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말씀 묵상
오늘 교회는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요셉 대축일을 지낸다.
성요셉은 성경 안에서 많은 말씀을 남기신 분은 아니지만,
그 침묵 자체로 오히려 더 깊은 믿음을 보여 주는 성인이다.
매일 미사는 성요셉을
나자렛에서 목수로 살아간 의로운 사람,
성모 마리아의 배필,
성가정의 수호자,
그리고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로 소개한다.
그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지켜 드린 분이었다.
오늘 신부님 강론에서는 《성경은 드라마다》라는 책이 소개되었다.
신부님께서는 성경을 하나의 드라마에 비유하시며,
그 안에서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말씀하셨다.
단연 이 드라마의 주연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탄생과 숨은 생활, 공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은
인류 구원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드라마 안에는
겉으로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 있다.
바로 성요셉 성인이 그 중 한 분이다.
나는 오늘 그분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말로 하느님께 순명하셨다.
반면 성요셉은 말 없이
삶 전체로 순명을 드러내신 분이었다.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자기 생각과 계획을 앞세울 수도 있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듣고 받아들였으며
자기 삶의 자리에서 그 부르심을 충실히 살아 냈다.
그래서 성요셉의 믿음은
말로 증명된 믿음이라기보다
침묵과 책임, 보호와 순명 안에서
삶 자체로 드러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오늘 강론을 들으며
문득 마종기 시인의 시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가 떠올랐다.
생명을 노래한 시인 마종기는
낯선 타국에서 의사로 살아가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인간 생명의 따뜻함을 시로 길어 올린 사람이다.
그에게 시는 위로였고, 구원이었으며,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과 희망을 붙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시집 제목은 로마서의 말씀에서 왔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 8, 24-25)
이 말씀은 희망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희망은 이미 눈앞에 있는 것을 붙드는 태도가 아니라,
아직 다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믿음이다.
성요셉은 바로 그러한 희망의 사람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확실함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였고,
자신의 계산보다 하느님의 계획을 앞세웠다.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삶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가장 빛나는 순명의 삶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너무 쉽게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돈과 권력, 지위와 성취,
집과 차와 같은 물질적 가치에 매여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놓칠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관계는 메말라 가고,
마음은 무뎌지며,
신앙마저도 눈에 보이는 결과로만 판단하려 할 때가 있다.
바로 그때 성요셉의 삶은
우리에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 준다.
믿음은 설명보다 순종에 있고,
희망은 소유보다 기다림에 있으며,
사랑은 드러남보다 책임지는 삶 안에 있다는 것을.
마종기 시인의 시구를 빌리자면,
희망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을 느끼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먼 길을 더듬어 가는 삶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성요셉 대축일을 지내며
나는 오늘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가.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