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청년

편견 없이 사람 바라보기

by 라니

이슬라마바드, 비행을 해도 이 곳이 인도인지 파키스탄인지 늘 헷갈리곤 한다. 브리핑 센터에 도착해서야 그곳이 파키스탄에 있다는 것을 되뇌곤 했다. 이태원 케밥 가게에서 만났던 것 같은 파키스탄 사람. 이태원 한복판에서 열렸던 글로벌 축제에서 보았던 것 같은 파키스탄이라는 이름.


아랍 항공사에서 일을 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인종을 만나게 된다. 6 대륙 곳곳에서 온 동료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인생에서 만날 기회가 없었던 새로운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의 곁에서 소통하게 된다. 처음 보았지만 알게 된 지 몇 년이 된 것처럼 맛깔스럽게 수다를 떠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상류층과 약자층 사람들을 만나보는 다큐멘터리의 산 현장 같기도 했다.


파키스탄 카라치, 이슬라마바드라는 처음 들어 본 도시들로의 비행은 작은 비행기에 항상 만석인 비행이라 늘 바쁜 비행이었다. 돌덩이가 들었을 법한 무거운 007 가방을 들고 타는 손님들이 가득했던 비행. 7kg은 훌쩍 넘을 것 같은 그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늘 궁금하기만 하다.


복도 끝자락에 서서 손님들이 탑승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짐을 올리는 젊은 청년이 가방을 올리며 버거워한다. 세련된 옷은 아니지만 그 청년은 옷가지에서 꺼낸 최신 핸드폰을 꺼내어 그 속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기 시작하더니, 영상 통화를 한다.

주먹보다 작아 보이는 갓난아이를 안고 통화하는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핸드폰 화면 속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핏덩이처럼 보송보송한 어린아이와 아내를 두고, 아부다비의 건설 현장으로 떠나는 젊은 파키스탄 청년.


뒤에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이 화면에 잡힌 순간, 나는 고개 돌려 피하기보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 주는 여유를 부려보았다. 청년의 아내는 포동포동한 갓난아이를 위아래로 흔덩거리며 화면 속의 아빠와 나를 쳐다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소중한 딸이듯, 그 청년도 누군가의 귀한 아버지였던 것이다.




중동의 상업도시 두바이와 수도인 아부다비에는 아직도 건설 현장이 많다. 1980년대 사우디 아라비아로 파견 나갔던 한국 청년들의 일자리를 4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파키스탄이나 인도인이 차지하고 있다. 파키스탄 카라치와 이슬라마바드라는 난생처음 들은 도시들로의 비행은 늘 만석이였고.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승무원보다 더 자주 비행기를 타서 마일리지가 넘치는 사업가부터, 일반 여행객들, 그리고 50도의 중동 볕 아래 열사병을 걱정하며 근무하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까지 아랍 에미레이츠에 와서 비행을 하며 만나는 손님들도 다양했다.


자신이 속한 나라와 직업 앞에 모든 이가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꿈을 안고 가족을 부양하는 파키스탄 청년들로 가득한 이슬라마바드 비행기 안에 터번을 머리에 두른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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