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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는 싱가폴 은행에 취업했을까?

맨땅에 헤딩한 싱가폴 취업썰

네이티브 스피커인가요?


싱가폴 로컬 은행 3대 은행중 하나에 한국인이 취업했다. 

싱가폴에 살았냐고? 

해외에서 대학나왔냐고?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았냐고?


모두 No!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해외에 취업해서 일해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비자를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영어를 쓰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고민하다가 싱가폴과 홍콩에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두나라를 모두 여행으로 가보고 왠지 모를 이끌림에 나는 나이 30에 싱가폴로 떠나기로 선택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나? 

나는 한국에서 IT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그 때 갑자기 이럴 때 휴직계를 내면 좀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맘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아!

엄마의 말에 힘입어 나는 빠르게 휴직계를 내고 그 다음날로 싱가폴로 가는 티켓을 샀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작은 수트케이스에 싱가폴로 이력서만 몇장 프린트해서 떠났다. 아는 지인은 한명도 없었고 가족도 4촌 6촌 8촌도 없었다. 비싼 호텔비가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호스텔에 묵으며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갔을 때에 묵은 호스텔은 직원들이랑도 교류가 없어서 내가 왜 싱가폴에 왔을까 이러면서 재미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운명처럼 호스텔을 옮기고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나는 열심히 이력서도 내고 사람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갔을 때는 한국인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말고 정말 해외에 나온 것처럼 나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방편으로 로컬 친구들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처음에 2주는 연락오는데도 없고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힘들기도 했다.

그렇게 끝났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텐데... 결국 나는 최종적으로 4가지 오퍼를 받았고 그 중 물론 커리어 체인지가 있었지만 싱가폴 로컬은행에 들어가게 되었다. 



싱가폴 취업의 성공 포인트 3

성공 포인트 1. 3월에 떠나게 되었다는 점

나는 우연치 않게 3월에 떠나게 되었는데 싱가폴에서 3,4월은 이직 피크 시기이다. 

바로 2월에서 3월에 성과금이 나오는 시기로 성과금을 받고 보통 이직을 많이 도전한다. 또한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신규 사업들을 기획하고 실행해나가며 그 때 많은 인원을 뽑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간 시기에 다른 달보다도 채용 공고가 많이 올라왔다 :) 

정말 그 부분은 하늘이 나를 도왔다고 생각한다. 


성공 포인트2. 한국인 친구들을 사귄 점

처음에는 외국에 왔으니까 정말 로컬다운 삶을 살겠다고 한국 친구들을 만들지 않았다. 뭔가 교민사회가 작아서 소문도 많은 것 같고 행실을 조심히 해야할 것 같은 맘에 한국 친구들을 사귀지 않았다. 그러다가 뭔가 아 한국어도 쓰고 싶고 너무 심심하다 이런 마음에 한국 친구들 모임을 찾아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해외에서 동포들을 만나면 마구마구 도와주고 싶고 이런 마음이 들어서인지 우리 회사에 레퍼해줄게, 즉 추천해줄게 이런 기회가 많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는 싱가폴 로컬은행 U은행에 취업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은 싱가폴은 추천해서 취업이 되고 또 오래 다니면 추천한 사람이 돈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ㅎㅎㅎ


성공 포인트3. 직무별로 다르게 이력서를 준비한 점

이건 어찌보면 커리어보다도 취업만을 고민했던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는 해외에 취업하는게 목표였고 또 사실 네이티브도 아니고 비자도 없는 내게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거라 생각해 다양한 버전의 이력서를 준비했다. 그 말은 차라리 빈 공백이 있더라도 내가 연결점이 있어보이는 이력서로 보이려고 다양한 버전을 써서 갔다. 그리고 다행히 그게 먹혀서 IT부터 헤지펀드, 은행, 오일앤가스 이렇게 네 군데서 오퍼를 받았다. 이 중 은행을 가게 되었고 싱가폴에서 4년이란 시간 일 해보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해외 취업을 추천할까?

어렸을 때 어학연수하고 유학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는데 해외에서 돈 버는 것은 그냥 생활하는 것을 넘어서서 너무나도 짜릿했다. 물론 나도 교환학생을 하긴 했지만 정말 돈이 너무 없어서 2유로짜리 햄버거로 버틴 날도 많았기 때문에 돈 벌면서 해외에서 내 생활을 즐기고 책임질 수 있다는 기분은 아주 째졌다. 


하지만 정말 외노자이기 때문에, 주재원으로 나가 본사가 날 지켜주는 것도 아니었고 해서 너무나도 힘들었다. 싱가폴 매니저한테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고 나의 KPI를 지키기 위해서 내 로컬, 외국인 동료들보다 한 1.5배는 더 일한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추천한다. 돌아와 보니 보이는 것이 다르고 내 인생의 좀 더 깊이를 더 해준 점은 확실하게 인정한다. 그 때는 몰랐는데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과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 보는 시각들을 확실히 넓혀주었으며 회사에서 일할 때에도 언뜻 내가 주는 피드백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힘이 실리는 것이 있다. 그래서 나는 100% 추천한다. 


혹시라도 해외취업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스펙이 걱정되거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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