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세 만세!
(모든 밑줄엔 유튜브 링크가 걸려있습니다)
먼저, 정정해야 할 것이 있다. <12화> 방송댄스는 운동인가 아닌가? 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립싱크가 많아서 숨이 거칠어지는 고난도 안무를 마구 넣을 수 있었지만(물론 보이그룹 중심으로) 이후로는 영리하게, 다이내믹해 보이지만 라이브로 노래할 수 있을 만큼 숨은 덜 차는 방향으로 안무가 변했다고 했다. 그리고 숨차고 힘든 안무란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뛰어오르는' 안무라고. (와 나 막 전문가 같아!)
그런데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는 2000년대 후반인 2007년작이다. 이 곡이 걸그룹 힘든 안무 1위로 꼽히는 레전드곡이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몸이 알았다. 이건 '어나더 레벨'이구나! 그러니까 2007년까지 그런 안무가 존재하다가 정점을 찍고 요즘 경향으로 바뀌었다고 정정해야겠다. 그리 힘든 걸 소녀시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여유 있게 라이브로 부르면서 소화했다. 소녀시대가 괜히, 어쩌다 한 시대 최고의 걸그룹이 된 것이 아닌 것이다.
<다만세> 이후는 점차 요즘 볼 수 있는 상체 위주, 즉 허리-팔-손가락의 다채로운 움직임 위주로 바뀌어갔다. 길고 미끈한 다리 라인을 뽐내는 안무로 미각(美脚)시대로도 불렸던 소녀시대조차도 점점 상체로 안무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다가 <Lion Heart>(2015)에 이르면 트와이스로 대표되는 현란한 상체 위주 안무(이슈데일리의 <Fancy> 쇼케이스 기사사진 참조)로 변한다. <TT>안무는 말 안 해도 다 알 것이고...
도대체 두 팔과 팔꿈치와 손목의 각도와 손가락의 모양만으로 어찌나 다채로운 동작이 탄생하는지, 안무가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여기서 한숨 푹) 결국은 해냈지만, 레드벨벳의 <사이코>를 할 때는 기함을 했다. 어쩜 그리 미세하게 손목과 손날의 각도가, 또 손가락 개수가 초단위로 달라지는지. 케이팝 댄스를 배운다는 것은 그 가수의 안무 동작을 똑같이 흉내(커버)내는 것이라서, 손날 각도가 달라지면 '틀린' 것이 되기 때문에 모두 세심하게 외워야 한다.
다시 <다만세>로 돌아와서, 나온 지 한 달도 안 되는 최신곡 위주로 배운다고 했으면서 웬 13년 전 곡이냐 하면, 올 겨울에 마땅히 커버할 신곡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예전 곡을 하기도 하는데, 새해를 맞아 1월 첫 주에 줄줄 들어온 20대 중후반 수강생들이 '자기 세대의 곡'이라며 이 곡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자기 세대'라.... 13년 전 그들 대부분은 중학생이었다. (아, 중학생 시절 들은 노래가 자기 세대의 노래야? 그럼 내 세대는? 댄스곡만 생각하면,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_-;;; 고만 하자. )
근데 와, 진짜. 매번 새 안무를 배울 때마다 새롭게 어렵지만, 얼마나 파워풀하고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복잡하던지! 평소에는 그냥 어렵다고 작게 찡얼거리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오죽하면 쉬는 시간에 꼰대스럽게 "이거 누가 하자고 했어!(심지어 반말)" 외쳤을까. 카톡 단체방에서 이 곡에 투표했던 20대 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며 비시시 웃었다. '그 세대'들은 한 명도 대미를 장식하는 수업영상촬영까지 가지 못했고, 딴 세대인 10대(이 곡이 나온 해에 태어난 아이들)와 당시 소녀시대를 사진취재하러 다니던 40대 중년여성인 내가 찍었다 결국.
보통 선생님이 안무를 딸 때는 아이돌 소속사에서 올리는 안무 연습 영상을 보고 하는데, 13년 전에는 유튜브도 대중적이지 않았고 그걸 찍어 공개하는 문화도 없어서 참고할만한 영상자료가 없었다. 다행히 체리블렛이라는 신인 걸그룹이 커버한 영상이 있어서 그걸 모델로 삼았다. 근데, 이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보통 댄스 커버를 하면 춤만 추는데, 이 아이들은 1절부터 3절까지 몽땅 마이크도 없이 생목 라이브를 부르면서 완벽한 칼군무를 보여준다. 끝까지 상큼하고 여유 있게 웃고 있어서, 이 춤이 힘들다는 것이 전혀 와 닿지 않을 정도이다.
자타공인 힘 좋기로 유명한 나도 처음 영상을 보곤, 뭐가 그리 힘들까, 했으니까. 근데 우린 1절만 하는데도 영상 찍으며 풀파워로 두 번 추곤 선생님과 수강생 모두 다리가 풀리고 숨이 차서 말도 잇지 못했다. 누군가 실수하면 다시 찍는데, 누가 실수했어도 어차피 다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MBC 2020 설특집 아육대(아이돌육상대회-요즘은 '아이돌 스타 선수권 대회'라고 이름을 바꿨지만 여전히 줄여서 이리 부른다.)에 체리블렛이 출전했을 때, 나는 무조건 이 아이들이 다 이길 거라고 장담했다. <다만세>를 그렇게 완벽히 커버할 수 있을 만큼 훈련을 받았다는 것은 파워와 스피드, 폐활량이 대단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말이 맞았다. 체리블렛은 여자 60m 달리기, 400m 계주, 씨름 3관왕에 올랐다. 계주는 압도적이었고 씨름은 결승전 시작과 동시에 바로 상대편을 메다꽂아서 초고속 2연승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다만세>가 레전드인 구체적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체중감소에 특효이기 때문이다! 6개월간 난공불락이었던 내 몸무게도 줄었다.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필라테스와 간헐적 단식으로 아주 서서히 체중을 줄여서 8-9kg를 감량했다. 그리고 6개월 전 멈춘 채 지금까지 왔다. 방송댄스(최소한 2000년대 후반부터의 걸그룹 케이팝)를 운동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를 12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했거니와, 이론적인 것을 차치하고라도 케이팝반 수강생들이 살이 빠졌다거나 하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거 연습하는 2주 동안 체중이 1kg 줄었다! 그 정도면 화장실 한 번 갔다 오면 차이 나는 거 아니냐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속옷 바람으로 '경건하게' 체중을 재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 수치는 거의 일정하다. 차이가 나면 원인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냥 '이 몸무게가 이제 내 몸무게인가 보다' 했는데, 더 빠질 수 있다는 걸 <다만세>가 보여줬다.
유튜브에 '살 빠지는 케이팝댄스' 라던가 '무조건 살 빠지는 춤' 같은 제목의 영상이 많이 있는데, 쏘리, 안 빠진다. 어떻게 장담하냐고? 내가 다 배워봤거든! <다만세>처럼 레전드로 언급되는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2015)도 대단했고, 에버글로우의 <봉봉쇼콜라>나 <아디오스>(2019) 할 때도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세> 직후에 딱 맞게(요요방지용?) 보이그룹 안무를 배운다. EXO 첸백시의 <花요일>. 윽 EXO가 괜히 엑소가 아니구나, 하게 역시 너무 빠르고 파워풀하다. 춤추는 내내 온몸에 힘이 빡 들어간다. 하지만 땀이 줄줄 흐르진 않는다. <다만세>는 이 겨울에 반팔 입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해도 땀이 났는데.
요즘 보이그룹 안무를 제대로 하면 어느 정도의 근육운동과 유산소 운동이 되는 대신 내내 온몸에 힘을 주고 있어서 그런지 연습이 끝나면 힘이 쭉 빠지고 식욕이 쓰나미처럼 밀려든다.(그래서 맨날 남돌들이 안무 연습 쉬는 시간에 폭풍 먹방을 하는구나, 싶다.) 마치 우리가 먹고 사느라 하루 종일 종종 대고 진을 빼도 저녁에 밥 한 번 푸짐히 먹으면 도로아미타불인 것과 마찬가지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방탄이 신인 시절 연말 무대에서 커버했던 신화의 <Perfect man>이나 故김성재의 <말하자면> 같이 공중 발차기에 방방 뛰는 옛 안무를 하면 틀림없이 빠지겠지만 말이다.
전설의 걸그룹 안무이자 유산소 전신운동의 최고봉 <다만세>. 처음에는 이거 추자고 한 20대들에게 눈 흘겼지만 이젠 절하고 싶다. 다만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