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안함
미안함은 상대방을 위한 마음의 공간이 크다는 것을 알리는 선언
미안함에 대한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은 "I'm sorry to hear that"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장을 매우 좋아한다. 영어로는 자주 쓰이는 문장이지만 억지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너의 소식을 들으니 미안한 감정이 든다"가 되는데, 이는 약간 낯설다. 너의 소식을 들은 거랑 내가 미안한 거랑 뭔 관련인데..? 하는 삐딱한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면서, 미안함은 그냥 감정인데, 위와 같이 관련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에서 나 자신이 너무 차가운 사람이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몰려온다. 미안함은 분명 감정이 맞는데,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선언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I'm sorry to hear that"이라는 문장은 결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 "I'm sorry to hear about your loss"와 "I'm sorry for being late"에서의 미안하다는 표현은 의미가 다르게 사용된 "sorry"일까. 이를 더 생각해 보기 위해 국립국어원에 "미안하다"라는 표현을 검색해 보니 아래와 같은 2가지 뜻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1)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
2) 겸손히 양해를 구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
여기서 두 번째 의미로 쓰인 "미안하다"는 "미안하지만, 길 좀 비켜 주십시오." 같이 쓰는 경우를 지칭하며, "I'm sorry to hear about your loss"와 "I'm sorry for being late" 두 표현은 모두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한 방식에 따르면 모두 첫 번째 의미에 해당한다.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전달하는 것은 내가 마음이 편치 못한 상태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A에 대해 미안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A에 대해 마음이 불편한 상태야 라고 나의 상태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사과를 하는 것과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다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껏 사용한 미안하다는 고백은 거의 사과할 때 사용한 것 같은데, 나의 마음 불편한 상태를 고백하는 것은 사과를 하는 것과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I'm sorry to hear that"에서의 "sorry"에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연민의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미안함의 감정은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인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공감의 노력인 것인지도 혼란스럽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이유는 상대방을 보고 드는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과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께 나누는 경험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의도치 않은 기쁜 추억이 생기는 만큼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때도 많게 된다. 무심코 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도 있는 만큼, 본인이 원한대로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서로는 서로를 알고자 노력을 할 뿐이지 아는 상태가 될 수가 없기에, 생각보다 정해진 원인-결과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들을 앞에 두고 상대방에게 뱉은 "미안해"라는 표현은 생각보다 영양가가 없는 선언이기는 하다. 신경이 쓰이고 후회와 불편한 감정이 든다고 고백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나 상대방에게 보상을 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불편한 마음이라는 것을 고백한다는 것 자체가 순수한 본인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상대방의 마음에서 비롯한 간접적인 결과들만 봐오다가, 상대방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꺼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맞이한다.
미안하다는 표현이 힘이 있으려면 그만큼 진심이 있어야 하며, 그 진심은 얼마나 상대방을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가에 닿아 있다. 나의 마음에 상대방을 위해 사용하는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 나의 잘못이든 아니든 상대방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나의 마음이 편치 않게 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 마음의 공간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만큼 안 좋은 일들도 일어나기에, 상대방에게 잘못하는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안 좋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럴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는 것은 계속해서 그만큼 내가 마음에 네가 있는 공간을 크게 만들어 놓았다며, 간접적으로 그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내가 나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없기에, 나의 감정의 전제 조건인 마음의 공간에 네가 있음을 알리는 미안하다는 선언이 가장 깊은 감정적 교류라고 생각한다. 소통이라는 단어도 뜯어보면 결국 본인의 세상에서 본인 나름대로 상대방에 대해 열심히 알고자 노력한 독백 두 가지가 모인 결과물이라는 점이 너무나 답답하지만 자연의 이치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잘못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에서도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할수록 미안한 마음만 커져있는 상태일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는 그 순간에는 다시 표면적으로 상황 판단만을 하기 시작할 것이기에,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차라리 그 틀에서 모두 벗어나서 나의 마음이 불편한 상황임을 간단히 "미안하다"는 표현으로 전달하는 것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