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브라질, 칠레 그리고 자메이카를 비롯하여 처음 들어 본 동유럽의 작은 나라들, 서유럽, 아시아 국가, 아프리카 콩코, 케냐, 우간다 그리고 커피의 나라 에티오피아 등 살아온 배경도 나라도 문화도 너무 달랐지만, 이질감보다는 친숙함이 먼저 다가왔다.
복잡하게 얽힌 인종들 사이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로 만나 서로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정체성이 다른 수많은 타인과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힘은 생각보다 넓고 깊이 다가왔다. 안전선을 밟고 뛰어든 청춘의 길 위에서 만난 세상은 지루할 틈 없이 하루하루 색다르게 써 내려가는 여행 같았다.
손님과 직원, 회사 상사와 후배를 뛰어넘어 각 개인이 고유한 인간임을 존중하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좋았다. 비행 중 캡틴이라고 부르면,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던 기장들, 직함을 벗어나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동등하게 소통할 수 문화는 늘 새로웠다.
“권위를 쉽게 인정하고, 권위를 신뢰하고, 권위에 매달리고, 권위를 내세우고,
권위를 바람직하다고 믿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스스로 창조할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발상하거나 개척할 힘을 잃은 자들이다.
권위는 이처럼 살아갈 힘을 소진한 자들에게 기대어 있다. “
-니체-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단체 순례객들로 가득하던 사우디로 향하는 비행, 자카르타 비행에는 어린 갓난아이부터 노쇠한 노년층까지 메카로 떠나는 사람들로 유독 북적였다.
떠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머릿속에 막연히 그리던 즐겁게 여행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단편적인 생각의 한 조각이었다.
몸에 걸친 옷과 얼굴의 생김새가 다르듯, 모두 다른 이야기를 짊어지고 오른 사람들 천지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빠 곁에 앉아 짐보따리의 매듭을 풀고 선물 꾸러미를 열어보는 아이처럼, 수많은 사람들 곁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 안전과 서비스라는 임무를 바탕으로 때로는 동료의 상담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손님의 짧은 인생 한편을 비행에서 들으며 서로의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한 사람의 내면 안에 다양한 자아가 살아있듯, 블라우스에 매단 내 이름 석자 안에서 다양한 나로 살고 있었다. 아부다비까지 오게 된 동료들의 이야기 역시 풍성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나의 인도 동생 네하, 세르비아의 한 방송사에서 앵커로 일을 하다가 승무원이 된 동유럽 친구, 미국 델타항공에서 승무원 생활을 하다가 중동에 오게 된 나의 미국인 베치 메이트 앰버 (후에 그녀는 두바이에서 요가 선생님을 하다가, 아메리칸 항공의 승무원이 되었다.) 긴 비행의 서비스가 끝나고 하늘을 내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때쯤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내곤 했다.
칭얼대던 아이가 잠들고 늦은 저녁 혼자 갖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친구의 말처럼,
중간중간 구름 위를 세차게 구르는 엔진을 내다보며 숨을 고르는 일은 매번 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