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실네트워크 정유미 매니저
공공일호에는 실험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4층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LAB2050, 농사펀드 및 여러 미디어 스타트업 회사가 입주해 일하고 있습니다. 3층 learning Lab에서는 거꾸로캠퍼스와 온더레코드가 다양한 교육 실험을 하고 있고요. 공공일호에 어떤 분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공공일호 인터뷰]에서 전해드립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사, 생각,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5층 라운지에서 유미님을 볼 때마다 거꾸로캠퍼스 학생들과 있어서, 아마 유미님을 거꾸로캠퍼스 선생님으로 알고 계신 분도 있을 겁니다. 유미님은 (사)미래교실네트워크에서 콘텐츠 매니저 겸 국제홍보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맞는 공교육 실험을 위한 교사 중심의 모임"인 미래교실네트워크는 PD 출신인 정찬필 사무총장님과 더불어 초중고 교사들, 연구자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곳입니다.
유미님은 콘텐츠를 담당하는 역할로 합류했지만, 지금은 미래교실네트워크의 각종 행사 실무와 국제 커뮤니케이션까지 맡고 있습니다. 유미님은 자신의 일을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펑퍼짐한 영역"이라고 했지만,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결정할 일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지만, 요즘 가장 보람차게 일하고 있다는 유미쌤과 '일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안녕하세요. 유미님. 콘텐츠 매니저 여름입니다. 미래교실네트워크(이하 미크)에 합류하기 전에 언론사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이직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기자 일이 잘 맞고, 재미도 있었어요. 그때도 국제적으로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해외 기자 연수를 많이 알아봤는데요. 21개국의 기자들이 헬싱키에 모여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는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다른 나라에 저랑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젊은 기자들을 만났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가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신문사의 섹션 기자로 있는 저랑 그들을 비교해 보니, 나도 여기 밖에서 좀 더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 싶었고 그때부터 이직 고민을 시작했어요. 결국 자기 콘텐츠의 자신감을 가지려고 일을 하는 건데, 신문사에서는 독자층이 중요하잖아요. 제가 있는 환경에서는 만들고 싶은 콘텐츠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기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신문사의 제약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어요.
Q. 미크와는 처음에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2014년에 정찬필 사무총장님이 KBS PD 시절, 미래 교실을 찾아서 시리즈를 마치고 추적 취재를 할 때였어요. 21세기 교육 혁명 시리즈를 이어 제작하실 때, 그걸 제가 취재하면서 만나게 됐어요. 그동안 많은 교사조직을 봤지만, 미크는 뭔가 달랐어요. 보통의 교사조직은 주로 초등교육 중심으로 모여요. 그런데 미크는 초중고 교사, 전국 교사가 골고루 참여하고, 선생님들끼리 시너지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조직이었거든요.
이전에 많은 교사 조직을 취재하면서, 뭔가 풀리지 않은 답답함이 있었어요. 뭔가 미봉책 같은 느낌이랄까요? 지금의 대안으로 장기적으로 교육이 발전할 수 있을까? 교사의 자존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미크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학교를 바꿀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교사 스스로가 교육 혁신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선생님에게 심어주더라고요. 미크는 교사 조직의 구성원, 교사의 자존감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런 의미에서 미크는 유미님에게 어떤 직장인가요?
미크는 저에게 도전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미크에서 제가 담당하는 영역이 계속 넓어지고, 새로운 과제가 떨어지고, 신기하게도 루틴한 일은 하나도 없어요. 일이 끝나면 어디선가 또 일이 떨어져요.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일이 계속 벌어지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신기하고, 제가 건드리는 일이 너무 많아서 저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고요.
저는 2016년 7월 미크가 법인형태로 설립될 때 합류한 창립멤버거든요. 그때부터 함께 했던 사람으로 돌아보면, 미크에서 일하는 동안 회사의 일이 내 일이 되는 것에 대해 잘 배울 수 있었어요. 다양한 경험을 계속하게 되고요. 핀란드 HundrED Global이 2년 연속 미크를 혁신 교육기업으로 선정하고, OECD 교육국이 거꾸로캠퍼스를 'World Leading School'로 선정한 일이 다 제 일과 관련이 있거든요.
사무총장님이 아쇼카 펠로라 경험하게 되는 일도 있고. 때때로 최전방에서 일이 이루어지는 걸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또 뭔가 빚어나가는 느낌이고요. 거꾸로 캠퍼스는 그런 맥락에서 저에게는 힐링 공간이에요. 운영하는 선생님이나 아이들은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저는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고, 거꾸로 캠퍼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저에게는 힐링이죠.
Q. 직무를 넘어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키고 나는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래서 비로소 내가 할 일이다’라고 생각했다는 거네요. 한 끗 차이지만 되게 다른 생각인 것 같아요.
콘텐츠 매니저로서 첫 업무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글을 쓰는 거였어요. 되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형태로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자꾸 다른 일이 더 생기고, 초창기에는 애들 버스도 예약하고, 캠프 운영 실무도 했거든요. 처음에는 이렇게 미크에 오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쉬는 차원에서 일하자고 생각했고, 일이 자꾸 쌓이다 보니 저도 너무 화가 났어요.(웃음)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데 회사가 왜 돈을 못 주지? 신문사였다면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는 왜 그런지 사정이 너무 빤히 보이는 거예요. 초창기니까 어느 정도 헌신을 해야 월급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생각이 진짜 한 끗 차이더라고요. 화가 나는데 한편으로는 잘하면 나쁠 건 없겠다 싶었거든요. 제가 봐도 그 모든 일이 저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했던 일이었어요. 저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렇게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셜임팩트를 만드는 일에 동의한다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태도에 관해서도 미크에서 배운 것 같아요.
Q. 5층에서 유미님을 보면 항상 학생들과 함께 있는데요. 혹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특별히 좋았던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수업을 하는 교사가 아니고, 아이들을 예뻐만해서 아이들이 저를 쉽게 좋아해요. 수업하는 선생님은 때로 싫은 소리를 해야 할 상황이 있어서 아이들과 갈등이 생길 수 있거든요. 때로 내가 이렇게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게 선생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고민해요. 애들이 친구들하고 싸운 얘기, 선생님들과 어려운 얘기도 다 저에게 하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저를 거캠 (디스)패치라고 불러요.(웃음)
때론 애들이 공감을 요구하는데, 그것도 함부로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죠. 저는 누굴 편들어 주진 않아요. 그래도 아무에게 하지 못하는 얘기를 해줄 때 고마워요. 그래서 아이들의 믿음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학교 소속이 아닌 사람으로, 학교 커뮤니티 안에 들어와 있다는 위치가 때론 어려울 때가 있어요. 이렇게 걱정은 하는데 애들을 막상 만나면 잘 조심하진 못하고요.(웃음)
Q. 공공일호에서 일하는 경험은 어떤가요?
여기는 하나의 커뮤니티인 것 같아요. 커뮤니티를 위해 공간이 구성되어 있고, 커뮤니티 매니저도 있고요.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알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늘 거꾸로캠퍼스와 미크를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요. 때로 이 공간에서 그 힌트를 얻을 때가 있어요. 예쁘지만 화려하지 않은 공간에서 다양한 얘기를 쉽게 꺼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생각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Q. 일하지 않을 때, 유미님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요리를 좋아합니다. 교환학생을 스웨덴으로 갔을 때부터 쌓아온 스킬인데 장을 못 보더라도 냉장고에서 뭐라도 꺼내 음식을 만들어요. 요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매력적이에요. 저는 제 입맛을 아니까 딱 맞게 요리할 수 있잖아요.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힐링이죠. 내가 요리해서, 나를 먹여! 건강해! (웃음) 그런 일이 보람이 커요. 제가 동생이랑 같이 살다 보니 동생을 먹이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에요.
Q. 마지막으로, 유미님의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도 기사를 쓰고 싶어요. 기왕 영어로 일하는 거 영어로 써보고 싶어요. 그래서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야겠다, 해서 워드프레스를 결제했는데, 과연 본전을 뽑을 수 있을까?(웃음) 기사를 쓸 때의 영어는 일할 때 쓰는 영어랑 좀 다르구나. 내가 영어를 더 잘해야 하는구나. 그 단계까지 왔어요.(웃음) 미크의 목표로는 돈을 많이 벌어오고 싶다.
Q. 정말 사장님 마인드네요.(웃음)
그럴 수밖에 없어요.(웃음) 회사가 저희에게 강요하는 게 별로 없어요. 출퇴근 시간이 유들유들하고, 회의 시간만 맞춰달라고 하거든요. 그 와중에도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성장영역을 고민하고 챙기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모두 회사의 주인이 되어 있고요. 이게 미크의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유미님 덕분에 저의 일하는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