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을 읽고 나서

by 인규

인식하는 순간 파동은 숫자가 된다.

모든 가능성들을 한데 모아 뱉어낸다.

모은다는 것은 곧 버려지는 것.


미지수와 연산 기호는 결과를 특정하지 않는다.

숫자는 함수를 알려주지 않는다.

수식은 의미를 담아내지 않는다.

확률은 미래를 알려주지 않는다.

집단은 개인을 특정하지 않는다.

단어는 사람을 전달하지 않는다.

파도는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파도는 어디로 흐르는지 모른다.


숫자는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몸부림이다.

확률은 미래를 살고 싶어 하는 염원이다.

낱말은 밖으로 터져 나온 반항이다.

파도는 세상을 주무를 수 없는 무력감이다.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도약과 떠밀림 사이에서,

성취과 허탈감 사이에서,

순환하는 세상과 막다른 세상 사이에서,


쓰고 지우다

말하고 침묵하다

주저하고 주저하다

전달하는 것이 없어 침묵한다.

전달하는 것이 없어 토해낸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모른 채 숫자를 본다.

어디를 가르치는지 모른 채 수식을 쓴다.

끓어오르는 열기를 삭히고 밀고 올라와 빈 공간이 생길 때

냄비뚜껑에 넘쳐흐르는 공기방울처럼 단어를 토해낸다.

그리고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 다시 바다로 떠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는 총성이 들리면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