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글, 사람이 쓴 마음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서사와 감정의 힘

by fabio Kim

창밖으로 빗방울이


유리면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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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물결무늬 속에 도시의 불빛이 비틀려 보였다


나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방금 생성된 누군가의 문장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정교하게 짜여진 언어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경험 없이 태어난 말이었기 때문이다


문장은 완벽했다, 문법적으로 흠잡을 데 없었고


어휘는 정교했으며,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 내 "숨결’ 은 없었다.


그 글은 누군가의 아픔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지만


그 아픔을 ‘겪은’ 사람은 없었다


마치 진동 없는 심장 박동기처럼, 리듬은 있었으나 생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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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오래된 나의 일기장을 자주 본다


종이 가장자리는 시간이 남긴 바랜 흔적을 지니고


볼펜 자국은 종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채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 자국은 바래고 번져가며 흔적이 되었다


"한 문장이 눈에 밟혔다"


그날, 우산을 잊고 걸었을 때, 비는 내 마음을 적셨다


그 문장은 어색했고, 논리보다 감정에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그 어색함 속에 내가 있었다


그 비는 기상청의 강수량이 아니었고, 우산도 단순한 방수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외로움의 은유였고, 상실의 감각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다시 그 빗속을 걷고 있었다.


발밑의 물소리, 옷깃에 스며드는 차가움, 그리고 마음 깊이 스멀스멀 번지는 그 순간


그것이 ‘겪음’ 이었고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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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쓴 글은 '겪음'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수많은 서사를 분석하고, 감정의 패턴을 학습하지만


그 감정을 ‘내 것’으로 삼은 적은 없다


슬픔은 통계고, 기쁨은 단어의 조합일 뿐이다


기술은 ‘표현’을 모방할 수 있지만, ‘겪음’에서 우러나는 서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일까?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기억의 저장소가 아니라


감정을 서사로 전환하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문장, 어색한 표현, 흐트러진 논리 속에


오히려 진실이 자리 잡는다


‘완벽함’과 ‘진실함’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두 개의 차원이다


기술은 전자를 향해 나아가지만, 인간은 후자를 향해 글을 쓴다


떨리는 손으로 적은 한 줄이, 교정된 백 줄보다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한 줄에 ‘겪은 시간’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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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감정이 서사로 전환되는 순간의 산물이다

.

그 전환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마주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자기 인식의 도구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그러면 질문은 남는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기술이 똑같이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겪음’의 독점은 어디로 가는가?


‘내가 쓴 마음’은 단지 생물학적 한계에서 비롯된 착각일까?


아니면, 그 착각 속에 오히려 인간만의 ‘본질’이 자리 잡고 있는가?


빗소리는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키보드를 밀어내고, 종이 위에 펜을 댄다


볼펜이 종이를 긁고, 글자가 삐뚤어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글은, 분명히 살아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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