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예비 심사를 보며 든 잡생각

나를 정의하는 두 가지 틀에서 기인한 간극

by 인규

오늘은 선배들의 박사과정 졸업 예비 심사를 보며 든 잡생각들을 정리하고자 글을 시작해 본다.


학부생 인턴 때부터 박사 졸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교수님들께서 질문하는 내용의 본질은 항상 같았다.

1) 지금까지 수행한 연구를 통해 어떠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하는 박사라고 칭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과

2) 해당 연구의 목적과 활용, 졸업 이후 연구 관련 질문이었다.


이러한 심사 과정을 지켜보며 스스로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게 되는 기회가 되어 매번 졸업 심사를 볼 때마다 나의 연구에 대해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번 박사과정 졸업 심사 이후에 맞이하게 될 연구실에서의 다음 박사 졸업 심사는 나 자신이거나 동기들이 될 거라 생각하니 더더욱 이입하며 바라보게 되는 느낌도 있다.


어떠한 점에서 연구가 새로운지, 어떠한 점에서 나라는 사람이 전문성을 지니는지를 설득하는 과정은 정말 평소 스스로 지내오는 방향성과 너무나 결이 달라서 피하고 싶은 생각의 틀이다. 이는 개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과 결부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라는 사람이 나라는 틀에서 정의되는 것과 사회 내에서 정의되는 틀이 각각 다르게 기능하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서의 간극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라는 틀에서 정의하는 것과 사회 내에서 정의되는 것 모두 나 스스로 정의해야 하는,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더욱더 이 간극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간단히, 해당 연구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린 자연스럽게 두 자아를 동시에 펼쳐서 고민한다. 나라는 틀에서 정의된 바에는 해당 연구를 하는 이유는 재밌어 보여서 한 거다. 아니면 어쩌다 보니 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냥 했다고 말할 수도 있고, 낭만 있어 보여서. 하다 보니 괜찮아서.. 등등의 답변이 있다. 하지만 사회의 틀에서 정의된 바에서는 해당 연구의 범용적 쓰임새나 학계의 트렌드에서 어떠한 물음에 답한 것인지를 명료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임팩트로 본인이 연구를 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할 것이다.


취업을 준비해 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지만, 이러한 간극은 입사 지원 동기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사회를 위해, 기업을 위해 얼마나 쓰임새 높게 기능할 것인지 주장하는 것은 사회(직장)이라는 틀에서 정의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국가과제나 산학과제 제안서를 작성하고 이러한 과제를 통해서 연구실이 유지가 되는 시스템인데, 과제 제안서에서 해당 과제를 왜 하는지 서술할 때도 당연히 본 연구실이 얼마나 훌륭하고 원천성 있는 연구를 해낼 수 있는 연구실인지 구체적인 연구 추진 전략과 기대 효과 등을 적으면서 설득하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사회에 알려야 하는 순간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나 자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논할 때 그만큼 나라는 틀에서 정의하는 나는 잠시 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순간을 생각보다 매우 싫어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나라는 틀에서 오롯이 나를 바라보며 마음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별 뜻 없이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조금씩 진행된 연구"에 사회적 시야와 트렌드를 상상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마치 거짓말 치는 것 같고 과대포장하는 공정 같게 느껴져서 약간 불쾌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 부정적인 마음을 해소하고자 일부러 이러한 의미 부여하는 과정을 평가절하하기도 하고, 대충 말하는 투로 대답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아를 인식하는 간극에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어떠한 한 부분을 평가절하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정의한 틀을 인지한 상태에서 말을 하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연구를 하는 이유를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과감하게 사회적 틀에서 나름 판단해 본 나 자신에 대해 서술하고, 사회와 독립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나라는 틀에서 바라보는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 더 편안하게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리고 이전에 "그냥"이라는 단어를 정의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이 혼재된 어지러운 상태에서는 그냥 한다는 약간의 반항적인 단어 선택을 통해 고의적으로 쉼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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