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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언니 백예진 Aug 09. 2024

스페이스덴티티, 공간을 통해 ‘나’를 표현하기



인테리어를 주요 콘텐츠로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의 ‘집들이’ 메뉴에 접속해서 내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남의 집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구경하며 랜선 집들이를 하고, 그러다 그 집 소품들 중 맘에 드는 것을 클릭 한 번으로 구매하는 일. SNS 속에서 나와 비슷하거나 내가 동경하는 일반인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우하고 그들의 게시물에 나타난 인테리어 오브제나 기기, 가구를 구매하는 일. 혹은 반대로 나의 정체성과 감성에 맞춰 한껏 꾸민 집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SNS나 유튜브를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드러내는 일. 집을 넘어 직장 사무실의 책상이나 자동차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꾸미고 타인에게 수시로 공유하는 일. 



이전에는 전업 주부의 관심사로만 여겨졌던 ‘일상 공간 인테리어’가 언젠가부터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에는 주부들이 많이 보는 아침 시간대 TV 방송 혹은 리빙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타인의 집 내부를 황금 시간대 예능 방송 속에서, 또는 손바닥만 한 휴대폰 모니터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상 공간뿐만 아니라 여행지의 숙소, 카페, 맛집, 팝업스토어 등 내 취향과 감성에 꼭 맞는 공간들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그곳에 머문 모습을 인증샷으로 전시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방문하거나 머무는 공간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나의 취향, 나아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경향인 ‘스페이스덴티티(Spacedentity)’가 MZ세대 중심으로 유행하는 흐름에 따라 더욱 확산되는 추세이다. 



나 역시 신혼 때부터 전셋집일지라도 매번 나의 정체성과 스타일을 반영해서 공간을 기획하고 취향을 담아 고쳐 살았다. 주변 지인들은 ‘어차피 남의 재산인데 뭐하러 네 돈 들여 그 사람한테만 좋은 일을 해 주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나다움’이 반영된 공간,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남의 재산일지라도, 단 하루를 살 지라도 그곳은 ‘내 집’이었다. 내 소유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휴식과 안식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공간을 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살 순 없었다. 내가 늘 강조하는 ‘좋은 공간’에서의 경험과 그로 인해 얻는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드물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미감이 특출한 재력가나 연예인, 예술가 혹은 업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생활공간 인테리어에 취향과 관심사를 두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놀랍게도 이것이 완전히 바뀌어서, 공간에도 감성이나 취향을 적용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사람으로 보이는 시대가 왔다.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진행하며 그들의 니즈나 심리를 분석하다 보면 지난 15년과는 확실히 다른 바람이 느껴진다. 요새 클라이언트들은 아주 구체적이고, 커스터마이징을 선호한다. 이전에는 정말 이 분야에 관심도가 높아야만 알 수 있었던 유니크한 자재나 고가의 수입 제품들도 꽤 알고 있다.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자재라든가 가구 등의 가격대가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업계의 달라진 흐름이 반가우면서도 일면 얼떨떨하다. 



우려되는 지점도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발산하는 게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실 취향이라는 게 당장은 확고해 보여도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 업계 종사자로서 조심스레 말해보자면 공간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 꼭 필요한 것 위주로 시공하던 이전의 경향에 비해, 남들에게 보여질 부분을 의식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공간까지 추가로 설계하고 시공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져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살펴보지 않은 채 현재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것들을 죄다 끌어와 이것저것 다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숱하다. 충분한 상담을 통해 고객을 설득하고 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설득이 영 어려울 때는 솔직히 퍽 난감하다. 



나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공간 경험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지, 기대과 염려가 공존한다. 공간 경험이 단지 하나의 스쳐가는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가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왜 좋은지 그 이유까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셜미디어나 대중매체에서 유행 중인 취향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공간과 연결된 나 자신의 과거 경험과 기억을 파고들어 관찰하는 게 좋은 시작일 것이다. 과거 경험 중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좋았던 부분을 되짚어 음미하고 문장으로 기록해 보면서 공간을 보는 나만의 관점을 기르는 것. 그리고 어느새 단단해진 관점을 나의 공간에 옮겨 보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스페이스덴티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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