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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Jul 11. 2019

제2화 : 반지하에도 급이 있다

반지하도 급이 다 다르다. 햇볕이 얼마큼 드는가, 곰팡이가 스는가, 도로와 딱 붙어있는가에 따라. 


햇볕! 옥탑방에 차고 넘치다 못해 어마어마한 폭격이 되는 그 햇볕이 반지하에는 너무 소중하다. 햇빛이 들어오면 기분도 확 핀다. 내 작은 포토 스튜디오에는 오전 두 시간 정도만 해가 직접적으로 들어온다. 그 시간에 딱 맞춰 자연광 촬영에 성공하면 너무 기쁘다. 프로필 촬영을 해보면 얼굴이 아주 부드러우면서 환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대편 현관 쪽에는 햇살이 항상 잘 드니 감사할 따름이다.


곰팡이는 뭐 반지하만의 문제가 아니고,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것이긴 하다. 단, 반지하의 곰팡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습, 부실한 단열로 인한 결로에 '공기 순환의 부족'이란 변수가 더해져 상태가 금세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먼지, 소음, 프라이버시 때문에 창문을 닫는 시간이 긴 데다 보통 반지하 셋집들은 작아서 살림살이들이 빼곡하기 때문에 공기 순환이 더 안 된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문제의 냄.새.를 만든다. 특유의 그 냄새. 축축하고 텁텁한, 지하실이나 동굴, 혹은 젖어있는 대걸레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 냄새. 한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배어들어 집요하게 안 떨어지는 그 냄새. 곰팡이가 생긴 방에 있던 옷은 섬유유연제를 듬뿍 넣어 빨래를 해도 그 냄새를 정말 감추지 못한다.     


우리 집 반지하들은 그 점에서 꽤 훌륭하다. 셋방 알아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셀링 포인트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번은 '부잣집 사모님이었다가 망한' 분이 다 큰 아들과 이사 왔다가 두 달도 안 돼 나간 적이 있다. 짐이 얼마나 많던지. 킹사이즈의 고급 침대를 방에 용케도 쑤셔 넣었는데, 얼마 안돼 나한테 곰팡이가 생겼다고 컴플레인을 하는 것이었다. 침대 라인을 따라 그 아래에 곰팡이가 생겨있었다. 새로 한 벽지인데 ㅠㅠ 시공한 아저씨가 와서 보더니 큰 침대를 벽에 밀착해놓고, 창문은 닫아놓으니 공기 순환이 안돼 생긴 것이라고 했다. 사람 몸에서도 습기가 나오고, 음식 해 먹으면 또 습기가 생기는데 그게 누적됐던 것이다. 실제로 벽지를 뜯어보니 그 안쪽은 말짱했다. 


그 전직 부잣집 사모님은 잘 살았던 시절의 습관을 버리기 힘들어했다. 반지하라는 하드웨어적 본질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사람이라는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아닌 일들에 계속 화를 냈다. 동네 고깃집 연탄 냄새가 흘러들어와 머리 아프다고 매일 가서 싸웠는데, 나는 '그럼 그동안 산 사람들은 왜 아무 소리 안 했을까' 하면서도, 연탄 냄새도 아래로 흘러 고이는 것인 줄 그때 깨달았다. 그 전직 사모님은 동네를 헤집어놓고, 고깃집에서 반지하 창문 유리를 도려낸 뒤 달아준 환풍기를 뒤로 한 채 위약금도 안 주고 나갔다. 나는 도배를 또 해야 했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도로와 딱 붙어있는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거리가 있는가이다. 길에 붙어 있으면 앞서 말한 햇볕과 습기 문제를 최악으로 몰고 간다. 1화에서도 말했듯 바람 불 때 창문을 열면 도로 바닥을 휩쓴 먼지를 쓸어 담는 거대 쓰레받기가 되고, 창문을 닫으면 곰팡이 문제가 생긴다. 행인들이 떠들거나 통화하는 소리가 다 나한테 말 거는 것 같다. 술 취한 이가 근처에 오바이트라도 하게 되면 완전 비상사태다. 실내가 들여다 보이는 걸 막기 위해 발을 치거나 커튼을 드리우니 그나마 소중한 한 뼘 햇살조차 뺏기고, 창문 조망권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뿐인가. 폭우가 쏟아졌을 때 도로에 흐르는 물이 창문으로 넘어 들어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 실제 넘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심리적 위협감이란. 건물은 지을 때 바닥에 살짝 경사를 주어 도로 쪽으로 배수가 되게 만들어 놓기 때문에 건물 안쪽으로 자리 잡은 반지하는 상대적으로 버틸 시간이 있다. 


이 모든 걸 따지면 우리 집 반지하는 半지하라기보다 1/3 지하 급으로 쳐 줄만 하다.  좀 더 지상의 삶과 가까운, 인간적 품위가 손상되지 않는 선이랄까. 공간의 일부는 햇볕을 잘 받고, 곰팡이와 습기가 없고, 도로와의 사이에 4m 폭쯤 되는 작은 앞마당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 주차장으로 사용하느라 담은 없지만 행인들이 사유지인 이 공간을 거의 침범하지 않으니, 이쯤이면 1층에 가까운 삶의 질을 누린다고 허세를 부릴 만하다. 반대로 영화 <기생충>의 그 공간은 2/3 지하 또는 그 하치다. 위에서 말한 모든 나쁜 조건을 갖춘, 컴컴한 지하실행 직전 급이라 할 수 있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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