튜디오 화장실도 높이가 180cm 도 안 돼서, 키 큰 사람은 화장실 등이나 더 낮게 턱이 져 있는 부분에 이마를 부딪히기 일쑤다. 


그리고 원래 세면대가 없이 샤워기가 달린 수전만 있어서(80년대 주택 셋집용 공간에 세면대는 사치품이었다. 절대공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쭈그리고 앉아 손을 씻어야 했는데 불편하기도 하고 옷에 물이 튀어서 결국 세면대를 들였다. 그런데 이 세면대는 하수구와 연결돼 있지 않다. 제대로 하려면 바닥을 깨고 하수관을 연결한 뒤 바닥 타일을 새로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수고와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손님이 올 것 같으면 하수관을  세면대 수납장 안에 캠핑용 물통을 감춰놓고 하수를 모았다 버리고(기껏 손을 씻는 정도니까), 혼자 있을 때에는 그냥 하수관을 바닥에 늘어뜨려놓는다. 


반지하의 세계는 수없이 자잘하게 분산된 계단의 세계다. 은근하게, 의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의식하더라도 별 것 아니도록 느끼게 하면서 실내외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게 만든다. 정직하게 쭉 뻗은 계단을 지나면 평평한 공간이 열리는 2층이나 지하실과는 다른 세계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2화 : 반지하에도 급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