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문장은 아니지만, 세상을 올곧게 보기 위해 나 스스로 자주 되뇌는 생각이 있다. 이는 바로, 이 세상은 모두가 각자로서 특별하여 특별할 건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해당 문장으로 나아가게 된 사고의 흐름을 자세히 나열해 보고자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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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이 높다는 것은 수요보다 공급이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원하는 만큼 공급해 주기 힘들 정도로 적은 상태. 여기서 희소성을 말하는 집단은 해당 자원과 관련된 페르소나 집단이다. 희소성을 논한다는 것에는 산업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전제되어 있다.
특별하고 하는 것의 집단은 그럼 무엇일까. 여기서는 사실 집단이 없다. 희소성과는 달리, 특별하다고 하는 단어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틀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 집단이 없는데 특별하다는 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밝힌 특별의 사전적 의미는 "보통과 차이가 나게 다름"이다. 그럼 다시 보통을 정의해야 하기에 어려워진다. 다시 보통을 국립국어원에서 찾아보면 보통은 "일반적으로. 또는 흔히."라고 나온다. 해당 정의를 이어받으면, 특별은 "일반적인 상태와 차이가 나게 다름"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그리고 평범, 일반적임, 보통, 특별, 흔하지 않음 등등은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라 정의가 쉽지 않다. 즉, 일반적인 상태와 차이가 난다는 것에서 일반적인 것, 평범한 것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특별함의 정의도 달라진다.
이제 그럼 특별함과 평범함을 정의 내릴 차례이다.
일반적이라는 것을 통계적으로 접근해 본다면 평균값, 최빈값, 중앙값 등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떠한 것의 평균, 최빈, 중앙값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뭐의 통계를 내려고 하는지도 애매하다.
우선, 통계적으로 보는 게 맞는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두고 무엇에 대한 특별함과 평범함을 논하고 있는 것인지부터 파악해봐야 한다. "너는 특별해"라고 했을 때 무엇에 대한 특별함을 말한 것인가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를 위하여 "특별"이라는 단어의 용례로 10개의 문장을 나열해 보았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야.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특별해.
이 선물은 너를 위한 특별한 것이야.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편지를 썼어.
오늘의 저녁은 특별한 요리로 준비했어.
너의 웃음이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특별한 순간을 잊지 않도록 사진을 찍자.
우리는 특별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 음악은 내게 특별한 기억을 떠오르게 해.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어.
재미난 점은 어떠한 문장에서도 무엇에 대한 특별함인지 파악할 수가 없고 이를 설명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파악할 수 있다. 특별한지 아닌지 오로지 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했다는 점이다.
"나에게 있어 오늘은 특별한 날이고 특별한 순간이고, 특별한 인연이고 특별한 기억이다."
"나에게 있어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특별하고, 너라는 인연이 특별하다."
애초에 특별함과 평범함이라는 단어는 무엇에 대한 특별함, 무엇에 대한 평범함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통계 집단 (Z)가 정의될 수 없으므로 평범함은 평균값인지 최빈값인지 등의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까지를 정리해 보면, 평범과 특별을 나누는 기준이 개개인에게 있으며, 무엇에 대한 평범과 특별인지 비교 집단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럼 나에게 각인된 모든 것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평범하다고 볼 수 있다.결론적으로 특별을 다르게 정의해 보자면, 특별은 "나의 마음에 각인된 대상"이라는 뜻이다.너무나 유치해 보이는 판단 방식인 것 같기도 하며 매우 힘 빠지는 결론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개인에게 그냥 판단을 맡기고 마음대로 특별과 평범의 칭호를 붙이도록 놔두었다는 점에서 두 단어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였다고도 볼 수 있는데, 어떠한 누구도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태를 해소할 수 없다는 면에서 매우 강력한 단어들이다. 나 자신이 무엇에 대한 특별함인지도 판단하지 않은 채 특별과 평범을 구분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평가기준은 얼마나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가가 될 것이다. 그럼 내 마음에 가장 각인되어 있는 것은 내 마음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럼 나는 내 기준 가장 특별하다는 선언이 가능하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대상은 나 자신이기에, 나는 나로서 가장 특별하다는 선언도 가능하다. 이는 비교 집단을 나로 한정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특별이라는 단어를 선언할 유일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근데 나는 나로서 가장 특별하다는 선언을 하고 있는 개개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었다.
여기서 두 개의 큰 물음이 가능하다.
Q1.나를 가장 특별하다고 선언한 개개인이 모여있는 것이 사회이기에 특별함은 희소성을 잃게 되는 것인가?
Q2. 만약 특별함이 희소성을 잃게 되면 그만큼 사람의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Q1부터 답하기 위해서는 각자만의 특별에 대한 판단 기준에 일관성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여기서 일관성이 있는가를 말하려면 어떠한 점에서 어떻게 일관성이 있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근데, 위에서 제시했듯이, 특별이라는 단어에는 어떠한 점에서 어떻게 특별한지를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일관성이 있는지 아닌지를 제시하기 이전에, 일관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Q1에 대한 대답은 특별함은 희소성을 잃게 된다는 선언이다. 이에 대한 요약이 첫 문단의 선언, "이 세상은 모두가 각자로서 특별하여 특별한 것이 없다"이다. 해당 선언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은 모두가 각자로서 특별하여 특별은 희소성을 잃었다"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Q2에 대한 대답으로 넘어가 보겠다. 특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희소성을 잃어버렸다면,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희소성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방금 특별을 정의한 방식에 따르면,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상대방에게 본인을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행동을 분석할 때 경제학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면, 이는 본능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를 전제한다면, 상대방에게 본인을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을 본능이며, 본능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본능에 대해 최대한 파헤쳐보고자 한다.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 즉, 상대방에게 본인을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의 기저에는 태초의 외로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이 세상에 떨어져서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세상을 나만의 방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낯선 세상을 헤쳐나가고자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하고, 나만의 의미가 부여된 것들을 특별하다고 표시를 해두며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처음에는 세상을 하나씩 이해하기 바빴다면, 어느 정도 이에 익숙해진 이후부터는 내가 부여한 세상의 의미와 다른 체계를 갖춘 세상의 모습도 궁금해진다. 마치 지구에 혼자 살아남아 하루하루 보내며 밤하늘에 보이는 달을 보며, 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달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하는 마음이랄까. 그리고 홀로 의미 부여하고 특별함을 심는 과정에는 침묵만 흐를 뿐이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나를 특별하다고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낯선 세상에 떨어진 태초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그 순간 맞이한 혼란스러움을 망각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결론적으로, "특별"은 내 세상에서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라 희소성을 잃어버린 단어지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안식처를 형성하는 힘이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