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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언니 백예진 Aug 02. 2024

공간에도 토털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



요 몇 년 새의 국내 공간 업계를 한 단어로 정리해 본다면 ‘춘추전국시대’일 것 같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이토록 개성 있는 공간들이 매년 혹은 매달 쏟아져 나올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날로그 손편지와 유럽의 오래된 건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카페와 비밀 파티룸을 콘셉트로 한 와인숍,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분위기와 세계관을 연출한 칵테일바 등등.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소위 ‘핫플레이스’라는 곳들을 찾아갔다가 나조차 생각해 본 적 없던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가끔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오래 남는 공간들을 모아 보면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공간의 모든 요소가 동일한 콘셉트를 보여주면서 멋진 스토리까지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곳들은 그저 외양만 예쁜 게 아니라,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바닥과 벽, 천장. 공간을 채운 가구와 오브제, 소리, 빛과 어둠 등 시선과 후각, 촉감이 닿는 모든 곳에 공간 기획자가 심어둔 의미와 메시지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공간들에 방문하거나 머무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좋은 경험을 했다고 느끼고, 공간과 경험을 기억 속에 오래 간직하게 된다.  



더 코나가 ‘토털 디자인’을 공간 작업에 본격적으로 접목하는 까닭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공간 업계에서 최근 떠오른 개념인 ‘토털 디자인’이란, 공간 디자이너가 단순히 의뢰인의 요청에 따른 설계와 시공이라는 기술적 영역에 역할을 국한하지 않고 전체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로직과 공간 사용자의 경험까지 종합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을 말한다. 공간 구조는 물론 인테리어와 가구 스타일링, 벽면이나 가구에 둘 오브제, 문 손잡이, 전자제품, 부엌의 그릇들, 조명 스위치 버튼, 그리고 공간에 은은하게 번지는 향까지도 제시하는 방식이다.    



지금이야 ‘토털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빌려 설명하지만, 사실 ‘토털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어디서 가져오거나 특별히 배운 적은 없다. 대신 직감적으로 습득했다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부터 마트나 카페 같은 상공간에 가면 공간의 부분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전체를 파악하려 드는 버릇이 있었다.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공간이어도 인상이 저마다 전부 달랐는데, 그건 인테리어가 예쁘다, 촌스럽다 정도로 단순하게 갈라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떤 곳은 오래되고 낡았음에도 공간을 이루는 가구나 소품 같은 요소들이 단정하고 깔끔하게 어우러져서 마치 방해물 없이 흐르는 평안한 물길처럼 하나의 결을 가진 인상을 주는 반면 어떤 곳은 얼마 전 새로 오픈한 곳임에도 공간의 요소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제각각으로 어긋나서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시간이 흘러 학부 생활을 하면서 공간에 관해 느끼는 이러한 인상들이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라 그 공간을 잠시라도 점유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감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주 공간을 주로 다뤘던 사업 초기엔 매 프로젝트를 마칠 때마다 아쉬움이 컸다. 내 역할인 실내 인테리어를 열심히 해서 공간을 멋지게 완성해도, 시공 후 집에 들어오는 고객의 가전이나 가구들이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못하고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시간이 갈수록 그 점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덤처럼 고객에게 인테리어와 어울릴 무드의 가구들을 먼저 조언해 주던 것을 시작으로 점점 가구를 넘어 소품이나 조경, 가드닝까지 함께 고민하고 직접 찾아 골라드렸고, 이 부분에서 고객들의 만족도가 뚜렷하게 상승했다. 



'스테이 세모정원'은 외부로부터 철저히 보호되어 몸과 마음을 스르르 내려놓고 쉴 수 있는 무해한 휴식처를 콘셉트로 잡아 진행한 토털 디자인 건축 프로젝트였다. 
무해한 순두부를 닮은 화이트 컬러 구조와 정원 콘셉트에 꼭 알맞은 조경을 직접 스타일링했다. 
실내 인테리어 역시 소품과 조경, 가구를 전부 스타일링했다.



동시에 상공간 프로젝트에서도 점차 디자인 영역을 확장했다. 실내 인테리어에 부여한 클라이언트의 운영 철학이 네이밍과 로고부터 간판, 패키지, 직원들의 유니폼, 심지어 공간에 흐르는 음악이나 향과도 완전히 합일될 수 있도록 전략적이고 종합적인 디자인을 시도했다. 실내 인테리어만 하던 디자이너들이 브랜딩 영역까지 하려니 처음에는 시간이 몇 배로 들고 고충도 많았지만, ‘종합적인 디자인’이어야만 공간의 정체성이 생기고 브랜드 경험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것과 그 완성도가 곧 더 코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자 즐겁고 의미 있는 커리어 발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 코나의 상공간 토털 디자인 대표 사례로는 천안의 메디그린 한방병원을 꼽을 수 있다. 2023년부터 1년여간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공간 사용자 경험을 위한 토털 디자인을 전면에 드러낸 첫 사례로서, 1500평에 달하는 대형 한방병원 공간을 시대와 발맞춘 세련된 인테리어로 리뉴얼하면서 병원 운영 전체에 필요한 BX까지 통합적으로 디렉팅한 경우였다. 기존의 한의원 또는 한방병원이 가진 고루하고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되 한방과 양방의 통합 치료를 제공하는 이곳의 진료 철학인 ‘치유’라는 키워드를 공간과 브랜드 양측면에 효과적으로 담아야 하기에 어느 때보다도 확실한 콘셉트와 꼼꼼한 설계가 요구되었다. 


메디그린 한방병원은 숲속 콘셉트에 따라 부드러운 민트, 딥그린의 컬러를 사용해 안정되고 차분한 느낌의 공간을 연출했다. 자연석 질감의 대리석 등 마감재에도 일관된 콘셉트를 적용했다
별이 쏟아지는 듯한 모티브로 디자인한 로비 조명, 오솔길을 걷는 듯한 동선과 소파 디자인.
약탕 패키지(좌)와 브랜드 어플리케이션(우)까지 모두 더 코나가 직접 디자인한 상공간 토털 디자인 사례이다.



우리는 우선 별이 총총히 박힌 밤 아래의 숲 속 오솔길을 공간의 콘셉트로 설정하고 그곳을 소요하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람을 페르소나로 수립했다. 메인 컬러를 민트와 딥그린, 뉴트럴 베이지로 정한 뒤 로고와 서체 등의 CI부터 구축하고, 공간 내부는 CI와 같은 결의 유기적 곡선을 모티브로 한 가구와 밤하늘을 이루는 별자리를 닮은 웅장한 천장 조형물, 자연친화적인 플랜테리어로 채웠다. 조경의 경우 워낙 평수가 넓어서 타 업체에 별도로 의뢰하면 수천 만원의 견적이 드는 크기였지만, 공간 브랜딩과 일체감이 들도록 조성하기 위해 우리 팀 디자이너들이 직접 자갈과 식물들을 골라다가 옮겨 심었으며 약탕 패키지, 아로마 디퓨저, 직원의 유니폼 등의 애플리케이션 디자인까지 제공했다. 다소 고집스럽고 미련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톤 앤 매너를 유지시키는 디테일들이 바로 좋은 공간을 완결 짓는 중대한 부분이다. 



토털 디자인으로 완성한 공간들은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클라이언트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고 좋은 후기가 꾸준히 이어진다. 그 덕에 도시에 하나의 좋은 공간을 만들었다는 보람도 크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좋은 공간에서 얻는 경험이란 정말 귀하다. 좋은 공간은 그 가치만큼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고, 그곳에서 귀한 경험을 한 개인과 그의 삶, 또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까지도 변화하게 한다. 개성 있는 공간들이 난무하는 공간의 춘추전국시대에서 토털 디자인을 다시금 돌아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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