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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Oct 11. 2018

대학로와 3인의 근대건축가

[공공살롱] 1-2. 지금의 대학로 공간을 만든 3인의 건축가 이야기

박길룡, 김수근, 승효상 건축가 


대학로는 근대에 최고로 손꼽히는 건축가들의 건축이 모여있는 공간입니다. (구) 샘터사옥이었던 공공일호 건물 역시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이지요. 김수근 건축가는 공공일호 뿐 아니라 대학로의 여러 공간에 인장을 새겨놓은 건축가입니다. 1920년 허허벌판이었던 혜화동 일대를 아파트촌이 아니라 지금의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데 여러모로 일조했기 때문인데요.


혜화역에는 김수근 건축가 외에도 최초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박길룡 건축가, 지금까지 이화동에 건축사무실을 두고 있는 승효상 건축가까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건축가들의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박성진 (전) 공간편집장님과 함께한 공공살롱에서는 "대학로 건축, 시대를 초월한 3인의 건축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



박길룡 건축가는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건축가입니다. 경성고등 공업학교에서 졸업한 최초의 조선인이자, 건축을 고등교육으로 학습했던 최초의 조선인이었습니다. 박길룡 건축가는 졸업 후 조선 총독부에 취직했고, 당시 가장 높이 올라가라 수 있었던 건축 기사 직위까지 올랐습니다. 


“중앙청이라고 불렀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1990년대 중반에 해체됐는데요. 그 해체공사 당시 건물에서 쉰 두 명의 이름이 발견돼요. 조선총독부 건물에 관여한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그중에 조선인 최초로 박길룡 이름이 나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 때문에 박길륭을 최초의 건축가라고 말합니다.”


박길룡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이 바로 마로니에 오른편에 있는 “예술가의 집"입니다. 이 건물은 1931년 10월에 완성한 3층 건물로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광복 후에는 1972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 건물을 본관으로 사용해서 '구서울대학교 본관'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예술가의 집은 장인정신에 입각한 디테일이 곳곳에 설계된 건물입니다. 중앙 출입구의 반원형 아치가 특징적입니다. 점차 줄어드는 계단식으로 배치한 아치 덕분에 건물의 입체감이 두드러집니다. 이 아치는 내부 계단실, 로비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또 건물 벽을 가까이 보면, 벽돌 건물이 아니라 건물 벽에 타일을 붙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냥 타일이 아니라, 타일에 세로로 스크래치를 내고, 타일이 가지고 있는 재료의 질감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이 건물을 마감재로 꾸미고 있어요. 




건물을 장식하는 중간 허리띠를 보면요. 이것도 110도 정도 되는 각도로 꺾여 있습니다. 이 벽돌은 이 건물을 위해서 수공예로 제작된 셈이지요. 시공사와 건축주를 설득시켜야 하는 작업이라, 지금은 더욱 하기 어려운 작업입니다. 


많은 건축가가 벽돌을 다시 쓰고 있지만, 벽돌을 어떻게 쌓느냐에만 집착하고 있어요. 면과 면이 만나는 부분에서 벽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박길룡 건축가만큼 섬세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있죠. 그리고 벽돌 모양도 굵기를 달리하고 색깔을 달리해서 들쑥날쑥한 모자이크 모양을 만들었어요. 공간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공간을 둘러싼 벽돌 모양이 굉장히 섬세한 건물입니다.” 




대학로의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 



마로니에 공원의 이름은 마로니에 나무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마로니에 공원이 있기 전에 이 공간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있었는데요. 마로니에 나무는 그 시절 경성제국대학의 한 교수가 심은 나무였습니다. 


해방 이후에 이 공간에 서울대학교가 들어왔고, 1975년 관악산으로 이전하면서 마로니에 공원 일대가 허허벌판으로 비게 됩니다. 이때 대한 주택공사가 주거난을 해결하겠다고 이 공원 일대를 아파트 단지로 만들겠다고 나섭니다. 이때 이를 반대하고 저항한 사람이 바로 김수근 건축가입니다. 


“김수근 건축가는 당시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마로니에 공원을 문화예술의 장소로 남겨야 한다고 로비를 했어요. 샘터 발행인이었던 김재순 선생님도 국회 의장을 했던 정치인이라 같이 로비를 해서 마로니에 공원에 아파트 건립 반대 운동을 하고, 마로니에 공원을 지켜내게 됩니다.” 


김수근 건축가가 마로니에 공원을 두른 듯 세워진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극장 설계를 맡습니다. 스스로 지켜낸 공원이니만큼 마로니에 공원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아르코 건물 건축에도 담기게 됩니다. 특히 미술관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1층 입구가  김수근 건축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공간이었습니다.



“아르코 미술관 1층에서 제가 수업을 많이 하거든요. 수업 참가자들에게 여기가 어떤 장소같냐고 물으면, 열 명 중 여섯 명은 ‘공원이요. 미술관이 아닌 것 같다’라고 해요. 엄연히 말하면 미술관의 공간이지만, 마로니에 공원과 아르코 미술관이 문턱이 없어서 마로니에 공원의 분위기가 미술관까지 흘러들어오고, 미술관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든 거죠.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닌 중간지대. 김수근에게는 한옥의 마당 같은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마로니에 공원과 긴밀하게 관계하고 서로 배려하는 아르코 미술관과 아르코 예술극장 건물, 역과 도로가 생기기 전부터 광장을 상상하고 설계한 공공일호 건물까지. 지금의 대학로 풍경은 아주 일찌감치 김수근 건축가의 상상 속에서 구현되어 있던 셈입니다. 


상업적 거리의 인상을 바꾼 건축가 승효상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대학로 문화공간', 이 건물이 있기 전에 이 공간은 700평 되는 민간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대학로에서 만나자' 하는 건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말일 정도였어요. 주차장 근처로 빼곡하게 술집, 재즈바가 들어섰죠. 이 주변의 사업화 속도가 얼마나 빨랐냐면, 10년 사이에 땅값이 100배가 오를 정도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승효상 건축가는 건축의 표정과 건물의 물성으로 거리의 상업성을 중성화 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굉장히 담담하고 무표정한 건물을 설계합니다.”


대학로 문화공간은 출입구가 따로 없이 야트막한 계단이 나 있습니다. 콘크리트 담장으로 두른 건물 내부에는 맞은편 골목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골목처럼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점에서 박성진 편집장은 김수근과 승효상의 건축적 대화의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샘터 사옥이 1층을 채우지 않고 광장을 만들어낸 것처럼, 승효상 건축가도 이 건물의 1층 공간을 새롭게 구상합니다. 이 건물 안에 골목을 하나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건물 양쪽에 있는 상점들은 가운데 하나의 길을 낀 형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고립지와 계단, 골목이 한 건물에 얽혀있는 모양인데요. 아마도 샘터 사옥에서 승효상이 가졌던 건물의 기억이 자기 어휘로 각색돼서 대학로 문화공간에 발현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로라는 공간으로 살펴본 세 명의 건축가와 그들의 건물. 다른 환경에서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안과 밖 주변의 맥락을 섬세하게 고려한 점에서 세 건축이 시간을 넘어서 소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공간이 한층 깊어진 기분이 듭니다. 예술가의 집을 지나갈 때, 다시 한번 아치 형상에 눈이 가고, 아르코 미술관 1층 광장을 들여다보고, 대학로 문화공간의 표정을 다시 한번 눈여겨보게 되지 않을까요. 공공그라운드 콘텐츠 매니저 여름이었습니다. 





** 공공살롱에서는 매달 다양한 주제로 의미 있는 건축과 공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달 10월 13일 열리는 공공살롱에서는 어린이의 관점에서 공간에 접근하는 EUS+건축사무소와 C-program이 함께 ‘어린이와 공공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165405/items/288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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